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08.17 14:48

윤수현(왼쪽 두 번째)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16일 윤석열(세 번째)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캡처)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차인 2018년 업무보고는 여러 부처가 특정한 주제를 갖고 각 부처의 '핵심정책'과 '대상 맞춤형 정책'을 보고한 뒤 참석한 전문가 등과 자유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섯 번째 주제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 정착’으로 1월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렸다. 통상 경제부처로 분류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사회부처인 법무부, 국민권익위원회, 경찰청, 여성가족부, 인사혁신처, 법제처와 자리를 함께 한 이유는 ‘국민을 위한 재벌 개혁·경제정의 입법 실현으로 경제 투명성·기업경쟁력 강화’와 관련된 정책 집행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공정위는 이날 재벌 총수 후계자의 편법 경영권 승계에 이용되고 중소기업 경쟁기반을 훼손하는 대표적인 사례인 일감몰아주기 등 부당내부거래 행위를 엄중 제재해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갑을관계 개혁을 위한 각종 제도 개선 ▲혁신 경쟁 촉진 차원에서 ICT·헬스케어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의 경쟁제한적 규제 발굴·개선이란 3대 핵심과제를 중점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재벌개혁 기조는 문재인 정부 내내 이어졌다. 2021년 1월 22일 업무보고에서 공정위는 지난 4년간의 성과로 “재벌 개혁을 위해 법 개정 등 제도 개선, 부당 내부거래 엄중 제재, 정보 공개·포지티브 캠페인을 통한 자율 개선 유도 등을 균형 있게 추진했다”고 자화자찬했다. 특히 최근 4년간 하이트진로, 미래에셋, 금호아시아나 등 14개 집단의 부당내부거래를 적발, 제재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공정위의 무분별한 재벌 때리기는 무더기 패소로 되돌아왔다. 대법원은 지난 5월 공정위가 '대한항공과 싸이버스카이, 유니컨버스가 총수 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했다'며 부과한 과징금 14억3000만원은 위법이라며 취소해야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공정위는 특수관계인에 대해 부당한 이익 제공을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23조 2항에 근거해 한진그룹 일감몰아주기에 처음으로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떠벌렸지만 패소 확정이란 수모를 당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공정위가 지난해 공정거래 관련 법을 위반한 사업자에게 부과한 과징금은 1조83억9000만원이었다. 2020년의 3803억4300만원보다 급증했다. 작년에 행정소송이 제기된 과징금은 9466억8500만원으로 전체 과징금의 93.9%에 달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신설된 기업집단국은 지난 5년간 25건에 4560억91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기세등등하게 설쳤다.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 받은 기업의 대부분은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위해 행정법원을 찾았다. 막대한 변호사 비용을 들이고 직원들도 방어 자료를 찾느라 밤새우기 일쑤였다. 어렵사리 소송에서 이겨본들 법원에서 인정하는 소송비용은 실제 지급액보다 터무니없이 적었다.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점을 뻔히 알면서도 부당하고 억울한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송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기업들의 공통된 입장이었다. 결국 공정위가 소송에서 져 기업에 되돌려준 과징금은 2018년 1416억원, 2019년  2327억원, 2020년 98억원, 2021년 92억원을 기록했다. 

문 정부 내내 공정위는 대기업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됐다. 공정위가 기업에 대한 행정조사에 나서면서 포괄적인 위반 규정만 알리는 것은 형사소송 절차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만약 공정위 직원의 현장 진입조사를 막으면 처벌하는 조항이 법에 규정돼 있어 ‘압수 수색 영장 없는 강제조사’는 비판도 받았다. 공정위 조사 괴정에서 기업의 정당한 방어권은 무시됐다.

이와 같은 불공정한 조사가 앞으로는 줄어들고 '일단 때리고 본다'는 과징금 부과 관행도 시정될 전망이다. 공정위는 16일 윤석열 대통령에 업무보고를 하면서 조사와 사건 처리에 있어 예측가능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고, 법집행 효율화로 신속하고 실효적인 피해구제를 추진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피조사기업에 구체적인 조사대상과 범위를 보다 명확하게 알리고 자료 제출 등 조사과정에서 ‘이의제기 절차’를 신설하며 위원회 심의 이전 단계부터 공식적인 ‘의견제출 기회’를 확대하기로 했다. 특히 부당지원·사익편취 관련 법률을 적용하는데 있어 예외대상을 명확히 하는 등 설득력이 있고 공정한 사건 처리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달리 말하면 그간 피조사기업의 절차적 권리를 소홀하게 취급해왔으며 조사과정에서 마구잡이로 자료를 가져가더라도 항변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불합리한 행정절차를 뒤늦게나마 시정하겠다는 자기반성과 다름 아니다. 

수년간의 법정 다툼 끝에 업체의 승소로 끝나더라도 공정위는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기 일쑤였다.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다보니 객관적이고 엄격한 증거자료도 없이 과징금을 물려왔던 관행이 지속되었다고 여겨진다. 이제라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피조사기업의 절차적 권리를 철저히 보장하면서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조사에 나서야할 것이다. 

윤수현 공정거래위 부위원장이 이날 윤 대통령에게 “공정한 시장경제 정착을 위해서는 시장과 정부 사이에 신뢰가 전제되어야한다. 공정위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높일 수 있도록 법 집행 방식과 기준을 혁신하겠다”고 보고한 것은 그간 공정위의 행태를 되돌아 보면 놀라운 반전이 아닐 수 없다. 6쪽에 이르는 공정위 업무보고에서도 재벌개혁이란 표현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정권교체의 위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공정위가 윤 정부의 민간주도 성장 원칙과 발을 맞춰 기업에 대한 과징금 부과 등 제재를 완화하고 중요성과 시급성을 분석, 각종 공시 주기를 연장하기로 한 것은 '친기업 기조'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공정위는 인위적 진입장벽을 형성하고 공정경쟁 원칙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시장반칙행위를 엄정하게 제재하겠다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새로운 OS(운영체제) 출현을 방해하면서 마케팅 비용을 전가해온 모바일OS에 대한 독과점 남용행위에 대한 조치를 완료한데 이어 경쟁 앱마켓을 배제한 앱마켓에 대한 심의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앞으로 장기계약을 강제하는 반도체와 표준필수특허를 남용하는 지재권 분야에서도 경쟁사업자의 시장 진입과 사업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차단할 방침이라고 한다. 독과점시장을 고착화하려는 시도를 막겠다는 결정은 공정위의 설립 목적에 부합되는 것이다.

아울러 중소기업이 애써 개발한 기술을 납품 관계를 악용, 탈취하려는 시도를 근절하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높이고 감정평가제도 도입을 통해 조정에 나서겠다는 방침도 옳은 결정이다. 중소기업의 혁신노력에 대해 정당한 대가가 보장되고 적절한 보상이 뒤따라야만 혁신경제 생태계가 조성되고 공정사회도 구현될 수 있다.

'힘의 불균형'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외에 디지털 플랫폼와 소비자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PC나 휴대폰 앱을 사용하면서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이나 동영상 플레이어를 내려받았을 뿐인데 그 이후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특정 사이트로 자동연결되거나 팝업 페이지가 자주 떠 불편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 착안, 공정위가 이용자들이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에 가입하도록 유도하기위해 업체가 의도한 웹의 설계나 디자인을 말하는 '눈속임 상술(Dark Pattern)'에 대해 감시를 강화하기로 한 것은 신유형의 디지털 거래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피해를 차단한다는 측면에서 기대를 모은다. 

 

(그림제공=공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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