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10.07 11:33
6일 공공기관 '에너지 다이어트 10' 실천 결의 행사가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지난 5일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 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가 오는 11월부터 하루 200만 배럴 감산을 결정했다. 이로 인해 하락 추세에 있던 유가는 강한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번 감산 규모는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인 2020년 3월 수요 위축을 우려해 하루 580만 배럴을 줄인 이후 최대 폭이다. 하루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2%에 해당한다. 6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5일보다 69센트(0.79%) 오른 배럴당 88.4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 가격은 산유국의 감산 소식으로 4일 연속 올랐다. 상승폭이 11.27%에 달했다. 북해산 브렌트유와 두바이유도 일제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OPEC 플러스'는 주요국 기준금리 잇단 인상 등으로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면서 수요가 줄어들 것에 대비하고 시장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감산이 필요하다고 밝혔지만 '배럴당 100달러 시대'를 목표로 한 조치로 여겨진다. 특히 북반구의 난방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겨울이 시작되는 11월부터 원유 공급을 줄이기로 하면서 이로 인한 여파가 본격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원유 또는 정유 제품 가격이 상한선을 넘으면 제3국으로의 해상운송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제재를 6일부터 시행함에 따라 러시아산 원유 공급이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도 여기에 한몫할 것으로 여겨진다.

미국은 러시아와 손을 잡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깊은 유감을 반영하듯 OPEC플러스가 근시안적 결정을 내렸다고 맹비난했다. 이번 조치에 대응해 11월에 1000만 배럴의 전략비축유를 방출하고 석유 매장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베네수엘라가 석유를 본격적으로 생산·수출할 수 있도록 제재를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1990년대만 해도 하루 320만 배럴 이상을 생산했지만 지난 2020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로 서방기업들이 철수하면서 원유 생산이 대폭 위축됐다. 현재 수출 물량은 하루 45만 배럴 수준에 불과하다. 공급 확대가 이뤄지려면 수개월 이상 걸리겠지만 심리적으로 시장 안정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이 같은 대응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석유류 가격 안정을 꾀하려는 바이든 대통령의 의중이 담겨 있다. 원유 공급을 늘리려는 미국 등 서방진영과 공급 조절을 통해 높은 가격 유지를 추구하는 OPEC플러스와의 치열한 줄다리기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원유가격의 강세 반전은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무역수지 6개월 연속 적자 등으로 원화 약세가 본격화된 한국 경제에 더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상품수지는 7월에 이어 8월에도 적자를 기록하면서 8월 경상수지마저 30억5000만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2020년 4월(-40억2000만달러) 이후 가장 큰 적자 규모이다. 우리 경제에 빨간불이 선명하게 켜진 셈이다. 겨울철을 앞두고 에너지 수입이 늘어날 것인 만큼 당분간 무역수지 적자 개선도 쉽지 않게 됐다.

대내외 대형 악재로 정부와 기업의 수출 확대 노력이 성과를 내기 힘든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고물가와 경기위축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데다 주요국의 수입 수요도 갈수록 줄어들 것이 뻔하다. 이미 전 세계는 심각한 에너지 위기에 직면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에너지 무기화 흐름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서방과 친러시아 진영 간의 에너지 패권경쟁은 물가 상승을 자극하고 이는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기조 강화를 야기할 것이다. 이리 되면 기준금리 정점 시기가 늦어지게 되고 경기침체 우려도 더 커지는 악순환 고리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미 유럽연합 등 주요국은 에너지 요금을 대폭 올리고 소비절약과 빈곤층 지원을 위한 재정투입에 나서고 있다. 지난 여름철에 에어컨 끄기 운동과 함께 샤워를 5분 이내에 마치라는 캠페인까지 펼칠 정도로 에너지 절약의 고삐를 당겼다. 

한국은 원유나 천연가스 공급을 모두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이다. 이런 처지에서 국민소득이나 경제수준보다 전기요금이나 가스요금이 낮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에 따라 에너지 위기감이 느슨하고 전기와 가스요금의 가격기능도 미약해 에너지 다소비·저효율 구조가 고착된 상태다.

