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10.17 16:05
(그림제공=질병관리청)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지난 16일 일요일 키움 히어로즈와 KT 위즈와의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린 서울 고척스카이돔 곳곳에서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가을야구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도 매진이 되지 않았다. 두 팀의 관중들이 다른 팀에 비해 많은 편이 아닌데다 실내경기장이기에 식사나 음주할 때를 빼고는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는 방역규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 시즌에서 키움이 고척을 홈구장으로 쓰면서 매진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고척돔이 가장 최근 매진된 시기는 지난해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1차전이었다고 한다. 고척구장에서도 취식이 허용되지만 먹거나 마시지 않을 때엔 마스크를 써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지난 9월 26일 정부의 실외마스크 전면 해제 조치로 50인 이상 야외 집회, 공연, 스포츠 경기장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었지만 고척구장은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마스크 착용 의무가 없는 다른 야구장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다중이용시설에서의 실내 취식이 가능해지면서 실내 마스크 의무의 효과는 상당부분 퇴색된 지 오래다. 대표적인 위험지대가 극장이다. 영화 상영 내내 팝콘을 하나둘씩 먹거나 큰 용기에 담긴 맥주나 탄산음료를 찔끔찔끔 마신다는 핑계를 대면서 '마스크 프리'를 유지하는 꼼수를 부릴 수 있어서다. 이런 와중에 기침이나 재채기, 하품을 하면서 주변에 침을 튀기는 관람객도 없지 않다. 이래도 누가 뭐라고 하기 힘들다. 더구나 실제로 착용했는지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는다. 실내마스크를 꼭 쓰라고 해놓고 나서 위반자를 적발, 제재할 수단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그런 의무 규정은 사문화된 것과 마찬가지다. 

지난 설과는 달리 지난 추석에는 KTX 열차를 타고 귀향하면서 객실 내에서 도시락을 먹거나 음료수를 마시는 고객들이 많았다. 다만 남의 눈치가 보여 취식이 끝나면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했다. 깜깜한 영화관과 다르다는 환경적 요인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에선 올해 봄부터 실내마스크 착용 의무까지 없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정치인들도 방역 규제를 완화해야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안철수 국민의 힘 대선 경선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방역행정을 비난하며 과학방역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안 후보는 대통령직 인수위원장까지 지냈고 6월 1일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지만 새정부 출범이후 어떤 점에서 과학방역이 이뤄지고 있는지 대부분의 국민들은 알지 못하는 실정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17일 0시 현재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1만959명이며 최근 1주일 평균 2만1622.6명이 발생했다. 위중증 환자는 248명으로 전일 대비 1명 늘었고 사망자는 11명으로 전일 대비 21명 줄었다. 누적 사망자는 2만8851명이고 치명률은 0.11%이다. 누적치명률을 연령별로 보면 80세 이상이 2.20%로 가장 높고 70대 0.50%, 60대 0.13%이다. 50대는 0.04%, 40대는 0.01%이다. 30대 이하는 0.00%이다. 사실상 60대 이상을 제외하고는 코로나19로 숨지는 사람은 없거나 극소수인 셈이다. 

백신접종 대상인 12세이상 국민 중에서 1차 접종완료비율은 95.7%, 2차는 94.8%, 3차는 71.4%에 달한다. 국민의 대부분이 백신 접종으로 항체가 생겼고 자신도 모르게 감염된 이후 나은 사람도 적지 않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까지 대응할 수 있는 백신이 속속 도입되는 등 예방대책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7일 질병청의 요청을 받아들여 한국화이자제약의 코로나19 오미크론주 변이(BA.4/5) 대응 백신인 코미나티2주 0.1㎎/mL에 대한 긴급사용 승인을 결정했다. 현재 유행하는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신속히 도입, 겨울철 재유행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이다.

코로나19 유행은 안정세에 있고, 치명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으며, 국민의 면역획득 수치가 높아졌고, 백신과 치료제는 대폭 늘어났으며, 의료진의 대응역량도 향상되었는데도 방역당국은 실내마스크 의무 해제 시기와 관련해선 '겨울철 유행이후 단계적인 방역완화 방향을 논의중'이란 답변만 거듭하고 있다.

