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10.18 12:14
(그림제공=기획재정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2019년 7월 일본 정부는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에 대해 한국 정부가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음을 꼬투리 삼아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꼭 필요한 3개 핵심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포토레지스트는 전 세계 생산량의 90%, 고순도 불화가스는 70% 가량을 일본이 점유하고 있어 한국 기업에 타격을 주려는 의도가 명백했다. 이어 8월에는 한국을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등 무역전쟁에 나서자 정부는 소재·부품·장비산업 육성 등으로 대응했다. 

핵심 소재는 아니지만 공급의존도가 높은 품목의 수출을 막아 수입국의 경제안보까지 뒤흔든 사건이 2020년 10월 또 터졌다. 중국 정부가 비료 부족과 전력난 심화 등으로 인해 석탄에서 전기로 추출하는 요소의 수출을 갑자기 제한하자 한국의 경유차 운전자들은 요소수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요소수는 경유차의 질소산화물을 정화하는 필수품으로 요소를 원료로 만들어진다.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요소수를 넣어야만 작동되도록 경유차가 생산된지 오래다. 중국과의 가격경쟁에서 패해 국내 요소 생산공장은 이미 사라졌다. 2020년 1~9월 중 한국이 수입한 산업용 요소의 97.6%가 중국산이었다. 첨단제품이 아니고 범용제품인 요소수가 사실상 무기로 작동된 사례였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경제안보 핵심품목TF 출범을 통해 범정부 협업에 나서면서 ▲공급망 조기경보시스템 가동 ▲200대 경제안보 핵심품목 지정 ▲수급대책 마련으로 급한 불을 껐다. 공급망이란 국내외에서 국가 및 국민의 경제활동을 위한 물자 또는 원재료 등을 획득하고 이를 중간 생산물이나 최종생산물로 변환하며 소비자에게 유통시키는 모든 체계와 과정을 의미한다.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 및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플러스가 미국 등 서방진영의 반대에도 불구, 감산을 결정하는 등 자원안보 블록화 현상은 심화되고 자국 우선주의 경향도 확대되고 있다. 주요국마다 공급망에서 우위를 갖는 기술을 전략무기화하는 것은 물론 안정적인 내수 확보를 명분으로 수시로 수출통제에 나서면서 한국이 맞이하는 경제적 어려움과 국가안보에서의 위험성도 커지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해외에서 원재료를 수입해 완제품을 수출하는 무역중심 경제구조를 갖고 있어 공급망 교란으로 인한 타격이 경제 전반에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방역 조치,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핵심자재와 원자재의 국경간 이동이 갑자기 차질을 빚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공급망 위험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정부 부처별로 개별산업 경쟁력 강화에 나선다는 현행 접근 방식으로 관리하는데 한계가 나타나는 실정이다. 공급망을 강화하려면 ▲수입선 다변화 ▲국내외 생산기반 확충 ▲경제안보품목 비축 확대 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기업이 모두 부담할 수 없고 설사 그리 된다면 결국 국가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기업의 이런 노력을 탄력적으로 지원해줄 법률적 근거도 불충분하다.

이에 따라 개별 품목에서 발생하는 교란이 경제 전반으로 파급되면서 국가적 위기로 증폭될 가능성에 대비한 정부의 조정 및 지원, 중재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경제안보에 중요한 핵심품목에서 공급 차질이 발생할 경우 신속한 자금 지원을 통해 공급망을 안정시키고 관련 기업을 지원할 대책도 필요하다.

이같은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획재정부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의 대표발의로 마련된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이 17일 기재위에 회부됐다고 밝혔다. 공급망 기본법은 ‘각종 국내외 요인에 따라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공급망 위험을 예방하고 공급망 교란이 발생할 경우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함으로써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가 및 국민의 경제활동과 관련된 안전 유지 및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공급망의 안정적 유지를 저해하는 위협요인의 예방·대비·대응을 포함해 공급망의 탄력적 회복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대통령 소속으로 국가 컨트롤 타워인 '공급망안정화위원회'를 신설한다. 이 위원회는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기본계획을 3년마다 수립하고 국민생활에 필수불가결하거나 국민경제의 안정적 운영에 필수적인 물자, 원재료, 서비스 또는 기반시설을 ‘경제안보 품목’ 또는 ‘경제안보 서비스’로 지정한다.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핵심사업을 체계적으로 지원, 우리 기업의 공급망 리스크 피해를 최소화하고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과 경제안보에 기여하기 위해 설치하는 ‘공급망안정화기금’의 관리·운용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결정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무엇보다 공급망안정화기금의 역할이 관심을 끈다. 이 기금은 수출입은행이 정부보증채권을 발행, 조성한다. 경제안보 품목 확보와 수입선 다변화, 국내외 생산기반 확충, 비출 확대 등을 위해 관련 사업에 자금 대출, 자산매수, 채무보증, 출자 등에 나선다.

공급망 위험의 포착·예방·위기 대응을 위한 체계적인 정부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점도 주목된다. 위험포착 단계에서는 부처별 조기경보시스템(EWS) 결과를 연계해 점검하고 위험 징후시 관계부처와 공동 점검하며 조기 안정화를 위한 회의를 운영한다. 위험예방 단계에서는 국민경제에 필수적인 '경제안보 품목서비스'를 지정하고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하는 민간기업을 '공급망 안정화 선도사업자'로 인정, 재정·세제 및 '공급망안정화기금'을 통한 민간의 안정화 노력 지원 등을 추진한다. 위기대응 단계에서는 위기가 발생한 품목을 '위기품목'으로 지정하고 위기대책본부를 설치, 운영하면서 위기 수습을 우한 긴급조치에 들어간다. 위기 수습 과정에서 초래된 기업의 손실 보전 등도 제도화된다는 점에서 민간부문의 협조가 보다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선도사업자가 되려면 경제안보 품목 및 경제안보 서비스 취급 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가 공급망 안정화 계획을 소관 정부부처에 제출해야 한다. 이 계획이 각 부처별로 매년 수립해야 하는 ‘공급망 안정화 시행계획’ 등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각 부처는 선도사업자로 인정한다. 이어 공급망 기본법에 따른 재정·세제·금융·정보제공 등 지원과 함께 정부와의 공급망 협업을 위한 협조의무가 부여된다. 정보를 같이 나누고 계획을 준수한다는 것이 골자다.

공급망기본법은 국가안전을 보장하고 경제안보 확보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값어치가 크다. 각 정부부처가 실제 안정화 조치를 담당하고 기재부는 지원체계를 제공한다는 역할분담도 합리적이다. 공급망 위험을 포착하고 예방하며 위기 대응을 위한 체계적인 정부시스템을 구축된다면 국민의 경제활동에 관련된 안전이 유지되고 국민경제의 지속적인 발전도 도모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관련 기업들이 적극적인 동참을 통해 유사시에도 경제안보 품목 또는 경제안보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도록 이미 수립한 공급망 안정 계획에 따라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급망 안정화선도사업자로 인정받는다면 해당 사업 분야에서 보다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될 수 있다. 공급망안정화기금의 지원대상에서 '0순위'로 취급될 가능성도 높다. 꿩도 먹고 알도 먹는 효과가 기대된다.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설비(FPSO)의 모습. (사진제공=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설비(FPSO). (사진제공=현대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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