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11.02 15:03
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이차전지 업계가 '민·관 합동 배터리 얼라이언스' 출범을 기념하고 있다.(사진제공=산업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올해 상반기 전 세계 이차전지 점유율에서 중국은 56.4%로 세계 1위 국가이지만 글로벌 시장의 55%에 달하는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삼는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한국의 점유율은 25.8%로 중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중국을 제외한 시장에선 점유율이 54.1%에 이를 정도로 독보적 위치를 확보한 상태다. 현재 국내 기업이 따낸 수주물량은 560조원 어치로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배터리 3사가 지난해 기록한 매출액의 18배에 달한다. 

한국 배터리 기업의 위상은 당분간 공고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약점도 많고 대내외 위협도 적지 않다. 중국은 배터리 핵심광물 공급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정련과 제련을 마친 제품을 기준으로 중국은 전 세계 코발트의 65%, 리튬의 58%, 니켈의 35%를 공급 중이다. 한국은 중국 광물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지난 8월 17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인플레이션감축법에 따라 미국은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 또는 가공된 광물을 40% 이상 사용한 배터리에 한해 최대 7500달러의 전기차 세액을 공제해줄 방침이다. 중국산 광물을 이용해 배터리를 만들다가는 가격경쟁력에서 밀리게 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은 호주와 캐나다, 칠레 등에서 리튬과 니켈 등을 납품받기 위해 현지 기업과 계약을 맺었거나 계약을 추진 중이다. 유럽연합은 광물재활용 등 규정에 맞는 배터리에 한해 EU 내부에서의 유통을 허용한다는 내용의 배터리 법안 제정을 추진 중이다. 주요국을 중심으로 자국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공급망을 바꾸려는 흐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수요처를 잃을 위기에 봉착한 셈이다.

중국, 일본과의 기술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리튬이온배터리에 들어가는 양극재를 니켈, 코발트, 망간 등 세가지 물질로 섞어서 제조하면 삼원계 배터리이고 리튬인산철을 사용해 만들면 LFP배터리이다. 세계 최대 배터리회사인 중국 CATL은 LFP배터리를 주로 생산 중이다. 중국은 한국 기업의 주력 제품인 삼원계 배터리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바짝 추격 중이다. 일본은 전고체배터리 등 차세대배터리 개발에 집중 투자하며 패권 회복을 다짐하고 있다.

이산화탄소 중립을 위해 내연기관차의 퇴장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미 현대차그룹은 2025년부터 제니시스 신차를 배터리 및 수소전기차로만 내놓고 2030년에는 내연기관차 판매를 사실상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내연기관차와 전기차와의 간극을 메울 하이브리드차에도 이차전지가 들어간다. 한국이 이차전지에서 세계 1위 국가가 되어야만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고 좋은 일자리도 유지할 수 있음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이런 인식 아래 산업통상자원부는 1일 제3차 산업전략 원탁회의를 갖고 오는 2030년까지 이차전지 세계 시장 점유율 40%를 달성해 세계 1위가 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이창양 장관은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 전영현 한국전지산업협회장, 최윤호 삼성SDI 대표, 지동섭 SK온 대표, 이방수 LG에너지솔루션 사장, 민경준 포스코케미칼 대표, 오정강 엔켐 대표, 이강명 성일하이텍 대표, 황규연 광해광업공단 사장, 이인호 무역보험공사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차전지 산업전략 원탁회의'를 주재하고, 혁신전략의 비전과 핵심과제 등을 논의했다.

핵심광물 확보를 위해 광해광업공단과 포스코 등 자원개발기관, 배터리 3사와 소재 기업, 고려아연과 LS MnM 등 제련 기업,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등 정책 금융기관 등으로 구성된 ‘배터리 얼라이언스’ 출범식이 이날 거행됐다. 광물자원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고 미국 IRA 시행으로 보다 중요해진 정련과 제련에 대한 협력체제를 마련하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광업공단은 전세계 이차전지 핵심광물의 매장량, 생산 및 거래 현황 등을 반영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고 경제성과 전략성, 국가 위험도 등을 기준으로 이차전지 핵심광물을 얻기 위한 ‘글로벌 오픈 프로젝트’를 마련하게 된다. 호주와 캐나다 등 전략적 협력국에서 확보한 광물을 현지 광산 인근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국가에서 정제처리에 나서도록 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배터리 얼라이언스에 참여한 제련기업이 국내에서 제련할 경우 광업공단 출자금을 활용해 융자 지원을 검토하고 환경과 입지 등에서 특례를 제공할 계획이다. 광물 확보와 정·제련 프로젝트에 무보와 수은이 향후 5년간 3조원 규모의 대출 및 보증을 지원한다는 맞물리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면 공급망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용후배터리는 ▲셀 일부를 교체한뒤 배터리로 재활용하는 '재제조' ▲부품 교체후 에너지저장시스템(ESS) 등 '용도 전환' ▲배터리 분해후 핵심광물 추출 등 '재활용'이란 형태로 이용되고 있다. 이에 힘입어 전세계 사용후배터리 시장은 연평균 32%씩 커지면서 2027년에 21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사용후배터리시장을 선점하고 국내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순환체계도 마련된다. 전지산업협회 주도로 민간이 주도적으로 사용후배터리를 회수, 유통, 활용하는 통합관리체계 초안을 내년 상반기 중 마련하면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법제화를 검토한다는 대책이 관심을 끈다. 민이 앞장서고 관이 지원하기 때문이다.

