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09.30 13:35
학교 교육활동 보호 문화 조성 포스터(사진=교육부 페이스북 캡처)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1970년대만 해도 서울 주택가 골목은 방과 후부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오징어게임, 딱지치기, 구슬치기, 다방구, 목마타기 등을 하는 어린이들로 넘쳐났다. 저녁 먹으러 들어오라고 어머니가 외칠 때까지 종목을 바꿔가며 지칠 겨를도 없이 놀고 또 놀았다. 서로 땀 흘리면서 인내력과 협동심, 배려심을 배웠다. 동네 형이나 누나에게 먼저 인사하고 아우에겐 베풀어야 하며 나를 앞세우기에 앞서 우리를 중시해야한다는 덕목도 자연스럽게 익혔다. 골목은 인성을 도야하는 또 하나의 거리학교이자 사회화 현장이었다. 

90년대 후반부터 점차 두자녀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자녀 한명만 둔 가정이 대세가 되기 시작했다. 도시인들의 주요 거주공간도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으로 획일화됐다. 유치원이나 초등학생들조차 수업이 끝난 뒤 저녁 늦게까지 각종 사교육 현장으로 내몰리면서 이웃집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들어졌다. 더구나 일부 남아 있는 골목 역시 빼곡히 세운 차들로 인해 더 이상 놀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골목 학교’가 사라지면서 내 이익 챙기기를 우선하고 내 감정만을 중시하는 학생들이 부쩍 늘어났다.  

이로 인한 직격탄은 공교육 현장에 떨어졌다. 학생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체벌이 엄격히 금지되었지만 이로 인한 공백을 대체할 수단은 마땅히 강구되지 않았다. 교사들은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지켜야 하는데도 못된 학생을 혼낼 도리가 마땅치 않았다. 이러다보니 스승은 존경의 사표로 자리 잡기는커녕 성희롱이나 농담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렇게 자라난 청년들을 맡아 군인으로 변신시켜야하는 군대 초급간부들의 부담과 근심도 덩달아 커졌다.

교사의 가르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물론 학교의 정상적인 수업과 교육활동을 위협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 6월 수원시 모 초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복도에서 동급생과 몸싸움을 벌였다. 이를 발견한 교사가 학생 지도를 위해 학년연구실로 데려가자 교사 3명에게 욕설을 내뱉고 실습용 톱을 던지며 위협했다. 지난 8월 충남 중학교에선 한 학생이 교사의 지도를 무시하고 교단 위에서 수업 중인 선생님 옆에 누운 채 휴대전화를 충전하면서 조작하는 영상이 찍혔다. 이 영상은 온라인에 유포됐고 “이게 학교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9월에는 광주시 고등학교 학생이 여교사의 치마 속을 촬영할 목적으로 교탁 아래에 휴대전화를 놓아 몰래 찍다가 걸렸다. 지난해 11월에는 인천 초등학교 학부모가 수업 중인 교실에 찾아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교사에게 폭언과 욕설을 내뱉고 폭행에 나서 상해를 입히기까지 했다. 교권이 땅에 떨어졌음을 입증하는 사례이다.

교육활동 침해는 학생 또는 보호자 등이 교육활동 중인 모든 교원에 대해 교원지위법 관련 법규(교육활동 침해 행위 및 조치 기준에 관한 고시)에서 정한 상해·폭행, 명예훼손·모욕, 손괴, 성폭력범죄, 불법정보 유통, 공무·업무 방해, 성적 굴욕감·혐오감, 교육활동을 반복적 부당하게 간섭, 교원의 영상·사진 무단 배포 등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할 경우로 정의된다. 이런 교육활동 침해 사안이 발생하면 생활지도 경력 교원이나 학부모, 변호사, 관할지역 경찰 등으로 구성된 학교 교권보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침해 행위 정도에 부합하는 학교봉사, 사회봉사, 특별교육 및 심리치료, 출석정지, 학급교체, 전학, 퇴학 등의 처분을 내리고 피해교원에게 심리상담과 특별휴가, 조언 등을 지원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교육활동 침해 심의건수는 2019년 2662건에서 올해 상반기 1596건을 기록했다. 20년과 21년은 코로나19에 따른 원격수업 진행이 되었음에도 1197건, 2269건이나 발생했다. 특히 원격수업이 도입된 뒤 수업 중인 교사 얼굴을 캡처, 유포하는 신종 침해유형이 나타난 바 있다. 교사의 지도에 따르지 않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행위가 이처럼 증가하는데도 대응방안을 규정한 법령이 없다보니 교권침해를 당한 교사가 특별휴가를 통해 문제를 일으킨 학생으로부터 우회적으로 회피하곤 했다.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2007년 초중등교육법에 학생의 인권보장이 신설되고 2010년에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최초로 제정되는 등 학생의 인권과 학습권이 강조된 반명 교사의 권리 보호와 학생지도권한은 균형 있게 보장받지 못한 탓이 크다.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높아지면서 정상적인 가르침마저 편향된 모습으로 구설수에 오르면서 교사의 정당한 학생지도가 위축되고 있다. 심지어 수업 도중 책상에서 잠을 자는 학생을 깨운 교사가 아동학대로 신고될 지경이다. 교사들에게선 “참는 게 유일한 방법”이란 한탄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뒤늦게 교육부는 29일 모든 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교육활동 침해 예방 및 대응강화 방안 시안을 내놓았다. 학생의 수업방해 행위에 적극 대응하기위해 초중등교육법에 교원이 적극적으로 학생 생활지도에 나설 수 있도록 학생 생활지도 권한을 명시하기로 했다. "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는 현행 규정 대신 “교원은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교 교육활동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법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지도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할 방침이다.

