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10.13 12:16
(사진제공=금융위)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신탁(信託)이란 대체로 금전이나 부동산, 부동산, 증권, 금전채권, 부동산 관련 권리, 정신적이거나 지능적 창조물을 독점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인 무체재산권(無體財産權) 등을 신뢰할 수 있고 전문성도 갖춘 개인이나 회사에 관리 또는 처분을 의뢰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탁은 차량이나 미술품 등 다양한 재산을 수탁자가 일괄로 넘겨받아 수수료를 받고 관리하면서 위탁자에게 이익을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금융선진국에선 가계 재산을 운용·관리하고 이전하는데 편리해 종합재산관리수단으로 널리 활용된지 오래다. 

신용등급이 떨어져 금융시장에서 돈을 구하기 힘든 중소기업 등이 보유재산을 유동화해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도 신탁은 한몫을 한다. 신탁은 재산의 소유권이 위탁자로부터 수탁자로 이전되면서 위탁자의 도산 위험으로부터 절연되는 ‘도산격리' 효과를 갖고 있어서다. 2020년 현재 일본의 국내총생산 대비 신탁 수탁고는 173%에 달한다. 미국도 94%를 기록했다. 이에 반해 한국은 53%에 불과했다. 

여기에는 종합재산신탁이 거의 발달하지 못한 영향이 크다. 21년말 현재 신탁재산별 비중을 보면 금전이 570조원으로 전체의 50%에 달했다. 이어 부동산이 403조원으로 35%를 차지했다. 종합재산은 6000억원으로 0.04%에 그쳤다. 금융상품 판매 목적의 금전신탁과 개발사업·담보대출 등과 관련된 부동산신탁 위주로 발전한 것은 자본법에서 신탁이 가능한 재산으로 금전, 증권, 금전채권, 동산, 부동산, 부동산 관련 권리, 무체재산권 등 7가지만 열거했기 때문이다. 

특히 채무의 신탁을  허용하지 않은 영향도 크다. 집이나 빌딩 등을 짓거나 사면서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현재 담보대출 등 채무와 결부되었다면 신탁을 설정하기 어렵다. 보험금청구권도 신탁 수요가 많지만 보험범죄 악용 우려로 신탁 대상이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여러 규제와 국민들의 인식 부족 등으로 신탁 제도 본연의 장점을 살린 신탁상품은 적고 관련 서비스 제공도 미흡한 실정이다.

한국은 2025년부터 65세 이상 인구의 비중이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세계 1위 저출산 국가인 탓에 갈수록 고령자비율은 더 높아지면서 주택신탁이나 후견신탁 등을 통한 복지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다. 다양한 종류의 재산을 전문가에게 맡겨 노후생활의 생계안전망을 강화하는 체제를 하루빨리 갖출 때다.
  
국민들의 평균 수입도 꾸준히 늘어나면서 재산 축적도 상당부분 이뤄졌다. 국제통화기금이 11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자료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 예상액은 3만3590달러(약 4797만원)로 지난해보다 4.2% 줄었지만 일본과의 격차는 IMF 통계 작성 이후 최소 수준인 770달러로 좁혀졌다. 일본의 올해 1인당 GDP가 작년보다 12.6% 감소한 3만4360달러(약 4904만원)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다양한 재산을 종합적으로, 장기적으로, 적극적으로 관리하기위해 12일 신탁업 혁신방안을 내놓았다. 무엇보다 시장 수요가 큰 채무와 담보권을 신탁가능 재산에 추가하고 재산의 원소유자인 위탁자가 담보권신탁대출을 실행하기 위해 재산에서 담보권만을 분리, 신탁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방침이 주목된다. 담보권신탁대출은 소유권이 신탁업자에게 넘어가는 담보신탁대출에 비해 위탁자의 재산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소유자에게 안정감을 주고 수탁자 역시 예상하지 못했던 법률적 책임에 대한 부담도 없다. 주택담보대출이 설정돼 잔여채무가 존재하는 집도 신탁을 통해 관리할 수 있게 되면 해외 장기 체류하는 주재원이나 재산관리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층의 편의와 혜택이 증진될 수 있다.

금융선진국에서 신탁은 고령화시대를 맞아 재산관리 뿐만 아니라 후견, 세무, 법률 서비스까지 함께 제공하는 종합생활관리서비스로 진화 중이다. 신탁업자 등 수탁자가 스스로 전문역량이 없는 분야의 업무를 외부 전문기관에게 맡기는 업무위탁도 자유로워 관련 생태계가 활성화됐다.