2030년까지 정부가 1조원을, 민간이 19조5000억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자, 한국이 배터리 첨단기술의 '마더 팩토리'(Mother Factoty)가 되겠다는 목표도 눈에 띈다. 마더 팩토리는 제품 개발과 제조의 중심이 되는 공장을 지칭한다. 높은 품질과 성능을 지닌 제품을 연구개발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핵심공정을 담당하는 곳이다. 단순한 제조는 해외 공장에 맡긴다는 개념을 갖고 있다. 최신 공정과 소재를 개발하고 적용하는 중심지로 국내를 육성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마더 팩토리 구축 과정에서 민관 협력을 통해 니켈이 90% 이상 들어가는 하이니켈 양극재와 실리콘 음극재 기술 개발에 주력,1회 충전거리를 현행 500㎞에서 30년까지 800㎞로 늘린다는 것이 주목된다.

그간 국내 기업들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삼원계 이외의 배터리와 비(非)리튬계 배터리 개발에도 신규 투자한다. 고안전 보급형 LFP배터리 상용화 기반 구축을 위해 내년부터 25년까지 47억원을 투입하고 고신뢰 장주기 대용량 바나듐 산화환원흐름전지 개발에 내년까지 265억원을 지원한다. 이처럼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통해 값싼 배터리를 희망하는 전기차 완성업계 수요에도 부응하겠다는 것이다. 향후 시장 판도를 바꿀 전고체배터리, 리툼황배터리, 리튬금속전지를 중심으로 1500억 규모의 신규 예비타당성 조사도 추진한다.

국내 배터리 3사가 연구개발 센터와 신기술이 적용되는 최첨단 생산기지를 국내에 조성하기로 한 것은 바람직하다. 해외 합작 완성차 공장 신설에 맞춰 외국에 생산기지를 만드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핵심기술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국내에 축적시키는 것이 경쟁국과의 초격차를 유지하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업계 최초로 내년에 4680 배터리 양산 공장을 충북에 신축한다.  SK온은 세계 최초로 24년에 니켈 함량 94% 수준의 하이니켈 배터리를 개발하고 품질개선과 공정혁신을 위한 글로벌 밸리데이션 센터를 구축할 방침이다. 삼성SDI는 세계 최초로 내년에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구축한다. 향후 전기차용 전고체 배터리도 국내에서 생산을 시작할 방침이다. 최신기술이 적용된 제품의 양산성 검증을 위한 신뢰성 검증센터도 신축할 계획이다.

30년까지 연구개발 19조5000억원, 시설투자 30조5000억원을 포함, 총 50조원의 민간 투자가 국내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배터리 생산설비는 21년 39GWh에서 25년에는 60GWh로 1.5배 확충된다. 양극재와 음극재 생산능력도 25년까지 각각 3.2배(79만톤), 2.1배(15만톤) 확대될 예정이다.

배터리산업 생태계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30년까지 1만6000명의 인력을 양성한다는 결정도 당연한 조치다. 반도체 아카데미에 이어 '배터리 아카데미'도 신설, 연간 800명 이상의 인재를 키운다. 산업계가 직무별 수준별 프로그램을 공동개발하고 퇴직 인력 등 기업 출신 교수와 강사를 최대한 활용할 방침이다. 전지협회 홈페이지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론교육을 제공하고 심화교육은 산학협력 계약학과와 내년 2개 대학에 신설을 추진 중인 특성화대학원과 연계할 계획이다. 교육생들이 배터리 제조공정에 참여, 시제품을 제작할 수 있도록 오창과 울산의 연구개발 인프라를 인력양성용 생산라인으로 쓸 방침이다. 이처럼 정부는 교육인프라를 지원하며 협업에 나서게 된다.

이창양(왼쪽 세 번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일 이차전지 산업전략 원탁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산업부) 

지난 10월 수출은 작년 10월보다 5.7% 줄었다. 지난 9월까지 23개월 연속 증가해온 수출이 2년 만에 감소 전환되면서 비상이 걸린 상태다. IT 비중이 높은 수출 구조상 증가세 반전은 당분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내년 하반기 글로벌 경기가 개선될 것에 대비, 수출품목과 지역을 다변화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등 근본적인 수출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절실하다. 이런 측면에서 이미 수출주력산업으로 자리잡은 이차배터리의 경쟁력 강화는 국가의 명운이 걸린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민관이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이차전지산업 혁신전략을 함께 수립하고 배터리 얼라이언스 구축을 통해 지속가능한 협력시스템을 마련한 것은 자못 의미가 크다. 민과 관이 원팀 정신으로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2030년 이차전지 최강국이란 'K-배터리' 역사를 새로 쓰는데 성공한다면 특정 품목의 경기 변동에 영향을 덜 받는 수출 포트폴리오를 마련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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