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11.03 15:32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3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제3차 릴레이 세미나'에서 개회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거래소)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이뤄진 1293건의 기업 인수합병(M&A) 거래에서 지배주주가 갖고 있는 지배지분을 매수인이 사적계약을 통해 사들이는 주식양수도는 1070건으로 전체의 82.8%를 차지했다. 이에 비해 영업양수도는 전체의 15.4%인 199건, 합병은 전체의 1.9%인 24건에 불과했다. 주식양수도 방식이 M&A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조교수(전공:상법)는 매수인 입장에서 보면 대부분 회사에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한국 현실에서 지배지분을 매입하는 것이 가장 쉽고 저렴한 M&A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3일 한국거래소와 자본시장연구원이 주최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제3차 릴레이 세미나’에 참석, 이같은 내용의 '내부자 거래 및 M&A 관련 일반주주 보호 방안'을 발표했다. 

(표제공=정준혁 조교수)

정 교수가 파악한 가장 큰 문제는 합병이나 영업양수도의 경우 주주총회 특별결의나 주식매수청구권 등 다양한 주주보호 장치가 존재하는데 반해 지배지분 주식양수도 거래의 경우 해당 회사부터 거래 당사자가 아닌 관계로 아무런 주주보호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일반 주주들은 합병이나 영업양수도가 시도된다면 주식매수청구권을 통해 자신의 지분을 팔고 떠날 수 있지만 주식양수도가 이뤄질 때엔 속수무책이다. 정 교수는 “계약 자체가 지배주주인 매도인과 인수인 사이에서 일어나는데 이 때 일반주주들은 거래 내용을 모르는 게 문제”라며 “현실적으로 언론을 통해 일반주주가 아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고 전했다. 팔리는 회사 역시 거래의 당사자가 아닌 만큼 이사회 역시 어떤 역할을 수행하기가 쉽지 않다.

일반주주들은 지배주주의 경영 능력 등을 믿고 투자결정을 내린다. 사적인 M&A 거래를 알 수 없고 설사 파악한다고 해도 영향력 행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반주주 처지에선 경영권 변동으로 새로운 대주주가 회사를 차지하면 기존 투자결정에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는데도 이를 막거나 저지할 수단 자체가 없는 실정이다. 인수이후 회사의 자산을 팔아서 자금을 보전하거나 대대적인 비용감축을 통해 수익성을 잠시 높인뒤 되팔려는 기업사냥꾼이나 약탈자가 새 주인이 된다고 해도 일반주주들은 M&A 거래에서 소외된 채 계속 주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후 주가 급락으로 큰 손해를 입을 우려가 극히 높다. 그간 우리 증시에서 이런 일이 적지 않게 발생했다.

경영권이 붙어 있는 주식을 팔거나 사려는 사람에게 아무런 의무를 지우지 않고 있는 현행 관행과 제도는 인수자와 매도자에게만 유리하다. 인수자 입장에선 공개매수에 들어가는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지 않고 매도자 입장에선 경영권 프리미엄을 최대한 받고 매각할 수 있다. 달리 말해 일반주주들은 1대 주주가 지배지분 매각 과정에서 챙기는 과도한 프리미엄만큼 자신의 이익을 뺏기는 것과 다름없다. 이처럼 형평성도 균형감도 없고 일반주주의 권익보호에 무관심한 현행 제도는 보완되는 것이 마땅하다. 

정 교수에 따르면 한국을 제외한 모든 주요 국가들은 일반주주 보호장치를 두고 있다. 미국은 지배주주가 자유롭게 지배지분을 팔 수 있다는 점에선 우리나라와 같지만 회사의 지속적 경영에는 관심이 없고 재산이나 기술을 팔아치우려는 약탈자에게는 지분을 팔지 않아야할 의무를 지도록 한다는 차이가 있다. 지배주주주에게 본인의 이익보다 일반주주의 이익을 우선시해야한다는 신인의무(信認義務:Fiduciary Duty)를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지배주주의 의무는 다양한 판례가 축적되면서 정립되었고 이를 통해 일반주주의 권익도 보호받고 있다. 아울러 이사회의 적극적 역할을 통해 일반주주의 이익이 지켜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펜실베니아주(20%)와 메인주(25%), 사우스다코다주(50%+1주)에선 일반주주가 M&A과정에서 지배주주에게 공정한 가격으로 자신의 주식을 사달라고 처구할 수 있다.

