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09.26 15:52
김소영(오른쪽 가운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유관기관과 금융시장 합동점검회의를 갖고 금융시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금융위)
 

#1. 코스닥 상장사인 A사 대표이사와 사내·사외이사, 임원 친·인척, 업무관련자 등 14명은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이란 호재성 정보를 공시하기 2개월에서 수시간 전에 자사 주식을 사들여 수억원의 부당이익을 올렸다. 여기에다가 가공매출을 생성하고 허위공시까지 내놓으면서 유상증자를 단행, 대규모로 자금을 모집했다. 미공개정보를 이용한데다 부정거래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2. 과거 2차례 시세조종 혐의로 벌금형과 기소유예를 받았던 전업투자자 2명은 처벌이후에도 5년간 70여개 종목에 대해 소위 '작전'을 일삼았다. 일가족과 지인으로부터 모집한 수십개 계좌를 사용, 수백만회의 시세조종성 주문을 제출하면서 수십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시세조종으로 인한 이익은 엄청나지만 당국의 환수는 유명무실하다보니 자본시장에서 불법을 거듭한 것이다.

상장사 임원의 미공개 중요정보를 이용한 주식 매집이나 불공정거래 전력자의 지속적인 위법 행위로 다수 일반투자자들의 손해가 커지고 있다. 이런 범죄가 근절되지 않으면서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 역시 추락 중이다. 투자환경이 악화되면 자금조달 창구로서 주식시장 본연의 기능 역시 발휘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이런 범죄 외에도 ▲투자조합을 활용해 실질 주체 숨기기 ▲차입금으로 기업을 사들이는 ‘무자본 M&A'를 단행한뒤 허위공시로 주가 띄우기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선행매매를 통한 이익 챙기기 등 온갖 증권사범이 횡행하고 있다.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유형은 갈수록 다양화되고 복잡화되고 있지만 처벌 수준이 솜방망이에 그치는데다 차단이나 예방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수많은 피해자가 양산되는 실정이다. 우리 증시가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위기국면에 몰려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본시장 불공정거래는 시장의 가격형성기능을 왜곡하거나 시장 거래에서 당사자들이 갖고 있는 정보 차이가 있는 현상을 일컫는 ’정보비대칭‘을 이용, 다른 참가자에게 손해를 입히는 사기적 행위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마땅히 증권당국은 규정 위반자를 처벌하고 재발을 막아야하는데도 현실은 딴판이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증권선물위원회에 상정, 의결된 불공정거래 사건은 총 274건으로 연평균 54.8건에 불과했다. 증선위는 금융위원회 산하 위원회로 자본시장 규제 위반 등에 대한 제재를 심의하고 의결하는 기구다. 미공개정보가 119건으로 43.4%에 달했고 부정거래 81건(29.6%), 시세조정 64건(23.4%), 시장질서 교란 10건(3.6%) 등의 순이었다.

불공정거래를 저지르는 이유는 명확하다. 돈을 벌기위해서다. 이를 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불법이익을 환수하는 금전적 제재이지만 현행 제도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우선 미공개정보 이용, 시세조종, 부정거래 등 3대 불공정거래의 경우 징역형이나 벌금형, 몰수·추징 등 형사처벌만 가능하고 과징금 부과 등 행정제재가 없다. 단지 시장의 건전성을 훼손하는 시장질서교란에 한해 행정부의 과징금 부과가 가능하다. 자본시장법 등 관련 법률에 부당이득을 산정하는 기준조차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이처럼 제재가 허술하고 가볍다보니 시장질서를 훼손하는 경제범죄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하는 것이다.

증선위가 지난 5년간 사직당국에 불공정거래 혐의자를 고발·통보 조치로 끝낸 사례는 전체(1075명)의 93.6%인 1006명에 달했다. 이에 비해 과징금 조치를 받은 혐의자는 47명(4.4%), 고발·통보와 함께 금융투자업자 제재나 과태료를 물게 된 혐의자는 22명(2.2%)에 불과했다. 더구나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증선위의 고발·통보로 사건 중 수사가 완료된 건을 기준으로 보면 검찰이 기소하지 않은 비율이 55.8%에 달했다. 

