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문병도 기자
  • 입력 2022.10.17 14:16
SK 판교캠퍼스 A동 지하 3층에 불에 탄 채로 남아 있는 비상축전지. (사진=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계정 캡처)
SK 판교캠퍼스 A동 지하 3층에 불에 탄 채로 남아 있는 비상축전지. (사진=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계정 캡처)

[뉴스웍스=문병도 기자] 17일 출근한 직장인들은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사태로 업무에 상당한 지장을 받았다.

주 메일로 다음메일을 사용하던 이들은 서둘러 일일이 거래처에 문자를 보내서 대체 메일로 자료를 보내라고 안내하고 피드백 받느라 진땀을 뺐다. 

지난 15일 오후 3시 30분 SK C&C 판교 데이터 센터 화재로 이곳을 메인서버로 활용하던 카카오톡을 비롯한 카카오의 각종 서비스가 마비됐다. 이후 카카오페이, 카카오게임즈, 카카오웹툰 등 상당 부분 기능이 복구가 이뤄졌지만 17일 오전까지도 다음 메일과 검색 등 일부 기능이 여전히 정상화하지 못했다.

'국민 소통채널'의 몰락이다. 

'카카오 공화국'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카카오의 각종 서비스는 한국인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메신저부터 교통수단을 물론 결제와 쇼핑까지…

지난 2010년 출시된 카카오톡은 4000만 한국인이 사용하는 '국민 메신저'로 자리매김했다. 카카오톡은 소통의 패러다임을 바꿔놨다. 카카오톡은 친구들과의 사담을 나누는 것에서 나아가 직장 상사와 업무에 관해 논하는 수단이 된지 오래다. 

공공 서비스로 인식하는 '대중교통' 서비스도 카카오를 활용해야 하는 세상이 됐다. 카카오T 없이는 택시를 잡아타기 힘들어졌다. 택시 외에도 자전거, 전동 킥보드 등 각종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카카오 서비스가 필요하다.

금융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카카오 뱅크와 카카오페이로는 에금과 송금, 정산이 훨씬 쉬워졌다. 계좌번호를 몰라도 간편하게 이체할 수 있게 됐다. 카카오 계정을 통해 다른 서비스도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멜론과 같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는 물론 웨이브, 티빙 등의 온라인동영상 서비스(OTT)와 각종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카카오톡을 통해 간편하게 로그인할 수 있게 됐다.

생활 깊숙하게 파고든 카카오가 먹통이 되자 국민생활은 엄청난 불편을 겪었다.

데이터 센터 화재로 카카오의 서버 3만2000대가 전부 다운되면서 전국민의 일상도 멈췄다.

카카오 먹통은 국가 재난급 사태가 터진 것과 다름없다. 국가 기간 소통망이나 다름없는 카카오의 먹통사태가 몰고온 파장은 그만큼 컸다. 

'카카오 블랙아웃' 사태는 독점적 지위를 가진 정보기술(IT)플랫폼이 서비스를 부실 운영해 벌어졌다는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카카오가 IT업체의 기본인 데이터센터 재난 복구 시스템을 갖추지 않아 벌어진 결과라는 평가다. 잦은 서비스 오류에도 '네트워크 선점 효과'를 통해 10년 넘게 국내 1위 자리를 지켜오면서 교만해진 결과다.

이번 사태는 단순 화재로 발생했다. 하지만 문제는 카카오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카카오는 재난 백업 미비, 과도한 서버 집중, 비상대응체계 부족, 자체 운영 데이터센터(IDC) 전무 등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었다.

먼저 카카오에는 재난대비 백업시스템이 없었다.

대체로 대형 IT플랫폼들은 화재와 같은 재난 상황에 대비해 여러 데이터센터에 서버를 분산하는 이중화 작업을 한다. 카카오톡 같은 주요 서비스는 한 곳에서 지진 혹은 테러 등의 사고가 나더라도 다른 곳에서 실시간 백업이 가능한 이원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평소 이원화 조치가 적용 되지 않아 데이터센터 전원이 한꺼번에 내려가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고 먹통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카카오에 핫사이트가 가동됐으면 비교적 신속한 복구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핫사이트'는 시스템 장애를 대비해 서버와 데이터 등을 미리 설치해둔 백업 사이트를 뜻한다.

대규모 먹통사태가 벌어진 카카오와는 달리 화재가 발생한 같은 건물에 서버를 둔 네이버의 경우 신속한 이원화 체계로 서비스 장애가 카카오만큼 전방위적으로 일어나지 않았고, 15일 밤까지 대부분 복구가 완료됐다. 주요 서비스의 이중화와 서비스 컴포넌트 분산 배치·백업 덕에 영향이 적었다는 것이 네이버 측 설명이다.

자체 인터넷데이터센터(IDC) 건립 등 투자와 관련해서도 카카오가 네이버에 비해 한발 늦었다는 지적도 있다. 네이버는 메인 서비스 서버를 2013년 지은 춘천의 자체 데이터센터 '각'에 두고 있고, 세종에 짓는 제2 데이터센터 '각 세종'은 내년 완공될 예정이다. 카카오는 내년 완공을 목표로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안산)의 첫 자체 데이터센터를 건설 중이다.

카카오는 100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린 'IT공룡'으로 덩치를 키웠지만 서비스의 '본질'인 안정성 측면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카카오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비상 대응 체계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태로 카카오가 법·제도적 규제의 칼날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먼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이날 '카카오 먹통' 사태와 관련해 김범수 카카오 의장, 이해진 네이버 GIO, 최태원 SK 회장 등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박성하 SK C&C 대표이사, 홍은택 카카오 대표, 최수연 네이버 대표 등 전문경영인들도 증인 채택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오는 24일 과방위 종합감사에 소횐돼 국회의원들의 매서운 추궁을 받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이른바 '카카오 대란' 사태와 관련해 "민간 기업에서 운영하는 망이지만 사실상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국가 기반 통신망과 다름 없다"며 "만약 독점이나 심한 과점 상태에서 시장이 왜곡되거나 더구나 이것이 국가 기반 인프라와 같은 정도를 이루고 있을 때는 국민의 이익을 위해 당연히 제도적으로 국가가 필요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카카오톡이 12년 만에 최장 시간 서비스 장애를 기록하면서 카카오가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호된 질타는 받아야겠지만, 이로 인해 IT업계 전반으로의 규제 확대는 바람직하지 않다. IT 보안 업계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데이터센터 등 기반시설 보호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도 나오고 있다. 한 정보보호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해커들이 포털사를 공격하면 대한민국에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걸 학습했다"며 "민간 업체 서비스이지만 대국민 서비스이기에 범정부적인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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