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09.20 17:22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금속노조)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금속노조)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의 파업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양극화가 얼마나 심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장기파업 여파로 협력업체 7곳이 폐업했고 하청노조원들은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에 직면한 상황이다.

노란봉투법은 2014년 쌍용차 파업 참여 노동자들에게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지면서 시작된 시민들의 모금운동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해당 법안은 19·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모두 폐기된 바 있다. 대우조선해양이 지난 6~7월 파업에 나선 하청노조 근로자들에게 470억원의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하면서 노란봉투법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다. 21대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은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배소를 막겠다는 취지의 노란봉투법 관련 법안을 8월부터 속속 발의하고 있다.

이에 맞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글로벌 스탠다드와 달리 노조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법과 제도부터 고쳐 균형적 노사관계를 확립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동계는 합법적 쟁의행위의 범위를 정상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재계는 불법파업에 대한 손배소 청구를 금지하면 파업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18일 "노란봉투법은 국가의 근간인 자본주의 체제와 헌법을 흔드는 법"이라며 "국회에서 이 법이 통과되면 경총은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역시 '노조에 면죄부를 주는 방탄입법'이라고 입법화를 결사반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0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기초연금확대법, 양곡관리법, 출산보육수당확대법, 금리폭리방지법, 납품단가연동제, 장애인 국가책임제법과 함께 노란봉투법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7대 입법과제로 중점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혀 재계의 긴장감을 더욱 높였다. 김 정책위의장은 “과대한 손배소를 적정 수준에서 하자는 큰 틀에서의 취지는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불법 노동쟁의까지 보호하는 법률이 돼서는 곤란하다”고 언급했다. 노란통투법은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황건적 보호법'에 불과하다는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비판과 재계의 우려를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한 손배소와 관련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은 8월이후 지금까지 8개가 발의된 상태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 등 56명이 14일 제안한 노조법 개정안은 현행 노조법이 근로자 및 사용자 개념에서 고전적인 1대 1의 노사관계를 상정하고 있어 특수고용노동자, 간접고용 노동자 쟁의 행위에 대한 민사면책 규정이 유명무실화되고, 노동쟁의의 대상을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으로 한정하고 있어 노동쟁위의 범위가 협소하며, 쟁의행위 등으로 발생한 재산상 손해에 대한 민사면책의 인정요건 또한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로 좁게 한정해 노조활동이 제약되거나 노조 및 근로자가 생계에 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제안이유를 밝힌 바 있다.

현재 노동조합법에 의한 단체교섭이나 쟁의행위를 벌일 경우 노조는 손배배상 책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대법원은 2011년 노동조합법에 의한 파업의 범위를 단체교섭의 주체가 근로조건의 개선에 한정해 사용자 재산권과 조화를 이루며 조합원 찬반투표 등 정해진 절차를 모두 지킨 경우로 판단했다. 따라서 회사의 정리해고 결정에 반대해 파업을 벌이거나 사내 하청노조가 원청회사를 상대로 쟁의행위에 나선다면 적법 파업으로 인정받기 힘들었다. 

아울러 노조법이 사용자를 사업주나 사업의 경영담당자 등으로 규정하면서 통상 노동자와 고용계약을 맺은 사용자로 해석되어 왔다. 이러다 보니 원청업체는 사용자로 분류되지 않아 하청노조와의 단체교섭에 나설 이유가 없었다. 이 의원 등은 노조법상 근로자 범위에 특수고용직과 사내하청노동자를 포함하고 사내하청노동자의 근로조건과 노동조합 활동 등에 실질적으로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 사용자 등을 노조법상 사용자 범위에 집어넣을 수 있게 했다. 이처럼 원청 사용자가 사용자 범위에 포함되면 불법파업이 줄어들 수는 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나 하이트진로 화물기사 노조가 원청업체의 대화 거부를 문제 삼아 사업장 점거농성에 들어가면서 불법파업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다만 원청업자를 사용자 범위에 포함하는 것이 법리상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꼼꼼한 분석이 요구된다. 

이 의원 등은 노조법상 노동쟁의 정의와 관련,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규정한 부분에서 '결정'을 삭제하고 폭력이나 파괴로 인한 직접 손해를 제외하고는 단체교섭이나 쟁위행위 등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 노조와 근로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 것은 물론 노조의 존립이 불가능한 손해배상 청구까지 금지했다. 다른 의원은 손해배상 면책 범위를 '그밖의 노동조합활동'으로 확대하거나 노동쟁의의 목표인 ‘근로조건’에 정리해고 반대, 원청사용자의 교섭의무를 두고 노사 이견이 있을 때 등을 추가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처럼 정규직 노조원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 간접고용노동자의 노동권을 강화한다는 취지야 좋지만 쟁의행위 전반에 대해 노조의 면책권리가 광범위하게 확대되면 파업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 걱정거리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노사관계는 경제수준에 걸맞지 않게 적대적이고 후진적인 것으로 악명이 높다. 세계경제포럼(WEF)가 발표한 노사협력순위(2019년)에서 한국은 141개국 중 130위로 베네수엘라(120위)보다도 높고 모잠비크(131위)와 비슷했다.

