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08.16 18:27
서울 양천구 목동 아파트 단지. (사진=최승욱 기자)
서울 양천구 목동 아파트 단지. (사진=최승욱 기자)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PIR(Price to Income Ratio)은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을 뜻한다. 중위값을 기준으로 한 서울 PIR은 지난 3월 현재 18.4를 기록했다.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두 모아도 집을 사려면 18.4년 걸린다는 의미를 지닌다. 10년 전인 2012년 3월 PIR은 10.1에 그쳤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는 8 수준까지 떨어졌다가 문재인 정부 내내 앙등한 결과가 반영된 수치다.

서울 지역 주택 소유 유무로 ‘가진 자’와 ‘없는 자’ 간 자산 격차는 더욱 심화됐다. 더구나 보유 주택이 입주 10년 이하의 대단지 아파트인데다 위치도 서초구나 강남구에 있다면 질시의 대상이 되는 세상이 됐다.

(표제공=국토교통부)

더 큰 문제는 대출을 받아 집을 산 뒤 거주하면서 원리금을 갚고 다시 판 돈으로 주택 규모를 키워나가는 ‘주거사다리’가 사실상 끊겨졌다는 점이다. 월세주택이 보편화되면서 전셋집이 크게 줄었다. 이젠 전세대출금 이자마저 폭등하면서 저축은 언감생심이다. 더구나 작년에 서울 아파트 평균 청약경쟁률은 139.6대 1로 치솟았다. 올해 들어 서울에서 대규모 아파트 분양물량은 아예 씨가 말랐다. 청약할만한 아파트조차 없는 실정이다.

고민 끝에 '인 서울'을 포기하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과 대중교통 신설 약속을 믿고 경기도로 찾아간 국민들의 고생은 이만저만 아니다. 부족한 지하철과 선로 용량 한계 등으로 인천에서 서울로 출근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2018년 평균 84분에서 2021년에는 90분으로 늘어났다. 김포시 양촌역과 김포공항역을 다니는 김포골드라인의 출퇴근 혼잡율은 250%를 초과한다. 콩나물시루와 같은 전동차에서 하루 3시간씩 시달리다보면 절로 욕이 나온다.  

신도시 주민 중 대표적으로 서울 송파구 장지동과 거여동, 성남 창곡동, 하남 학암동에 들어선 위례 주민들이 희망고문을 받고 있다. 2013년 입주가 시작됐지만 신도시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위례트램은 2025년에야 개통될 예정이다. 2기 신도시를 계획할 당시부터 트램 건설이 고려됐다는 점에서 너무 늦게 들어서는 것이다. 위례를 신사역과 연결하는 위례신사선은 내년에 착공돼 2027년에 개통될 것으로 국토교통부는 보고 있다. 당초 2008년 사업이 시작돼 벌써 완공되었어야 했는데도 사업 방식과 예산 확보 등의 문제로 장기간 지연됐다. 현지 부동산업계에선 2028년에야 준공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로 출퇴근하는 주민들은 버스 등으로 8호선 장지역이나 남위례역으로 이동한 뒤 지하철로 환승하는 불편을 앞으로도 수년간 겪어야 한다.

지난 5년간 서울 집값이 급등한 것에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저금리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지나친 규제로 수요가 몰리는 우수 입지의 공급이 위축됐던 탓이 크다. 문재인 정부는 수급 불안으로 집값이 오르는 곳을 세금이 중과되고 대출규제도 강화되는 규제지역으로 묶는데 급급했다. 이러다보니 7월 현재 투기과열지구가 43개, 조정대상지역이 101개에 달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1년 10월 취임한 이후 서울지역 정비구역 지정은 눈에 띄게 급감했다. 2010년~2012년만해도 정비구역 지정이 132건에 달했으나 13~15년에는 104건, 16~18년 63건으로 줄어든뒤 급기야 19~21년에는 22건으로 격감했다. 더구나 2012년부터 2021년까지 410곳이 해제됐다. 여기에 과도한 안전진단 강화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으로 민간의 도심 주택공급 기반이 대폭 약화되면서 결국 서울 집값은 급등했다.

