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11.09 17:55
태릉GC 화랑코스 1번 홀. (사진=국군복지단 홈페이지 태릉 사진공모전 캡처) 
태릉GC 화랑코스 1번 홀. (사진=국군복지단 홈페이지 태릉 사진공모전 캡처)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A씨는 최근 골프를 시작한 친구의 실전 연습을 도우려고 9홀을 두 차례 돌 수 있는 서울 주변 골프장의 요금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고양시 덕양구 올림픽CC의 11월 후반기 평일 그린피는 최고 17만원이고 금요일에는 최고 19만원, 토·일요일은 최고 22만원이다.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54분까지 대부분의 시간대에 최고요금이 적용된다. 18홀 기준 카트이용료는 10만원, 캐디이용료는 14만원이다. 1인으로 나눠보면 월~목요일은 23만원, 금요일은 25만원, 휴일에는 28만원이 들어가는 셈이다. 여기에 아침이나 점심 식사비를 더한다면 휴일엔 30만원 이상 소요된다.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베스트밸리GC의 경우 평일 9홀 골프장을 2회 도는데 18만원, 주말 및 공휴일에는 22만원의 그린피를 내야 한다. 카트비 9만원에 캐디피 14만원을 포함, 1인당 평일에는 23만7500원, 휴일에는 27만7500원을 지출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 이전만 해도 수도권 9홀짜리 골프장은 대체로 평일에 1인당 11만원~12만원 안팎에 18홀 라운딩을 즐길 수 있었다. A씨는 "대중화된 골프를 지향하며 편한 복장과 편안한 진행, 부담 없는 가격으로 고객님들이 부담없이 골프를 즐길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는 골프장 홈페이지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며 "9홀 골프장이 이처럼 배짱장사를 할 수 있는 한국에서 골프는 예나 지금이나 귀족스포츠일 뿐"이라고 탄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큰 혜택을 본 곳이 바로 골프장이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손님이 없어 적자에 시달리다가 싼값에 팔렸던 골프장도 제법 있었다. 코로나가 엄습한뒤 골프장의 값어치는 한껏 올라갔다. 

겨울철을 맞아 일본이나 동남아국가에서 골프를 치려 해도 엄격한 방역 규제 등으로 입국이 사실상 불허되다보니 울며겨자먹기로 제주도 등 남부지방 골프장을 가야 했다. 개인 SNS에 예쁜 의상을 입고 라운딩을 즐기는 모습을 올리려는 젊은 층이 대거 유입되고 TV마다 골프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된 여파 등으로 골프 수요가 폭발하면서 수도권에선 거리가 멀고 코스도 나쁜 골프장이라도 평일 예약조차 쉽지 않았다. 특히 일조시간이 짧아진데다 납회 수요까지 몰리는 11월 들어 부킹난은 더 심해졌다. 다만 비수도권의 경우 야외마스크 의무착용 해제 등 방역규제가 풀린 이후 평일에는 빈자리가 제법 생겼다. 양극화가 심화된 것은 골프장도 마찬가지다. 

골프장마다 수요가 넘쳐나자 그린피와 카트비를 앞다퉈 인상했다. 충남지역 회원제 골프장인 우정힐스CC는 주중 비회원 그린피를 16만원에서 21만원, 휴일의 경우 20만원에서 26만원으로 30% 가량 올렸다. 지난 2년여간 전국 골프장의 그린피는 평균 20%이상 인상된 것으로 집계됐지만 체감 상승률은 이보다 훨씬 높다.

수도권과 강원도의 경우 30~40% 이상 올린 곳이 대부분이다. 카트비는 8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승했다. 캐디피도 15만원으로 종전보다 2~3만원 뛰었다. 식사비 역시 1만2000원~1만3000원 수준에서 1만8000원 1만9000원대로 올라간 골프장이 적지 않다. 강원도 춘천 퍼블릭골프장인 라비에벨 골프&리조트의 점심식사 요금은 2만8000원에서 3만원 수준이다.

골퍼들이 대부분 여유 있는 계층에 속해 있다는 점에서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골프 제반 비용이 오른 것을 놓고 대놓고 비판할 일은 아니다. 다만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세금 감면 혜택을 제공받는 대중제 골프장들이 그린피를 코로나19이전보다 30% 이상 올린 것은 문제가 됐다. 회원제 골프장의 비회원 그린피와 거의 차이가 없게 받는 곳도 생겨났다. '무늬만 대중제'인데도 세제 혜택을 누린다는 점에 비난이 쏟아졌다.

회원권을 분양해 자금을 상당부분 회수한 회원제 골프장에는 농어촌특별세 및 지방교육세를 포함해 13.4%의 취득세가 부과되는데 반해 대중제 골프장에는 4.6%의 세율이 적용된다. 회원제 골프장의 토지(개발지)와 건축물 재산세율이 4%인 반면 대중제는 각각 0.2~0.4%, 0.25%의 세율이 적용된다. 회원제 골프장의 그린피에는 개별소비세 1만2000원과 각각 개별소비세의 30%에 해당되는 교육세와 농어촌특별교부세가 포함된다. 이에 비해 대중제 골프장은 이용자에 대한 세금 부과가 없다. 대중제 골프장이 회원제보다 같은 그린피에서 더 많은 이익을 챙겨온 셈이다. 