(표제공=금융위)

2020년 대법원의 미공개정보 이용, 시세조종, 부정거래 등 ‘3대 불공정거래’ 사범 64명에 대한 선고 결과를 보면 실형이 38명, 집행유예가 26명을 기록했다. 10명에 4명 꼴로 집행유예를 받은 셈이다. 형사처벌의 경우 증선위의 고발·통보에 이어 수사당국의 수사와 기소를 거쳐 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을 때까지 평균 2~3년 걸린다. 그 이전까지는 위법혐의자라도 자유롭게 자본시장에서 추가 범죄를 저지르면서 활보할 수 있다. 이처럼 제재의 적시성이 떨어지고 실효성도 미흡하며 억지력도 없다보니 불공정행위를 저지른 사람이 위법행위에 계속 가담하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투자자로부터 신뢰받는 자본시장 구축을 목표로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대응역량 강화방안’을 26일 내놓았다. 지난 5월 윤석열 정부는 자본시장 혁신과 투자자 신뢰 제고로 모험자본을 활성화한다는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불공정거래 행위 관련 제재의 실효성 제고 등 증권범죄 대응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따른 후속 조치이다.

무엇보다 악질적이고 반복적인 증권범죄를 예방하고 건전한 시장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3대 불공정거래는 물론 시장질서교란, 무차입 공매도 등 모든 불공정거래 행위자에 대해 최대 10년동안 금융투자상품 거래 및 계좌 개설을 제한하겠다는 방안이 주목된다. 범죄행위자를 장기간 퇴출시킨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제재의 실효성을 확보하기위해 제한대상자가 지인 명의의 계좌, 투자조합, 특정목적회사(SPC), 특정금전신탁 등 '자기의 계산'으로 수행하는 금융투자상품 거래를 모두 막겠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를 위해 연내 자본시장법 개정안 입법을 추진한다. 

금융위는 거래제한 대상자 인적사항과 위반내용, 거래 제한 기간 등을 홈페이지에 공표하고 증선위로부터 통지 받은 거래제한 대상자에 대해 거래를 처리하지 않을 의무를 금융회사에 부과할 예정이다. 이를 어긴 금융사에게 과태료를 매기고 이런 거래를 통해 또다시 불공정거래 행위를 행하는 경우 형벌이나 과징금을 부과할 계획이다. 범죄자로 낙인찍는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려면 거래제한 처리절차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철저한 점검과 주기적인 확인이 필요할 것이다.

불공정거래행위자에 대해선 최대 10년 동안 상장회사 임원으로 선임하거나 활동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조치도 눈에 띈다. 위반행위자의 직급과 관계없이 선임제한 대상자로 지정하기로 한 결정은 위반 행위 당시 직원으로 근무했다 해도 향후 임원으로 선임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이런 선임제한 조치는 코스피, 코스닥, 코넥스 시장 내 모든 상장사에 적용되며 금융회사는 비상장사라도 규제범위에 들어간다.

시장 파급력이 크거나 중요한 정보에 접근했던 사람이 한번이라도  불공정거래에 가담했다면 장기간 관련 업계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은 건전한 시장 질서 확립 차원에서 불가피하고 타당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아울러 금융위는 불공정거래 제재의 기준이 되는 부당이득액 산정방식(총수입-총비용)을 법률에 명시하고 3대 불공정거래에 대한 과징금을 신설, 부당이득액의 2배를 부과한다는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도록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이나 캐나다, 홍콩 등 금융선진국에서는 불공정거래 행위자에 대한 강도 높은 제재를 통해 시장질서를 확립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불공정거래를 시도하다가 걸리면 번 돈은 물론 그간 모은 돈 마저 털털 털린다는 공포감을 심어주어야 한다. 다만 범죄혐의가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원칙을 지키면서 조치예정자의 권익 보호에도 힘써 애꿎은 피해자 발생이 최소화되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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