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10.11 12:26
산업스파이 이미지 (사진제공=픽사베이)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대법원 사법연감을 기반으로 검토한 결과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2021년 처리된 1심 형사재판은 모두 33건으로 20년(14건)보다 136% 늘어났다. 산업기술 유출 혐의가 드러나 검찰이 기소한 범죄가 이처럼 증가했지만 이중 60.6%에 이르는 20건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에 반해 징역, 금고, 구류로 구성되는 자유형(自由刑)은 전체의 33.3%인 11건에 그쳤다. 그나마 9건은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징역형은 고작 2건이었다. 공소기각 결정 등 기타는 9건으로 전체의 11.1%를 차지했다. 

대표적인 기술 보호 관련 법률인 산업기술보호법이 2019년 8월 개정되면서 국가 핵심기술의 해외 유출에 대해 3년 이상의 유기징역과 15억원 이하의 벌금 병과가 신설됐다. 국가핵심기술 이외 산업기술의 해외 유출은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됐다. 산업기술의 국내 유출 역시 기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억원 이하의 벌금에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된 바 있다. 국회는 산업기술보호법 처벌 수준을 높였지만 법원에서 선고되는 형량은 법정형에 비해 매우 낮았다. ‘법 따로 판결 따로’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법원이 산업기술 범죄에 이처럼 관대한 것은 2021년뿐만이 아니다. 17년부터 21년까지 1심 형사공판사건 81건 중에서 집행유예가 32건(39.5%)로 가장 많았고 무죄 28건(34.6%), 기타 9건(11.1%), 재산형 7건(8.6%)의 순이었다. 유기징역형은 5건으로 전체의 6.2%에 불과했다. 

지난 5년간 기술유출 범죄 판결에서 집행유예와 무죄가 전체의 74.1%를 차지한 것은 법원의 양형기준이 국회의원들의 입법 목표와 다른 탓이 크다. 전경련의 의뢰로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연구한 ‘기술유출·침해행위에 대한 처벌법규 및 양형기준의 검토와 정책 과제‘에 따르면 법원은 실제 판결을 내릴 때 지식재산권 범죄 양형기준의 ’영업비밀침해행위‘를 적용한다. 해외로 기술유출한 범죄의 양형기준은 기본이 1년에서 3년6월이며 감경사유가 있다면 10월에서 1년6월, 가중사유를 반영해도 2년에서 6년이다.

김민배 교수는 강화된 법률 개정 내용이 실제 법원의 판결에 반영되려면 경제안보에 관계되는 기술유출 범죄에 대해 적극적인 양형기준을 제시하고 국가핵심기술의 경우 별도의 범죄군으로 분리, 양형기준을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산업기술보호법과 방위산업기술보호법 상의 기술 유출·침해 행위에 대해 별도의 산정기준을 만들 것도 제안했다.

인공지능, 첨단반도체, 양자컴퓨터 등 첨단 경제기술을 놓고 주요국 간에 패권 경쟁이 치열한 실정이다. 경제안보를 위험에 빠뜨리는 산업스파이가 더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법원이 양형기준을 고치거나 새로 만들어 엄하게 처벌할 필요성이 크다.