한국노동연구원과 주요국 노동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2010년~2020년 임금근로자 1000명당 파업으로 인한 연평균 근로손실일수는 한국이 38.1일로 영국(17.8일), 미국(8.2일), 독일(4.6일), 일본(0.2일)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길었다. 전경련은 19일 “2017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언론에 보도된 것만 집계해도 무리한 파업으로 인한 생산손실액은 6조5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산업피해가 컸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실정에서 준법투쟁, 장기간 점거농성까지 판치는 판에 합법파업 범위를 넓혀줄 경우 파업이 급증할 것이라는 재계의 우려를 엄살로 치부할 수 없다.

특히 재계는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권에 제한을 두는 개정안 규정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규모 등을 고려해 손해배상 상한액을 대통령령으로 정하거나 쟁의행위가 노조에 의해 계획된 것이라면 개별근로자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한다는 규정은 기업의 재산권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독소 조항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폭력이나 파괴를 주되게 동반한 경우에는 면책하지 않는다는 규정 역시 ‘주되게 동반’이란 문구 자체가 모호한데다 일부 동반할 경우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산업현장의 평화를 흔들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한국의 주요 노동법은 1953년 제정된뒤 큰 골격 변화 없이 70여년간 유지되고 있다. 공장법 시대의 유물로 남아있는 고용노동시스템이 여전히 작동하면서 현행 노사관계와 걸맞지 않은 규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로 인한 국가경쟁력 약화를 더이상 두고볼 수만 없다.

(표제공=전경련)

대표적으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파견근로자에 관한 법률은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수행을 위해 해당 사업과 관계없는 자를 채용 또는 대체할 수 없으며 파견사업주도 쟁의행위 중인 사업장에 중단된 업무의 수행을 위해 근로자를 파견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같은 대체근로 전면금지는 사용자의 ‘영업의 자유’, 근로자의 ‘직업행사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을 침해하며 노사간 무기대응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 전경련의 설명이다. 노조 파업에 맞서 사용주에게도 대항수단을 부여, 노사교섭력의 균형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맞다. 미국은 근로조건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적파업의 경우 영구적으로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파업참가자에 대한 직장복귀 거부도 가능한 실정이다.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도 모든 쟁의행위에 대해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다. 노조법은 '쟁의행위는 폭력이나 파괴행위 또는 생산 기타 주요업무에 관련되는 시설과 이에 준하는 시설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설을 점거하는 형태로 이를 행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은 생산 주요 업무 관련 시설 등을 제외한 사업장 내 장소에서는 쟁의가 가능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는 실정이다. 법원 판례까지 부분·병존적 점거를 허용하다보니 현대제철 통제센터 무단점거, CJ대한통운 본사 점거 과정에서 시설물 파손 및 임직원 폭행 등과 같은 불법행위가 잇따라 발생했다. 이에 반해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는 근로자 단결권과 사용자 재산권이 동등하게 보호받아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직장점거를 위법으로 판단하고 있음을 눈여겨 보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노조법은 사용자측이 근로자가 노조에 가입하거나 기타 정당한 조합활동을 하는 것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거나 근로자가 노조에 가입하지 않거나 노조로부터 탈퇴할 것을 고용조건으로 하는 행위 등을 부당노동행위로 인정,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노조와의 단체협약 체결 또는 단체교섭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거나 해태하더라도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노조전임자에게 급여를 지원하거나 노조의 운영비를 원조하는 행위가 명백히 부당노동행위로 규정되어 있는데도 해당 노조가 이를 문제 삼기는커녕 급여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다른 명분으로 사용자 비난에 나서는 것이 노동계 현실이다.

사용자를 옥죄는 부당노동행위처럼 노조의 부당행위 규정도 신설해야 균형이 맞는다. 전경련은 노조가 특정 노조에의 가입을 강요하거나 위력을 사용해 쟁의행위 참가를 강요하는 행위, 다른 노조의 업무를 위한 정당한 행위를 방해하는 행위, 쟁의행위에 참가한 조합원에 대한 임금 지급을 요구하는 행위, 해당 노조에 소속하지 않는 근로자에 대해 부당한 차별이나 지위 약화를 요구하는 행위 등을 그 사례로 들었다. 타당한 지적으로 판단된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강력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임금 인상을 통해 기득권 확대를 추구하면서 중소기업 등과의 격차가 날로 커지는 실정이다. 이에 비해 하청근로자들은 노조 가입률이 낮은데다 교섭력도 취약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가 고착되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근로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면서 노사 당사자의 선택과 자율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노동법제를 고쳐나가야 한다. 특히 노조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현행 법령의 취약점을 파악, 개정하는 것은 물론 사용주의 재산권 존중을 강화, 기업의 투자의욕을 되살리고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지원할 필요가 크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소를 위해 기업 단위가 아니라 산업과 업종 수준의 단체교섭을 확장하고 미조직 근로자도 실질적인 교섭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급속한 산업변화 흐름을 고려해 노동법령과 제도를 바꾸기 위해 산업, 업종, 지역, 원·하청 간에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도 절실하다.

야당 의원들이 노란봉투법을 개정하겠다면 노조의 힘이 취약했던 시절 노동 활동을 보호하는데 중점을 두고 입안된 관련 노동법령도 함께 대대적으로 손보는 것이 원칙에 부합한다. 노란봉투법이 야당 의원들의 숫적 우위를 무기로 여당의 의사와 재계의 노동법 개정 요구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여당 요청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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