영국과 유럽연합은 공통적으로 의무공개매수(mandatory takeover bid) 제도를 통해 일반주주를 보호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새로운 인수인은 회사의 모든 주주들에게 보유 지분을 팔 기회를 제공해야 하고 모든 주주들에게 같은 매수가격을 제시하고 희망할 경우 사들여야 한다. 일반주주들은 새 인수인의 경영능력이나 인수의도가 의심스러울 경우 새 인수인 측에 주식을 팔아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릴 수 있다. 합리적이고 믿음이 가는 제도 운용이 아닐 수 없다.

구체적으로 독일과 네덜란드는 30% 이상 취득하는 경우 전부 공개매수할 것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영국은  30% 이상 취득하는 경우 또는 30~50% 보유 주주가 1주라도 추가취득하는 경우, 프랑스는 30% 이상 취득하는 경우 또는 30~50% 보유 주주가 12개월 이내에 1% 이상 추가 취득시 의무공개 매수제도가 적용된다. 일본은 지분 취득으로 1/3 이상이 되는 경우 공개매수 방법으로 해야 하고 2/3 이상 되는 경우 전부 공개매수 의무가 뒤따른다. 중국 역시 30% 이상 취득하는 경우 또는 30~50% 보유 주주가 12개월 이내에 2% 이상 추가 취득하는 경우 전부 또는 의무 공개매수를 선택해야 한다. 

반면 한국은 주식양수도 거래 방식 M&A와 관련, 의무공개매수제도가 없고 지배주주에 신인의무나 선관주의(善管注意)의무도 적용하지 않고 있어 지배주주가 회사 경영이 잠시 어려움을 겪을 경우 장기적 발전에 관심이 없는 무자본 약탈형 M&A꾼에게 경영권을 비싼 값에 팔아넘길 유혹에 늘 노출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부분의 상장사에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현실을 고려하면서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도입, 모든 주주에게 투자자금 회수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는 정 교수의 주장은 타당하다. 다만 그는 주식소유 분산이 잘 된 영국과는 달리 지배주주가 대부분 존재하고 경영권 프리미엄도 높게 형성된 한국 현실에서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도입하면 경영권 인수 대금이 높아져 M&A 거래 자체가 줄어들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각종 차익거래가 횡행하면서 시장에 혼란을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문제를 해결할 핵심은 전체 주주에게도 매각 기회를 균형되게 제공하면서 인수대금 역시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매겨지도록 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일반주주 보호 ▲약탈형 M&A 방지 ▲인수인의 지나친 부담 증가에 따른 M&A 감소 가능성 방지 ▲국제적으로 정합성 인정이란 목표를 놓고 관련 제도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상충되는 내용이어서 이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지만 한국 증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극복해야할 과제임은 분명하다. 

원칙적으로 의무공개 매수제도 도입을 통해 지배주주 뿐만 아니라 일반주주도 자신이 투자한 회사가 팔리는 과정에서 ‘비례적인 이익’을 누리도록 해주는 것이 옳다. 주식양수도를 통한 M&A 과정에서 일반주주도 지배주주가 누리는 경영권 프리미엄의 일부를 공유하는 것을 인정하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윤수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정책관은 이날 토론에서 “주식양수도 방식 M&A시 일반주주 권리보호가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어 그간 연구용역, 세미나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해왔다”며 “금번 세미나 논의 내용을 반영해 세부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고 금융위는 전했다. 금융위 역시 문제점을 이미 파악, 개선방안을 수립해왔으며 최종 대책을 내놓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이다.

주식양수도 과정에서 일반주주 권익 보호는 자본시장의 공정성 제고와 직결된다. 소수주주의 권리를 강화해야만 증시 참여자가 안정적으로, 장기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관련 제도가 합리적으로 개선되고 예측가능성이 보다 높아질 때 한국 증시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위의 향후 역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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