교육활동 침해 행위 및 조치 기준에 관한 고시에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불응하여 교육활동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행위’도 추가한다. 특정 학생이 수업활동을 심각하게 방해할 경우 교권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 다른 학생의 학습권도 침해된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교육부는 교육여건 변화에 따른 침해유형이 다양화되고 복잡화되는 추세에 맞춰 새로운 침해유형을 발굴, 반영하겠다고 강조했다. 너무나도 당연한 결정이다.

아울러 학교 교권보호위원회에서 출석정지, 학급교체 조치를 받은 학생과 학부모가 특별교육과 심리치료를 반드시 받도록 교원지원법을 개정할 방침이다. 보호자도 함께 참여하는 특별교육을 통해 문제행동을 조속히 치료한다는데 중점을 둔 방안이다. 이를 어기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아울러 교육활동 침해 학생이 교권보호위 조치를 거부하거나 기피하면 학교장이 추가징계를 내릴 계획이다 교육부는 교권 침해 사건이 지속되면 교육활동 침해 학생에 대한 조치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작성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런 극약처방까지 나오지 않도록 교권 침해 행위가 하루속히 추방되어야 한다.

이미 선진국들은 교사의 수업권과 교실내 질서 유지에 관한 사항을 명시적으로 규정, 운영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교육법은 교사가 교실에서 학생을 퇴장시킬 권리, 학생의 폭력기록에 대한 알 권리, 교사가 학생을 훈육하고 안전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영국도 학습자를 훈육할 수 있도록 교사에게 법제적 권한을 부여한다. 학습자에 대한 구금(狗禁) 선고, 부적절한 물품 압수, 제재를 위한 합당한 물리력 사용 등의 권한을 보장 중이다. 일본 역시 학교의 질서 유지와 다른 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출석정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품행이 불량해 교육에 방해가 되는 학생에게 출석정지 명령도 내릴 수 있다.

교육부는 중대하고 긴급한 교육활동 침해 사안이 발생하면 침해학생과 피해교원을 즉시 분리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피해 교사를 특별휴가 보내 침해학생과 만나지 않도록 해왔던 '꼼수'를 더이상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학교의 장은 중대한 침해 사항이 발생하고 침해학생에 대한 선도가 긴급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다른 공간 이동, 별도의 학습자료 제공 등 교육적 조치, 학교 봉사, 출석정지 등 분리 조치를 할 수 있다”는 규정을 교원지위법에 넣기로 했다. 이와 함께 시도교육청이 가입한 피해교원 배상책임보험의 보장범위를 확대하고 피해교원이 요청하면 교권보호위를 적극적으로 개최할 수 있도록 관련 근거도 마련할 방침이다.

교육부의 이번 방안 발표는 때 늦은 감이 적지 않다. 입법화 작업을 서둘러 학교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이행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의 명예 실추 등을 우려, 교권 침해 사례를 미봉책으로 대응하려는 교장이 더 이상 나와선 안 될 것이다. 시도교육청 역시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지원체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적극 수립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 교원이 상호 존중하는 문화를 조성한다는 차원에서 교육공동체 협약을 체결하는 것도 요구된다. 시도에서 이같은 협약 내용을 토대로 교권보호 조례를 신설하거나 기존 조례를 개정하는 등 자율적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사회적 협력수준을 높일 필요성이 크다.

국가인권위원회나 검찰, 경찰 등 수사당국의 자세 변화도 요구된다. 학생 인권과 교권이 상호 존중되는 교육공동체를 구현한다는 원칙을 존중해 현안을 처리해야할 것이다. 교사는 더 이상 갑이 아니며 학생 역시 을이 아니다. 이런 시대변화 흐름 속에서 공교육이 바로 설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에 나서 주기를 기대한다.

어린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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