이에 반해 한국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 신탁과 관련한 업무위탁을 허용하고 있지만 주요 업무의 경우 신탁업 인가를 받은 신탁업자에게만 위탁이 가능하다. 주로 금융회사들이 신탁업을 겸영하다보니 금융회사 간에만 신탁 관련 업무 위탁이 이뤄지고 있다. 이로 인해 비금융 전문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신탁서비스가 나올 수 없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한 상태다.   

금융위는 한국도 미국이나 일본, 영국처럼 ‘신탁 2.0’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고객의 사전 동의 아래 신탁업자가 자신의 업무 일부를 검증된 외부 전문기관에 맡기는 것을 허용할 방침이다. 병원이나 법무법인, 회계법인, 세무법인, 특허법인 등 비금융 전문기관이 신탁 업무의 일부를 위탁받아 전문화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관련 규율을 정비할 계획이다. 

종합신탁업 인가를 받은 38개사는 업무를 맡길 전문회사들을 대상으로 업무 관련 업력, 인적 전문성, 자본 적정성, 재무적 안정성, 이해 상충 가능성 등을 평가, 협력 대상을 고르게 된다. 신탁업자는 전문기관을 주기적으로 관리·감독하고 금융당국은 사전신고와 사후감독을 통해 시장 질서를 유지할 방침이다.

새로운 제도가 정착되면 세제와 법률 자문에 전문성을 갖춘 법무법인은 유언대용 신탁전문기관으로, 치매노인 돌봄이나 요양에 특화된 의료법인이나 병원은 치매요양 신탁전문기관으로, 특허관리와 활용을 잘하는 특허법인은 지식재산권 신탁전문기관으로, 애완동물 관리에 명성이 높은 동물병원은 애완동물 신탁전문기관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충족할 수 있고 신탁사와 비금융 신탁전문기관은 각자 매출을 늘리는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이 커진다는 점에서 기대된다.

전문기관은 자신이 수행 중인 신탁계약에 대해 고객에게 투자를 권유하거나 소개할 수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제도 개선 이후 요양병원이 환자에게 업무의탁을 받은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권유하는 등 시장에서의 서비스 경쟁이 촉발될 수 있다.

현재 비금전재산 신탁은 수익증권 발행이 제한된다. 현행 자산유동화법에 따르면 자산유동화 제도는 유동화 대상 자산을 보유한 법인의 신용도로 BB 이상을 요구하고 있어 업력이 짧은 혁신기업이나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기업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규제특례를 통해 빌딩이나 저작권 등 비금전재산을 신탁, 수익증권을 발행하는 '조각투자' 서비스가 출시되었지만 현행 법규상 발행 근거가 없다는 점도 문제이다.

이같은 현실을 감안, 금융위는 중소·혁신기업의 자금조달을 돕고 조각투자 등 혁신서비스 제도화를 위해 금전과 보험금청구권을 제외한 모든 재산의 수익증권 발행을 원칙적으로 허용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부동산이나 금전채권, 무체재산권은 전면 허용하지만 유동화 수요와 투자자 보호 등을 위해 증권, 동산, 부동산관련권리, 담보권은 혁신서비스 지정 건 등에 한해 개별적으로 허용할 방침이다.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신탁을 활용해 안정적으로 가업승계를 이루려는 수요가 커지고 있지만 현행 자본시장법은 신탁된 주식에 대해 의결권 행사를 15%로 제한하고 있어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물론 우회적 지분 취득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금융위는 가업승계 목적으로 설정된 신탁에 편입된 주식은 100%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법률 개정에 나설 방침이다. 제도 취지를 살리기 위해 ▲중소·중견기업 사주가 위탁자이고 생전 수익자일 것 ▲사주가 자사주를 신탁할 것 ▲경영권 승계 목적으로 위탁자 생전에 설정된 신탁일 것 ▲신탁업자가 가업승계신탁의 명칭으로 신고한 약관에 따라 체결된 신탁일 것 등의 조건을 지킬 경우 의결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오해를 없애기 위해 필요한 대책으로 여겨진다.

신탁업을 활성화하면서 그에 걸맞게 신탁업자의 책임수준을 더 높이는 것도 요구된다. 현재 신탁법은 신탁업자가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를 다해 신탁재산을 운용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같은 '선관의무'는 선진국 수준보다 낮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신탁업자는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와 전문성을 다해 신탁사무를 처리할 것’으로 신탁법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신탁업 혁신조치에 따라 국내 신탁업 시장이 발전하면 국민 편익도 증진될 수 있다. 관련 기업의 매출이 커지면서 일자리 증가 효과도 기대된다. 금융위는 종합재산관리 역량을 키우고 자금조달기능을 강화할 목적으로 마련한 이번 방안의 세부 대책을 검토하면서 기존 업계의 기득권 고수 요구에 밀리지 않아야 한다. 수요자의 입장을 우선시하면서 미래 변화 흐름까지 고려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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