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10.19 12:24
소부장 정책 방향 이미지 (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2019년 7월 일본 정부의 갑작스런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3대 핵심소재 수출 규제는 글로벌 공급질서를 뒤흔들었다. 

이에 맞서 한국 정부는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을 전면 개정하면서 일본 의존도가 높은 품목 중 산업파급 효과와 중요성을 감안해 6대 분야에서 100대 핵심전략기술을 선정, 총 9525억원의 국가 연구개발예산을 투입했다. 국산화에 성공한 소부장 제품을 국내 수요기업이 사들이도록 해외 인수합병 관련 세금을 지원하고 소부장 기업에 투자하는 1조6000억원 규모의 펀드도 조성했다. 범정부 차원의 집중 지원과 기업의 순발력 있는 대응으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00대 핵심품목의 대일 의존도는 19년 30.9%에서 21년에는 24.9%로 6%포인트 떨어지고 소부장 중소·중견 기업 중에서 매출 1조원 클럽에 들어간 회사도 13개사에서 34개사로 늘어났다. 지식재산권과 연구개발 연계를 의무화하고 663개 중소·중견기업의 특허전략을 지원한 결과 특허출원 1065건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 중 소부장의 대일의존도는 15.4%로 역대 최저를 기록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

문제는 일본만을 대상국으로 삼아 소부장 정책을 펼치면서 다른 국가와의 공급망 관계 등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것이었다. 대일 무역적자 감소, 주력산업 약점 보완을 위한 ‘패스트 팔로어’ 전략 중심으로 추진되었을 뿐 탄소중립이나 디지털 전환과 같은 시대적 과제나 변화 흐름에 대응하는 관점은 담기지 않았다.  고난이도 기술 개발에만 주력하고 범용품이나 광물에서 추출되는 원소재 관리를 등한시하면서 20년 10월 중국의 갑작스런 요소 수출 금지에 따른 요소수 부족 사태에 한동안 속수무책으로 당하기까지 했다. 

더구나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가치사슬 참여가 강화되면서 완제품 생산과정에서 투입되는 중간재 중 수입재 비중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는 측면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는 비판도 받았다. 일본 대신에 중국에서 수입이 늘어나면서 소부장 제품의 중국 수입 의존도는 올 상반기 29.6%로 2012년의 24.9%보다 4.5%포인트 올라갔다. 소부장 대책이 ‘반쪽짜리 보약’이었던 셈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소재부품전문기업의 97%는 수출실적이 전혀 없다. 철저히 내수에 의존할 뿐 해외 진출은 극히 저조하다. 국내 기업에만 소부장 제품을 납품해서는 성장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국내 실적을 바탕으로 해외 기업에도 팔 수 있는 체제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이창양(오른쪽 두 번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8일 소부장 경쟁력강회의원회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제공=산업부)

이 같은 현실에서 윤석열 정부 출범이후 첫 번째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강화의원회가 18일 오후 2시 열렸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주재로 열린 이날 회의에는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 영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강경성 대통령실 산업정책비서관, 고영선 KDI 부원장(원장직대), 주 현 산업연구원장, 최진식 중견기업연합회장, 최성율 KAIST 소재부품장비 기술자문단장, 황철주 대중소기업 상생협의회장, 임혜인 숙명여대 교수, 하정숙 고려대 교수, 송준엽 기계연구원 부원장, 이정환 재료연구원장, 정윤모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민동준 소재부품전문위원장, 이종영 제도개선전문위원장 등 정부 및 민간위원이 참석했다.

새정부 소부장 정책방향의 비전은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소부장 생태계 조성'으로 결정됐다. 정책대상을 기존 대(對) 일본, 대(對) 주력산업 중심에서 대(對) 세계, 대(對) 첨단미래산업으로 확장한다는 것이 눈에 띈다.

기존 100대 핵심전략기술 중에서 기술개발의 진행도와 중요도를 감안해 ▲기술수준 달성(반도체 식각 소재 제조, OLED용 유기 소재 제조 등) ▲높은 자립화율(구조물용 철강 소재 제조 등) ▲공급망 다변화(SRP용 소재 제조 등) 등 13개를 삭제했다. 지난 5개월 간 국내 산업에서의 중요도와 공급망 안전성, 전략성 등의 기준에 따라 산·학·연 전문가 200여명의 검토를 받은 결과이다.

반도체의 경우 공정 진행에 필요한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등 소재 중심에서 벗어나 패키징 후공정, 증착과 같은 공정기술까지 적용대상을 넓혀 반도체 후공정 장비 제조, 고집적 회로 기판 제조 기술 등 18개를 추가했다. 공작기계 등에 중점을 두었던 기계금속 분야에선 항공용 가스터빈 등 고부가 산업용 전환에 초점을 맞춰 항공기용 가스터빈 소재·부품, 알루미늄 합금 제조 기술 등 12개를 더 넣었다.

전기전자에선 상용 이차전지의 핵심소재 자립화에서 전고체 전지 등 고성능·고안정 차세대 전지 기술로 확대한 것이 주목된다. 기초화학의 경우 일본 기업이 강점을 지닌 정밀화학제품에서 친환경(셀룰로오스계 인조섬유), 저탄소(리사이클 섬유소재), 미래유망(엔지니어링 복합소재) 등으로 확대하면서 생분해성 플라스틱 제조, 바이오매스 기반 섬유 소재 제조 기술 등 11개가 추가됐다.

