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08.03 12:11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29일 교육부 업무보고 현안을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교육부)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7월 29일 교육부 업무보고 현안을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교육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경력단절 여성이 주로 발생하는 시기는 정해져 있다.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때다. 놀이 중심의 교육이 끝나고 본격적인 학습이 시작되는 만큼 부모로서의 부담이 커진다. 입학에 앞서 최소 1년 전부터 한글 공부 등 선행 학습에 참가하도록 하고 화장실에서 대변을 본 뒤 혼자서 뒤처리하는 연습도 시키게 된다. 오히려 유치원보다 집으로 더 일찍 돌아오는 것도 걱정거리다. 초등학교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지만 일부 지역에선 추첨으로 대상자를 결정할 정도로 공급이 부족하다. 시설과 기자재는 선진국 수준이라지만 돌봄 서비스에 대한 학부모의 만족도 역시 낮은 편이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하교 이후 태권도학원, 피아노학원, 보습학원 등을 순회하다가 부모의 퇴근 시간에 맞춰 귀가하게 된다. 마음껏 놀기는 커녕 어린 시절부터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피로를 호소하기 일쑤다.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제9화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자칭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인 방구뽕이 자신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학원 버스를 납치, 어린이들과 산 속에서 놀고 나서 검거된 뒤 재판과정에서 “어린이는 놀아야 한다"고 항변하는 장면에서 상당수 시청자들은 공감했다. 명문대 진학만을 목표로 삼는 입시 위주 교육의 폐해를 누구나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지만 취학 전 3년의 유아교육은 무상교육이다. 유아교육법은 무상으로 실시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만 3~5세 누리과정 지원금액은 월 28만원이다. 지난 10년 동안 고작 6만원 오르는데 그쳤다. 

월 150만~200만원을 받는 영어 유치원을 제외하고 수도권의 일반적인 사립 유치원 학비는 월 30만원 후반에서 40만원 초반이다. 부모가 20만원 초중반을 부담해야한다. 선거철만 되면 주요 정당마다 자녀만 낳으면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큰소리쳐왔지만 정작 유아 무상교육이 실현되려면 아직 멀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아동들은 유치원 교육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유아교육부터 시작된 격차가 사회적 양극화의 초기 원인이란 판단 아래 의무교육 시기를 1년 앞당겨 사회적 약자를 공교육 체계에서 제대로 키우겠다는 것이 최근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7월 29일 대통령에게 보고한 ‘초교 입학 연령 만 5세로 낮추기’ 정책의 골자이다. 박 장관은 2024년 시범실시를 거쳐 2025년부터 시행을 목표로 추진한다고 공언했다. 입학시기를 4년간 25%씩 앞당겨 2025년에는 2018년 1월생부터 2019년 3월생까지 1학년생으로 공부하게 된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이 발표가 나오자마자 학부모와 교원단체, 교육청, 야당에서 "유아 발달 단계에 맞지 않으며 1살 많은 형·언니랑 경쟁하면서 발생할 피해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의견 수렴 없이 졸속으로 추진된 정책"이라는 반대가 쏟아졌다. 만 4세부터의 선행학습을 유도할 것이 뻔하고 사교육업체만 배를 불릴 것이라는 비난이 나왔다. 학생 수 일시 증가에 따른 교원과 시설 확충이 제때 되겠느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무엇보다도 자녀의 초교 입학을 앞둔 학부모의 반발이 가장 거셌다. 동급생보다 15개월 늦게 태어난 내 아이가 과연 공부를 따라갈 수 있겠냐는 걱정이 비판 여론의 선봉에 섰다. 내 아이를 실험대상으로 삼지 말라는 항변이 전국으로 메아리쳤다.  

박 장관은 사전 브리핑에서 조기입학이 실시되면 초교 1,2년생에게 오후 8시까지 돌봄을 제공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실현가능성이 있겠느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결국 박 장관은 지난 1일 “입학연령을 1개월씩 12년에 걸쳐 줄이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다”고 한발 물러선데 이어 지난 2일에는 “국민들이 만약에 정말로 아니라고 하다면 정책은 폐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백기를 들었다. 대통령실 안상훈 사회수석도 이날 "교육부에 대해 학제개편안에 대한 신속한 공론화를 추진해달라고 지시했다"며 "아무리 좋은 개혁도 국민 뜻을 거스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안 수석은 ”교육개혁은 인재 양성 다양화와 함께 적어도 초등학교까지 교육과 돌봄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의 안전한 성장을 도모하고 부모 부담을 경감하는 게 목적“이라며 ”방과 후 돌봄 서비스를 부모 퇴근 시까지 해주는 게 기본적 인식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국민 여론 수렴을 위한 설문조사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학제개편안 공론화를 담당할 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 구성도 서두를 방침이다. 그렇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추진헸다가 좌절된 바 있는 조기입학 정책은 이번에도 지지를 받는데 실패할 것이 분명하다. 당초 교육부가 제도 변경의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부작용은 최소화할 수 있는 각종 대안 제시조차 없이 서둘러 입을 놀렸다가 철회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은 탓이다.

물론 정부의 입장을 마냥 비판할 것만은 아니다. 1년 먼저 입학하면 1년 먼저 졸업한다. 여러 이점이 많은 정책이기도 하다. 신체적 정신적인 차이로 처음에는 적응하는데 부담이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당부분 극복될 수 있다. 소외계층 자녀를 보편적 공교육 체제로 조기 흡수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이 조기에 양질의 공교육을 받도록 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교육개혁 방향에 원칙적으로 찬성하지 않을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입학연령을 1년 낮춰 초교에서만 실현해야 한다고 볼 근거는 과연 무엇인가. 단기적으로 양질의 국·공립 유치원을 확충하고 기존 유치원 교사의 능력을 제고하는 것이 효율성이 더 클 수 있다. 해묵은 숙제인 교육과 돌봄의 통합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시행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하고 차질없이 시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경제분야의 대표적인 국책연구기관이 한국개발연구원이라면 교육분야는 한국교육개발원(KEDI)이다. KEDI는 2021년 이슈페이퍼, 2017년 이슈페이퍼, 2007년 연구보고서, 2006년 연구보고서 등을 통해 '만5세 취학 학령제'에 대한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2007년 보고서에서 '한번에 전환'과 '25%씩 나눠 전환' 등 2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이에 따른 각종 문제점을 열거했다. 보고서는 결론에서 "만5세아 초등학교 취학제는 보류해야할 것"이라며 "만5세 아동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유치원 교육의 확대이며 초교 조기 입학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제언과는 달리 지난 15년 동안 유치원 교육이 제대로 확대되지 못했다. 조기입학을 시행하기위한 발판이 마련되지 않은 셈이다. 더구나 5세 취학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38개국 중 4개국, G11개국 중에선 1개국만 시행 중이다. 더구나 지금도 초교 조기입학은 법률적으로 가능하다는 점에서 강제입학이 몰고올 피해를 놓고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크다.

이선호 KEDI 교육재정연구실장은 지난 5월 '유초등교육재정 진짜로 남아도는 것일까'라는 글에서 "엄밀하게 말해 현재의 교육재정은 (기획재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남는다기보다는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가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비판한뒤 "만약 교육재정의 잉여로 자원 배분을 고민해야 한다면 교육의 공공성 측면에서 고등교육보다 유아교육에 대한 투자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아 단계 교육에서의 투자 영향력이 긍정적이라는 많은 연구결과가 있었지만 재정투자에선 늘 후순위에 머무렀다는 것이 교육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제라도 윤석열 정부는 유아교육 지원 강화를 위해 전문가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바람직한 대안 모색을 위한 공론화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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