다만 법원의 고민도 살펴볼 필요가 적지 않다. 21년 10월 1심 재판부는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자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면서 유출된 기술이 어느 정도로 중국 업체의 특허 등록에 기여했는지 산정이 쉽지 않아 피해 회사의 정확한 피해 산출이 어렵다는 점을 양형 이유로 제시했다. 21년 4월 징역 1년·집행유예 2년과 함께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한 1심 재판부 역시 범행으로 인한 피해회사의 손해가 현실화되었는지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밝혔다. 여기에는 해외 유출 목적이 입증되어야 중형에 처할 수 있다는 산업기술보호법 규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술 유출 관련 사건은 개발하고 있거나 시장에 판매하기 직전인 제품과 연관된 기술이 많다. 이에 따라 가치평가와 손해의 입증이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피해규모는 범행의 대상이 된 기술의 가치를 산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기술 유출에 따른 피해 회사의 직접적인 손해나 매출 손실 등은 기술침해 행위가 발생한뒤 단기간 내 입증할 수도 없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피해 영업비밀의 ‘시장교환가격’은 영업비밀 취득자가 얻게 된 이득액이라고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 영업비밀로 인하여 기술개발에 소요되는 비용이 감소되는 경우 감소분 상당, 영업비밀을 이용하여 제품생산까지 발생시킬 경우 제품 판매 이익 중 그 자료가 제공되지 않았을 경우와의 차액 상당 등의 요소를 감안하며 ‘시장교환가격’을 산정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달리 말해 유출된 자료들에 대한 연구개발비를 곧바로 시장교환가격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 법원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러다보니 검찰이나 피해자가 제시한 피해액을 그대로 인용하는 판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대부분의 사건에서 낮은 형이 선고되는 이유도 실제 기술 가치를 산정하고 손해액과 이득액을 입증하는 것이 상당히 곤란하다는 이유를 내세우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법원의 입장은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해서 기술유출범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된다면 첨단산업 기술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범행을 부채질할 수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7일 중국이 첨단 컴퓨팅 칩을 확보하고 슈퍼컴퓨터와 첨단 반도체를 개발하고 유지하기 위한 능력을 제한하기 위해 반도체 관련 신규 수출 통제조치에 들어간 것은 핵심기술이 경제성장은 물론 국가안보와 직결된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중국의 반도체산업을 고사시켜 반도체 굴기를 막겠다는 미국의 국가이익이 반영된 결정이기도 하다. 미국이 전략무기를 동맹국에 한정해 판매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술을 빼돌려도 징역형은 모면한다는 인식 확산을 막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피해기술의 가치와 피해 규모를 보다 명확히 파악해 불법의 수준과 규모에 비례해 처벌이 이뤄지도록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기술 유출과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금액을 계산하기 위해 공신력을 가진 전문기관을 설치, 가치평가를 맡도록 제도를 정비하자는 김 교수의 제안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산업기술보호법이 2006년 제정된뒤 2015년 개정될 때까지 ‘산업기술보호위원회’는 국무총리실 소속이었다.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위원들은 관계부처 장관과 전문가로 구성됐다. 산업기술보호위는 주무부처 차관이 위원장이고 관계행정기관 1급 공무원이 참석하는 '실무위원회'와 관계행정기관 과장 등이 참석해 검토 업무를 맡는 '전문위원회'를 산하에 두었다. 법이 바뀌면서 실무위원회가 없어지고 위원장도 국무총리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 격하됐다. 산업부가 주무를 맡으면서 신속하고 간결한 심의는 이뤄졌지만 관련 다른 부처를 통할하고 지휘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졌다. 기술유출이 국민경제와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날로 커진다는 점에서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은 지난 5월 반도체 공급망 강화, 첨단기술 연구개발을 위한 민관협력, 군사전용 가능 기술의 특허 비공개 등을 골자로 하는 경제안보법을 제정했다. 이에 앞서 기시다 후미오 수상은 지난해 10월 내각의 경제안보를 총괄할 초대 경제안전보장담당상에 고바야시 다카유키 중의원을 임명한 바 있다. 경제안전보장추진법과 경제안보상 신설은 기시다 수상의 공약이었다. 기사다 수상은 지난 8월 개각에서 다카이지 사나에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을 임명했다. 대만은 지난 5월 국가안전법을 개정, 핵심기술 유출 사범에 대해 경제간첩죄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한국 기업의 핵심기술이 해외 경쟁기업으로 빠져나간다면 해당 기업은 물론 관련 산업생태계, 국가발전에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첨단기술을 철저히 보호해야만 만성적인 기술무역수지 적자에서 벗어날 수 있음도 물론이다. 주요국의 첨단기술 보호와 전담조직 구성, 수출통제 강화, 범죄자 처벌 수위 상향 흐름에 맞춰 우리나라도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산업기술보호위원회가 경제안보와 기술보호 등에 대한 종합계획과 국가정책을 수립, 추진하고 실무위원회가 국가핵심기술 지정 업무를 담당하도록 산업기술보호법을 다시 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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