공공택지 사업기간이 대폭 늘어난 것도 집값 상승을 부채질 했다. 택지를 지구지정 할 때 환경과 재해영향평가를 각각 2차례 받아야 한다. 정비사업은 정비계획 변경과 사업인가 등 2단계로 진행되는데다 교통, 건축, 환경 등의 심의를 각각 따로 통과해야하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사업기간이 1년 6개월 늦어졌다. 이처럼 유사한 절차와 규제가 중복되면서 사업 위험성마저 커지고 있다. 1기 신도시는 발표에서 입주하는데 2년 6개월 소요됐으나 2기 신도시는 이 기간이 6년으로 대폭 연장됐다. 3기 신도시는 2026년 인천 계양 입주를 시작으로 8년 이상 걸릴 것으로 국토부는 예상하고 있다. 

기존 주택 재정비를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복잡한 인허가 절차이다. 지자체의 담당 공무원들이 바라는 대로 재건축조합이 정비계획안을 마련하더라도 사안마다 각 과를 돌면서 점검을 받아야 한다. 이후 주로 대학 교수들로 구성된 관련 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다시 수정한 뒤 처음부터 심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인허가가 늦어질수록 금융비용이 커지면서 사업성은 떨어진다.

정부가 16일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갖고 주택공급 정책의 기조 전환을 발표했다. 집값 잡기에만 급급했던 나머지 지나치게 수요를 억제하고 공급을 가로막아왔던 기존 제도의 경직성을 타파하겠다는 방침은 옳은 방향이다. 서울에서 주택노후도와 지역수급 상황을 고려해 신속통합기획 방식으로 10만호의 신규정비구역을 지정한다는 목표부터 주목된다. 올해부터 부과될 예정인 재건축초과이익환수금도 1세대 1주택자를 대상으로 보유 기간에 따라 감면하고 면제금액을 높이며 부과율 구간도 확대한다는 방침도 재건축을 추진하는 조합의 사업성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구조안전성 비중을 현행 50%에서 30~40% 수준으로 낮추고 주거환경과 설비노후도 배점을 높이며 관할 지자체의 재량권을 확대한다면 노후 아파트의 재건축이 활발해지면서 시장 공급이 늘어날 것도 분명하다. 

정부는 2027년까지 5년간 인허가를 기준으로 연평균 54만호 내외를 지속적으로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환경영향평가 등 인허가 절차 간소화로 공공택지 공급을 앞당기고 용적률 400%가 적용되는 고밀개발 모델을 도입하며 콤팩트 시티 등 신규택지 15만호를 발굴, 이중 10만호에 대해 인허가를 내주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같은 정부의 다짐과 달리 과도한 규제를 정상화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지자체 공무원들의 적극행정이 뒤따라오지 않는 한 '좋은 공급'을 신속히 늘리겠다는 정부 목표는 현실을 도외시한 장미빛 환상이라는 역공을 받을 우려가 적지 않다.  

시행업계에서는 지방교육청의 소극행정도 성토한다. 학교 수요가 없는 곳은 학교용지부담금을 면제할 수 있지만 재량사항으로 규정되다보니 관행적으로 부과되는 실정이다. 아울러 주거용 오피스텔 신축이나 재건축 추진 현장에서 학교영향 평가로 사업 착수가 늦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 지방교육청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는 8·16 대책에 희망을 걸고 있는 국민들을 위해 후속조치 시행에 즉각 착수해야할 것이다. 국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법령 개정에 대한 찬성을 얻어내는 것이 이번 대책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이를 위해 투기 조장 우려를 미리 차단하고 가진 자에게 특혜를 제공한다는 비난도 받지 않도록 과도한 개발이익에 대한 철저한 환수 방안을 마련하는 등 공공성 확보와 형평성 제고를 위한 보완대책 마련에 보다 적극 나서야할 것이다.

(자료제공=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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