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07.29 11:39
이 (자료제공=통계청)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일본은 2008년 2억8084만명을 정점으로 해마다 인구가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지난 7월 현재 인구는 2억2484만명으로 추정됐다. 불과 14년 만에 19.9% 급감한 것이다. 영구적·합법적인 외국인의 이민을 막으면서 배타적인 입국규제정책을 고수해온 것도 이런 흐름을 부채질했다. 

인구가 매년 수십만명씩 감소하는데 민간소비가 살아날 수 없다.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는데도 지난 6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2.4%에 그쳤다. 그만큼 소비 위축이 심각하다는 반증이다.  

일본은 경기진작을 위해 지난 10여년간 ‘아베노믹스’를 내세우며 국채를 마구 발행했다. 이 결과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비율이 263.1%를 기록했다. 2018년 35.9% 이후 불과 3년 만에  11.1%포인트 오른 한국(47.0%)의 5배가 넘는다. 

물가를 잡기 위해 미국과 유럽연합, 한국이 기준금리를 연이어 올리는데도 일본만 기준금리 -0.1%를 고집하는 사정도 여기에 있다. 일본은행이 국채의 절반 가량을 보유하다보니 기준금리를 높이기 어렵다. 대외적인 명분으로 금융완화 지속을 통한 엔저 유지와 이에 따른 기업 수익성 개선을 내세우고 있지만 주요국의 금리 인상에 동참할 경우 국채 가치가 떨어지고 이자 부담은 커지는 '쌍펀치'를 맞게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적정 규모의 인구 유지는 국력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이다.

일본에서 진행 중인 최악의 시나리오가 한국에서도 작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1월 1일 기준 총인구는 5173만8000명으로 1년 전보다 0.2%(9만1000명) 줄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실시한 1949년 센서스 이후 처음 발생한 '참사'이다. 내국인은 5008만8000명으로 전년 대비 0.1%(4만5000명) 감소했고 외국인은 2.7%(4만6000명) 줄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일시 입국했던 내국인 인구가 다시 빠져나간데다 입국 제한 등으로 외국인 인구는 계속 줄어들어든 영향이 컸다.

통계청은 2019년만해도 “오는 2029년부터 총인구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 감소 시기는 무려 8년이나 앞당겨졌다. 저출산·고령화로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능가하는 '인구 데드크로스'는 이미 2019년말부터 발생했다. 그간 국내에 살았던 외국인이 마이너스 인구성장을 막아왔다는 '허상'이 코로나19로 인해 깨진 셈이다.

통계청 조사결과를 보면 걱정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소비와 직결되는 생산가능인구가 줄면서 내수시장 위축과 잠재성장률 하락 우려가 더 커졌다. 생산연령인구(15~64세) 100명당 부양해야 할 65세이상 인구를 의미하는 노인부양비는 2020년 22.2명에서 지난해 23.6명으로 올랐다. 2027년이 되면 33.5명으로 더 높아진다고 한다. 5년 뒤엔 3명이 벌어 노인 1명을 먹이고 재워야 한다. 그만큼 부담이 늘어난다.

(표제공=통계청)

촌락이 소멸 중인 일본의 전철을 한국도 따라갈 것이라는 점도 문제다. 전체 229개 시·군·구 중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15세 미만 인구보다 많은 곳은 205개로 전체의 89.5%에 달했다. 전년 대비 인구 감소율이 가장 큰 기초지자체는 전북 순창군(-4.2%)이었고 전북 임실군(-4.1%), 경남 하동군(-3.8%) 순이었다. 유소년 100명에 대한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을 의미하는 노령화지수가 가장 높은 기초지자체는 경북 군위군(880.1)이었고 경북 의성군(771.6), 경남 합천군(668.7) 순이었다. 경북 군위군은 경기 화성시(51.2) 대비 17.2배에 이른다. 성공적인 이민정책으로 외국인의 적극적인 유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인근 지역과 통폐합 될 곳이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학교에 이어 문을 닫는 읍도 생길 판이다.

로마는 항복한 적의 귀족 자제를 데려와 시민권을 주고 능력이 된다면 고위직으로 중용하는 등 개방과 포용정책을 잘 구사한 끝에 제국을 세우고 유지할 수 있었다. 미국 역시 1960년대 이민법을 정비하면서 국정할당제를 폐지하고 과학기술 인재에 대한 비자를 대거 늘려 전문인재 유입을 촉진해오면서 '슈퍼 강대국'이란 지위를 강화해왔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코로나19로 외국 유학생 입국이 줄자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의 외국인 학생에게 졸업후 3년까지 미국 내 취업을 허용하는 정책을 내놓을 정도로 국가경쟁력 향상에 부심하고 있다.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역대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 한국의 출산율은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이런 추세를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미 와국인 근로자가 없다면 농사를 지을 수도, 아파트를 올릴 수도 없다. 외국 인력 도입으로 내국인이 일자리를 뺏길 우려도 적다.

교수와 연구원 등 해외 기술인재의 국내 체류기간은 평균 3년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들이 장기적으로 국내에 머물면서 재직 중인 기업과 연구기관의 성과를 내고 가정도 꾸리면서 장기적으로 한국인으로 살아가도록 고용과 이민정책을 다듬어야할 필요성이 크다.

근로조건이 좋고 임금이 높고 거주하고 싶은 나라라면 단기 취업비자를 통해 노동이 수시로 국경을 넘나드는 시대가 왔다. 한국은 국격이 높아지면서 외국인들로부터 가고 싶은 나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획기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물론 정치적 민주주의까지 달성한데다 전세계에서 K-컬처를 주도하고 있어서다. 이런 흐름을 잘 활용한다면 우수한 해외 인재의 자발적 유입을 유도하면서 가정에서의 아동돌보미 등 다양한 분야의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기가 쉬워질 것이다.

이제라도 획기적인 이민정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한국 역시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의 질곡에 빠질 수 있다. 전체 산업의 역동성을 살려 잠재성장률 둔화를 막기위해 더욱 그렇다.

법무부가 지난 26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새정부 업무계획 보고에서 ‘국가백년대계로서의 국경관리 및 출입국·이민정책 추진’을 강조한 배경에는 이같은 고민이 담겨 있다. 국경·이주·이민정책을 세우고 조정하는 컨트롤타워인 가칭 ‘이민청’을 신설하고 오는 10월 지역특화 비자나 과학기술 우수인재 영주·국적 패스트트랙을 시행해 국가성장을 지원하기로 한 결정은 의미가 크다. 아울러 내년 상반기부터 외국인 아동 출생등록제를 도입하는 등 이주 외국인 인권 보호를 강화하는 것도 이민자를 이웃으로 포용하는 사회문화적 환경을 조성하는데 필요한 조치이다.

윤석열 정부는 연금·노동·교육이란 3대 개혁과제에 못지않게 인구 정책도 원점에서 다시 짜야한다. 현행 교육이나 병역, 주거, 복지 정책은 인구가 늘어났던 시기에 근본 틀이 마련됐다. 구시대의 유물이 될 낡은 제도와 관행과 과감히 결별할 때다. 모든 것을 리셋해야 한다. 

 

(표제공=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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