올 겨울철을 넘기고 빨라야 내년 봄에야 단행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와 여당은 실내마스크 의무 해제로 인해 만약 환자가 급증할 경우 쏟아질 비난을 두려워하고 있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미적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학방역 주창은 말 뿐이고 전임 문재인 정부처럼 정치방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이와 관련, 지난 13일 열린 제7차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회는 코로나19 유행상황을 면밀히 평가, 분석해 우선 감염병 위기 단계 및 등급 조정을 검토하고 이에 맞추어 방역·의료조치의 방향을 정하고 이에 맞추어 제도 개선 및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질병관리청이 17일 전했다. 자문위는 유행 확산에 미치는 영향력이 낮고 국민들의 일상회복에 대한 체감이 높은 방역 조치부터 단계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고 한다. 아울러 효과적이고 균형 있는 방역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위기 상황을 평가할 수 있는 10개 내외의 핵심지표를 먼저 선정, 11월 발표하고 연구용역을 통해 영역별 사회·경제지표 체계를 개발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사회·경제적 영향을 예측·평가할 수 있는 체계 모형을 구축하고 지속적으로 고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정부는 지난 4월 25일 실내 다중이용시설에서의 취식을 허용하고 5월 2일부터 50명 이상 실외집회 참석자와 50명 이상 실외공연·스포츠경기관람객을 제외하고 실외 마스크 의무를 해제했다. 반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이런 조치를 왜 하지 않았는지 되묻고 싶다. 방역단계별 지표도 활용 중인 것이 이미 있는데 굳이 새 지표를 개발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연구용역을 통해 지표체계를 개발한다고 해서 과연 구체적인 성과 도출로 이어질지도 의문이다. 

정기석 위원장은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17일 코로나19 브리핑에서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접종률이 상당한 국가에서도 유행 증가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12월 초 정도 본격적인 재유행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연내 실내 마스크 해제는 가능하지 않다고 확언한 것이다.

이어 그는 “6월 첫째 주 이후 확진된 700만명과 항체 검사에서 나타난 숨은 감염자 350만명, 8월 첫째 주 이후 백신을 맞은 230만명 등 1300만명 정도가 12월까지 방어력을 갖추었을 것”이라며 “반대로 말해 3800만명은 방어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라고 경고를 아끼지 않았다.

“준비는 과하게,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정 위원장의 주장에 틀린 점은 없다. 다만 이로 인한 비용부담과 국민들의 피로감 역시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더구나 정부는 과학방역을 위해 그간 무엇을 어떻게 추진해왔나부터 자성해야 한다. 마스크 착용의무를 어기면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리도록 되어 있지만 주변에서나 뉴스에서 이런 소식을 거의 듣거나 보지 못했다. 말만 의무일 뿐 어겨도 별다른 제재가 없는 셈이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방역대책을 보완하지 않은 것은 능력 부족인가, 관심 결여인가.

백신접종과 자연 감염으로 국민의 98% 정도가 항체를 갖고 있는 만큼 '완전한 일상회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의료인들이 부쩍 늘어났다. 경기도 의사회는 9월 26일 정부의 실외마스크 전면 해제 조치와 관련 성명을 내고 “실내 마스크 의무 착용으로 더 이상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이득이 없는데도 영유아 아이들의 인지 정서 발달을 저해하는 등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며 “미국와 유럽 등 주요 국가에서도 실내 마스크 의무화 해제이후 대규모 재확산 움직임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주요국 중 모든 실내장소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를 적용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방역당국은 항체 보유와 실제 면역 능력은 다르다는 입장이지만 코로나 초기 국면에선 국민의 80% 가량이 백신 주사를 맞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인양 떠벌리지 않았나. 그런 발언은 무지의 소산이었는가.

한국에서 실내외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된 시기는 2020년 10월 13일이다. 이미 같은 해 8월부터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됐다. 2년 이상 마스크를 쓰다보니 실외에서도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국민들이 많다. 실내마스크 의무가 해제한다고 해서 정부 방침을 그대로 따를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장소의 밀집도, 비말 전파 가능성 등을 스스로 판단해 마스크 착용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완화 추세에 따라 해외여행을 떠나는 국민이 급증했고 관광이나 사업으로 입국하는 외국인도 크게 늘어났다. 한국에 오면 실내마스크 의무화가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놀랄 수 있다. 외국과 다른 방역정책을 실시한다면 그 이유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바이러스가 곳곳에 존재하는 현 시점에서 마스크가 유용한 방역수단이라는 점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내놓지 못하면서 과학방역을 운운한다면 코미디나 다름없다.

지하철이나 버스, 병·의원, 보건소, 요양원 등 일부 취약시설을 제외하고는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를 '권고'로 완화하는 것이 국민의 기본권을 존중하는 길이다. 특히 언어발달이 중요한 영·유아나 어린이부터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를 중단하는 것이 좋다는 전문가들의 충고를 귀담아들을 때다. 사실상 책임 모면만을 노리고 시행 시기를 늦춘다면 한국 방역행정이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되기는커녕 이나마의 지위조차 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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