• 입력 2022.07.27 12:30
윤석열(오른쪽) 대통령이 26일 한동훈 법무부장관으로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지사를 하고 있다.(사진=법무부 페이스북 캡처)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법률 분야에서도 국가간 전면전이 벌어진지 오래다. 다국적 기업이 세금이 낮은 나라로 본사를 옮기거나 규제가 적거나 보조금을 많이 주는 국가에 공장을 세우는 사례는 늘어나는 추세다. 기획재정부가 과세표준이 3000억원을 넘는 기업에 부과하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5%에서 5년 전 수준인 22%로 원상회복시키기로 결정한 것도 한국의 조세경쟁력 회복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이같은 흐름을 반영,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26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새정부 업무계획을 보고하면서 첫 번째 핵심 추진과제로 '미래 번영을 이끄는 일류 법치'를 내세웠다. 그 배경으로 "글로벌 스탠다드와 국격에 맞는 국가대계 차원의 법치행정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번영을 뒷받침할 필요"를 제시했다. 그간 부정부패 척결, 인권 존중, 범죄 취약계층 보호 등을 중시해온 법무부가 국가의 번영을 위해 앞장서겠다고 공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물론 '상식이 회복된 반듯한 나라'와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 등으로 구성된 윤석열 정부의 6대 국정 목표를 구현하려는 행동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보고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 역시 파격적이었다. 윤 대통령은 "법무 행정의 최우선을 경제 살리는 정책에 두기를 바란다"고 한 장관에게 강조했다. 또 산업현장의 인력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한 비자정책의 유연화,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법제 정비 및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형벌 규정 개선도 주문했다. 문재인 정권에서 강행한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권 법안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범위가 부패와 경제범죄로 축소된 상황에서 법무부가 주력해야할 가이드라인을 분명히 제시한 것이다.

아무리 복합경제위기 국면이라지만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법무부에 이처럼 과감한 명령을 하달하기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검찰총장 출신으로 그 누구보다 검찰 조직을 잘 알고 있기에 가능했다고 여겨진다. 이와 관련, 한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과태료나 과료 등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법 제정 시 형벌 규정에 과다하게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활동 주체에 위축효과를 주는 그 부분을 개선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지만 재계는 법무부가 중대재해처벌법 등 기업 활동을 지나치게 옥죄는 법률이나 대통령령을 바꾸는데 도움을 제공, 기업가의 경영 의욕을 되살리는데 동참하라는 요구로 해석하고 있다.  

한 장관의 보고와 윤 대통령의 지시를 놓고 보면 법무부도 경제부처라는 인식을 갖고 대응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자세는 과거와는 판이하다. 이귀남 법무부장관은 2011년 이명박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면서 '안보위기 대응 강화'를 첫 번째 과제를 내세웠다.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지난해 3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주요 업무추진계획을 보고하면서 첫 번째 핵심추진과제로 '새로운 형사사법제도 안착과 지속적 개혁 추진'을 제시했다. 당시 형사부 검사실을 공판준비형으로 개편하고 공판부 인력과 조직을 대폭 보강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 지연과 부실 수사가 속속 드러나면서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다.    

법무부는 국제표준에 맞게 민법과 상법을 정비한다는 차원에서 디지털콘텐츠계약과 퍼블리시티권, 인격권 규정을 하반기 중 신설한다고 밝혔다. 또 미성년자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의 빚을 대물림받지 않고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한정승인’ 제도를 고치기로 했다. 아울러 상장기업이 핵심사업부를 물적분할 방식으로 분사하고 신설된 자회사를 동시상장하면서 소액주주의 주주가치가 훼손되었다는 논란과 관련, 주주 보호 차원에서 해외 입법례를 조사하고 세미나를 통해 개정 방향성을 도출하겠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지역특화 비자와 과학기술 우수인재 영주·국적 패스트트랙 제도를 오는 10월 시행하겠다는 발표도 눈길을 끌었다.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는 외국인 거주를 촉진하겠다는 조치로 풀이된다. 2024년 1월 변호사시험부터 컴퓨터를 이용한 답안작성방식(CBT)을 도입하고 같은 해 10월부터 종이 없는 형사재판을 할 수 있게 한 것도 첨단IT 법률서비스를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적지 않다.

국회가 제정하고 개정하는 법률은 단순하고 명확하며 간결하게 작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기존 법령의 문제점을 고치는 과정에서 예외에 예외를 인정한 조문이 수두룩하게 들어가다보니 국민의 대부분은 아무리 읽어보더라도 이해하기 힘들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법률은 국회의원이란 정치인과 판·검사와 변호사로 이뤄진 법조인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의 이권과 직결되는 기득권도 철옹성이나 다름없다. 애매모호한 법령 조문으로 시행규칙이나 조례에서 하위 규정이 마련되다보니 일선 공무원의 재량권 남용도 여전하다. 국민들은 이런 문제점들이 윤석열 정부에서 개혁되기를 바라고 있다. 

법무부의 핵심인 검사는 정의를 실현하고 인권을 수호하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제 몫을 다해아한다. 서민이나 많은 사람에게 큰 피해를 끼치는 펀드, 가상화폐, 보이스피싱 등 민생범죄에 엄정 대응함은 물론 금융이나 증권, 공정거래, 조세분야 경제범죄 척결에 적극 나서야할 것이다. 

법무부도 행정부의 일원으로서 법제처와 함께 보다 알기 쉽게 각종 법령이 제·개정되는 과정에서 제 역할을 보다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할 때다. 명시적인 규제는 물론 잘 보이지 않는 규제까지 없애야만 해외 직접투자를 유치하고 외국 인재 유입도 늘릴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허용하지 않지만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는 '포지티브 규제(최소 허용 규제)'가 많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으로는 예외적으로 규제를 가한다는 의미의 '네거티브 규제(최소 규제)'가 주류로 자리잡아야 예측가능성과 투명성이 강화된다. 이러한 국가간 경쟁에 어느 부처도 예외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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