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09.28 13:42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전경. (사진제공=전국경제인연합회)<br><br>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 전경. (사진제공=전경련)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형벌에는 사형, 징역, 금고, 자격상실, 자격정지, 벌금, 구류, 과료, 몰수 등이 있다. 행정기관이 부과하는 행정제재에는 과태료, 과징금, 영업정지, 공표, 개선명령, 폐쇄명령 등이 들어간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민사적 처벌의 일종이다. 현행 법에서 규정하는 범죄로 기소돼 형사재판에서 벌금 이상의 유죄를 선고 받아 그 형이 확정되면 검찰의 수형인명부나 경찰의 범죄경력자료 등에 기록이 남게 된다. 인생 이력에 ‘빨간줄’이 그어지는 전과자가 되는 것이다. 

기업이나 개인은 경제활동을 하면서 숱한 시련과 위기를 맞기 마련이다. 고의가 아니더라도 깜박하는 실수를 저지르거나 어쩔 수 없는 처지에 내몰려 법률을 어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고용 또는 노동 관련 법률에 사업주를 전과자로 전락시키는 규정이 많다는 점이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은 퇴직금 지급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14일내 퇴직일시금을 미지급한 사업주에게 징역 3년 또는 벌금 3000만원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런 법정퇴직일시금제도는 국민연금 등 연금제도를 갖고 있는 주요 선진국 중에서 한국에만 존재한다는 것이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분석이다. 일본은 퇴직일시금이 임의제도인데다 설령 청산의무를 어겨도 30만엔 이하의 벌금을 물리고 있다. 사업체 부도 등으로 미리 쌓아놓아야할 퇴직금을 주지 못하는 사업주를 교도소에 보내본들 해당 근로자에게 분풀이는 될지언정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적지 않다. 사업주에 대한 징역형 대신에 벌금을 부과하거나 퇴직일시금 이행을 강제하는 과태료 방식으로 전환하자는 것이 전경련의 요청이다. 사업주가 경영활동에 계속 종사하게 해서 밀린 퇴직금을 갚도록 유도하는 것이 근로자를 위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구시대적인 규정은 이뿐만 아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르면 노조 명칭 사용금지 의무를 지키지 않거나 노조법 위반 노조규약 및 결의처분 시정명령을 어긴 사업주에게 벌금 500만원을 부과할 수 있다. 노조의 자치활동과 관련된 사안에 국가가 형벌을 내리는 것이 과연 현시점에서 필요한지 의문이다. 해외에서 사례를 찾기도 힘들다고 한다. 형벌 조항을 없애고 소액의 과태료를 물리는 행정제재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상·질병·산전산후 근로자를 해고한 사업주에게 징역 5년 또는 벌금 5000만원을 부과하도록 한 근로기준법 규정도 형량을 낮추거나 사업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안정적인 경영활동을 통해 장기적인 고용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처벌 1건에 징역과 벌금을 병과하거나 형량을 가중, 최대 10배의 벌금을 물리는 법률들을 정비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헌법에 보장된 과잉금지원칙을 어기고 있거나 위배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과잉금지원칙이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함에 있어 국가작용의 한계를 명시한 것이다.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중 그 어느 하나에도 저촉되면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헌법상의 원칙을 말한다. 헌법 37조 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경련이 고용노동부 소관 법률 34건과 복지·안전과 관계된 다른 부처 법률 3건 등 총 37건의 법률에 담긴 형사처벌 항목을 조사한 결과 행위자와 법인을 동시에 처벌하는 ‘양벌(兩罰)규정’이 적용되는 항목이 397건으로 전체 432건의 91.9%에 달했다. 양벌규정은 통상 법 위반자에게 부과한 벌금과 동일한 금액을 법인에 물리는 것인데도 유독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은 위반자 벌금의 5~10배를 법인·기관에 양벌로 부과하고 있다. 중대산업재해나 시민재해로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안전보건조치 위반으로 근로사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는 1억원 이하 벌금을 내게 되며 법인도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내게 된다. 각각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7년 이하의 징역 형도 받을 수 있다. 이같은 규정은 행정기관이 규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형벌을 과도하게 부과한 것이란 비판에서 모면하기 힘들다. 피해 근로자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 없이 불필요하게 기업인을 전과자로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중대재해법이 제정, 올해부터 시행되면서 중대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건설사나 석유화학사, 철강사 등의 최고경영자가 되기를 기피하는 풍조가 나타나고 있다. 매일매일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심정으로 출근한다는 기업인의 한탄도 들린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기업마다 투자를 늘리고 고용을 창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반가운 현상이다. 안전한 사업장 환경을 만들고 관련 매뉴얼을 정비하며 근로자 교육을 강화시켜 산업재해를 없애나가는 것에 정책목적을 두어야 한다. 대형사고가 났다고 해서 희생양 찾듯이 사업주 엄단에만 나선다면 누가 경영활동을 이끌 것인가.

정부는 기업 기살리기에 역행하는 경제형벌을 제대로 파악하고 본질적인 개선방안을 마련, 국회의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산업재해로 숨진 근로자 유족이 과거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도록 관련 제도를 보완하고 부상을 당한 근로자는 빠른 시일내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되찾을 수 있도록 재활치료체계를 강화하는데 중점을 두어야할 것이다. 중대산업재해 추방은 해당 사업주에 대한 한풀이로 해결될 일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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