이번 에너지 위기는 상당기간 지속될 우려가 높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모든 국민이 나서는 것은 물론 하루속히 에너지 저소비·고효율 구조로 전환하는 것만이 최소한의 자구책이다.
  
정부는 지난 1일 전기요금은 kWh(킬로와트시) 당 7.4원, 민수용 도시가스요금은 메가줄(MJ) 당 2.7원 인상했다. 이에 앞서 10월부터 적용되는 기준연료비 잔여인상분인 kWh(킬로와트시) 당 4.9원을 포함하면 월 2270원 증가한다. 4인 가구는 올해 들어 세 차례 단행된 요금인상으로 10월부터 연초보다 16% 가량 늘어난 4만2560원의 전기요금을 부담하게 된다. 내년에는 전기요금이 올해 초 대비 50% 이상, 10월과 비교하면 30% 이상 급등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우선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핵심 지표인 기준연료비가 내년에 2배 가량 오를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이미 한국전력의 적자 규모 축소 유도, 국제에너지가격 고공행진, 전력 과소비 억제 등을 위해 단계적으로 에너지요금을 정상화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9월 30일 발표한 에너지 절약 및 효율화 대책‘을 이행한다는 의지를 천명하기위해 10월 6일 서울 상암동 서울에너지드림센터에서 공공기관 '에너지 다이어트 10' 실천 결의 대회를 거행했다. 에너지 다이어트 10이란 겨울철(22년 11월~23년 3월)에 최근 3년 평균 에너지 사용량을 10% 줄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12년 12월 서울 마포구 상암동 평화의 공원에 설립된 서울에너지드림센터는 국내 최초의 에너지자립 공공건축물이다. 에너지절약의 상징성을 부각하기위해 이곳에서 행사를 치른 것으로 분석된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주재로 열린 이날 행사에 정승일 한전 사장,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이 승 가스공사 부사장 등 주요 공공기관 기관장과 관계자가 참석했다. 공공기관장들은 에너지 10% 이상 절감목표를 달성하고 겨울철 에너지절약 5대 실천 강령을 준수하며 전 국민 에너지절약 문화 확산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 노력한다는 결의문에 서명했다. 에너지절약 5대 실천강령은 ▲건물 난방온도 18도에서 17도로 제한 ▲전력피크 시간대(9시~10시, 16~17시) 난방기 순차운휴 ▲근무시간 중 개인난방기 사용 금지 ▲공공기관에 설치된 경관조명 소등 ▲업무시간 3분의 1이상, 비업무시간 및 전력피크시간대 실내조명 2분의 1이상 소등으로 구성됐다.

이 장관은 이날 “전례 없는 에너지 비상상황에서 에너지 다이어트는 우리 경제의 생존을 좌우하는 절실한 과제”라며 “올 겨울 공공기관들이 앞장서 에너지 다이어트를 이행해 우리경제의 건강을 지켜야한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의 언급대로 공공부문은 비상한 각오로 에너지 절약에 적극 나서 민간에 확산되도록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이미 올해 공공기관 경영평가 항목에 기존 에너지절약추진위원회 구성·운영이 빠지고 동절기 에너지 절약 이행실적이 들어간 상태다. 

국민의 호응을 얻기 위해 에너지를 절약한 만큼 현금으로 돌려주는 에너지 캐시백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에너지 다소비기업과 효율혁신 협약을 체결하는 것도 뒤따라야할 것이다. 에너지절약시설 투자를 유도하기위해 융자 혜택을 확대하고 에너지효율 향상을 위한 기술개발에 세제 지원을 넓혀나가는 노력도 강화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에너지 요금을 단계적으로 정상화해 가격기능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는 것이 절실하다. 원가요인을 반영해 요금 정상화를 추진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로 인해 모든 경제주체들의 고통은 커질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계속 미룬다면 한전 등 에너지 공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협 받아 안정적인 공급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다만 취약계층의 요금 부담 증가를 완화하기위해 에너지 바우처 지원 대상과 단가를 높이는 등 지원 조치 강화가 요구된다.

당면한 에너지위기를 그간 에너지를 흥청망청 싸왔던 소비 습관을 뿌리째 바꾸는 기회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에너지 공기업부터 보다 강도 높은 비용 절감 노력에 나서야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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