특히 후속 감염병 위기 대응을 위해 자체 기술력 확보가 중요해진 바이오 분야를 핵심전략기술 대상에 새로 집어넣고 바이오의약 생산공정 소재 및 제조기술 등 5개를 추가했다. 글로벌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신산업의 공급망을 선도하기 위한 타당한 결정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정부는 요소처럼 기술 수준은 낮더라도 특정국 의존도가 높고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품목을 ‘소부장 공급망 안정품목’으로 선정해 비축이나 수입국 다변화,국내 생산 등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소부장 핵심전략기술의 목표가 국내 관련 산업 경쟁력 강화에 있다면 소부장 공급망 안정품목은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있다. 제2의 요소수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결정이다. 원소재나 범용품을 개별 소재나 품목별로 추가 반영하기 위해 소부장특별법 시행규칙을 개정한다는 방침 역시 이같은 흐름에 따른 것이다.

무엇보다도 소부장 대형 프로젝트를 신설한다는 점이 신선하다. 정부는 그간 품목 단위 핀셋형 지원 방식을 산업핵심생태계 패키지 지원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수송분야에서 레이저, 기계식 스캐너, 디지털 신호처리 등 각각 30억원을 지원하는 과제를 ‘미래모빌리티용 4D 라이다 생태계 선점’을 목표로 하는 소재와 부품, 공정설비, 실증까지 아우르는 대형 프로젝트로 키워 실행한다는 것이다. 기존 과제당 한도는 50억원이었지만 패키지 프로젝트의 한도는 200억원이다. 학제간 통합연구개발을 통해 관련 산업생태계를 육성할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하고 다수 품목을 연계 지원해 사업기간을 대폭 줄이고 시너지 효과도 키우겠다는 발상을 담고 있다.

그간 취약 품목 지원을 위한 ‘1수요-1공급기업 연계’ 방식에서 벗어나 공용성과 확장성, 파급성이 큰 원소재와 공통기술은 여러 수요기업이 참여해 연구개발 결과의 확산성을 높인다는 방침도 이와 관련성이 깊다. 수산화리튬 등 공통기술에 복수의 수요기업이 참여하면 연구개발 지원 과정에서 우대한다는 것이다.

국내 생산기반 확충만으로는 소부장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해외 수요에 맞춰 국내 공급 기업이 공동으로 연구개발에 나서도록 해외기관 참여 신규과제 목표 비중을 내년에 10%, 26년에는 최대 26%까지 높이기로 했다. 국제 협력을 통해 세계 시장 진출을 돕자는 발상이다.

기술개발과 상용화에 성공한 과제에 대해 해당 기업의 수요조사를 통해 인증과 마케팅 등 글로벌화 지원까지 자동연계한다는 방침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한국산업기술평가원(KEIT)과 사업화를 도와주는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에 이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글로벌화를 지원하게 된다. 특히 정부는 우수한 기술력을 지닌 소부장 기업의 공급 능력을 감안해 해외 수요기업을 매칭시키는 ‘맞춤형 글로벌 파트너링(GP) 사업’을 신설할 방침이다. 산업별 협회나 단체, 37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참여하는 융합혁신지원단 등과의 협업을 통해 해외 수요를 제대로 찾아내 연결시켜 준다면 소부장 기업의 수출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정부는 1조6000억원 규모의 소부장펀드를 2026년까지 2조5000억원 규모로 늘리기로 했다. 반도체(경기), 이차전지(충북), 디스플레이(충남), 탄소소재(전북), 기계(경남) 등 5개 소부장 특화단지를 차질없이 추진하고 지역별 산업집적도를 감안해 추가지정도 검토할 방침이다. 해외 공관과 코트라, 무역협회, 수입기업 등을 총동원해 공급망 위기 징후를 조기 파악할 수 있도록 국내외 공급망 정보 모니터링도 고도화할 계획이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이 첨예화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공급망 재편이 블록별로 진행 중인 상황이다. 한국 경제가 돌아가는데 필수불가결한 소재와 부품, 장비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은 관련 산업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 요소임은 분명하다. 많은 국민들의 생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소부장 산업 정책 방향이 당초 의도와 목적에 맞춰 차질없이 실행되어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정부의 소부장 정책은 산업부 소관 연구개발 신규 사업 중 신산업 비중이 24%에 이를 정도로 첨단미래산업에도 중점을 두고 있어 고무적이다. 핵심전략기술을 주기적으로 재선정하는 등 유연성을 갖고 있으며 연구개발이 끝난 뒤 사업화를 연계했던 과거 방식에서 탈피, 동시 기획·사업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지원효과도 한층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범용품과 원소재를 포함해 공급 위기관리 대응 체제를 마련하고 ‘소재부품장비 글로벌화 전략’을 수립하는 등 후속조치를 실시해야 할 것이다. 소재·부품 등 중간재와 장비 등 자본재의 수입의존도를 낮추고 국산 제품 수출을 늘려야만 경상수지 구조가 개선될 수 있다. 이번 대책이 효과를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소부장 주요 정책 방향 (사진제공=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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