골퍼들의 들끊는 불만을 수용하고 골프대중화도 도모한다는 차원에서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월 20일 '골프장 이용 합리화 및 골프산업혁신방안'을 발표하면서 2026년까지 골프 인구 600만명과 시장 규모 22조원 달성이란 목표를 내걸었다. 아울러 회원제와 대중제라는 이원화된 골프장업 분류기준을 회원제와 비회원제로 나누고 비회원제 골프장 중에서 이용료 등 요건을 충족시키는 경우 대중형 골프장으로 지정한다는 '새로운 분류체계' 도입을 추진해왔다. 국회는 지난 5월 3일 대중형 골프장에 한해 세금 감면 혜택을 준다는 내용의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을 마쳤고 문체부는 지난 11월 3일 체시법 시행령을 개정, 대중형 골프장 이용료의 기준이 되는 '회원제 골프장 비회원 대상 평균 입장요금'을 성수기인 5월과 10월 평균으로 한다는 내용을 확정했다.

문체부는 9일 언론브리핑을 갖고 대중형 골프장으로 지정되기 위한 입장요금의 산정을 위해 문체부 장관이 고시하는 금액을 현 회원제 골프장과 대중골프장에 대한 개별소비세와 재산세 과세금액 차이를 고려한 금액인 3만4000원으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대중형 골프장으로 지정돼 3년간 개별소비세 면제, 낮은 세율의 재산세 부과 등의 혜택을 누리려면 회원제 골프장을 이용하는 비회원이 내는 그린피보다 3만4000원 이상 낮은 금액으로 책정하라는 얘기다.

대중형 골프장이 되고자 하는 체육시설업자는 비회원제 골프장 등록 시 대중형 골프장 지정 신청을 시도지사에게 하고 시도지사가 이를 문체부로 이관하면 장관이 요건을 확인하고 지정 여부를 30일 이내 시도지사와 신청인에게 통고한다. 물론 기존 대중제 골프장이 대중형 골프장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세금 혜택을 포기해야 한다. 

아울러 모든 골프장은 골퍼의 알권리 보장 차원에서 입장요금, 카트 이용료, 부대서비스 이용료를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개별사업자인 캐디 이용료는 표시의무대상에서 제외된다. 골프장은 내년 1월 1일부터 누리집과 현장에 게시해야 한다. 일부 불투명하게 운용중인 이용요금의 투명성을 높이고 건전한 거래질서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보근 문체부 체육국장은 이날 "정부의 대중형 골프장 세제 지원은 이용자들에게 혜택을 주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며 "약 60% 이상의 골프장이 대중형 골프장으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최 국장의 전망대로 회원권을 분양하지 않고 자체 자금으로 넓은 대지에 멋진 코스를 조성한뒤 명문 회원제 골프장 수준 이상의 그린피를 받고 있는 대중제 골프장은 비회원제로 남아 세금을 더 내는 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  

문체부가 대중형 골프장의 입장료 인상을 차단하기 위해 상한제를 도입한 취지는 충분히 이해가 가고 적잖은 그린피 인하 효과도 예상된다. 다만 보완해야할 대목도 적지 않다. 입장요금만 규제할 뿐 카트이용료는 대상에서 빠져있다는 것이 문제다. 

높낮이 차이가 큰 산악 지형에 골프장이 대부분 조성된 관계로 전동카트가 계속 운행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속도로 플레이가 이뤄지지 않는다. 카트가 띄엄띄엄 다닌다면 플레이 속도 저하로 영업수익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이처럼 카트 사용 여부에 대한 골퍼의 선택권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카트를 쓰지 않는다면 '코스 입장'이 불가능하다. 카트비를 입장요금과 별도로 받는 것은 골프장 측의 눈속임에 불과하다. 이를 감안, 카트비도 그린피와 같이 규제대상에 넣어 입장요금 상한선을 다시 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개정된 체시법령에 따르면 대중형 골프장 지정을 신청하는 업자가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그린피를 3만4000원 이상 낮추면서 카트비를 상응하는 만큼 올려 전체 이용요금을 현 수준처럼 받는다해도 정부로서는 마땅히 규제할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 꼼수 인상을 통해 수익극대화를 누리는 얌체 대중형 골프장이 늘어날 우려도 없지 않다.

국토가 좁고 산이 많은 한국에서 미국이나 캐나다 수준으로 낮은 요금에 골프를 즐기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규제 개혁을 통해 하천 부지나 폐염전 등 땅값이 싸고 시공비도 덜 드는 곳에 골프장을 대거 짓지 않는 한 골프 문턱을 낮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10만평의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에 130억원을 들여 2004년 만든 9홀의 퍼블릭코스는 운영방식과 입장료 산정을 둘러싼 국민체육진흥공단과 서울시 간의 대립으로 결국 바로 옆의 하늘공원과 비슷한 노을공원으로 변경, 조성된 바 있다. 테니스에 비해 유독 비판을 받는 골프에 대한 사회적 반감도 난지도 골프장 폐쇄에 영향을 미쳤다고 여겨진다.

정부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운영 중인 공공형 에콜리안 골프장을 확충하고 2030년까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공형 골프장도 10곳 이상 조성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휴일에 1인당 10만원 이하에 즐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지자체가 짓고 관리하는 코스가 명실상부한 퍼블릭 골프장이다.

앞으로 난지도 골프장 사태가 재발된다면 정부가 꿈꾸는 골프대중화는 요원하다. 이를 위해 골프에 대한 인식 전환부터 필요하다. 골퍼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캐디와 전동카트 의무 사용도 손을 봐야한다. 캐디 없이 셀프라운딩을 할 수 있도록 안전시설을 보강하고 거리표시도 보강하는 것은 물론 플레이 지연을 막기 위한 경기보조 앱과 인공지능 카트 도입 등의 대책이 요구된다. 

올해 겨울부터 따뜻한 국가에서 저렴한 가격에 골프를 치려는 골퍼들이 급증할 전망이다. 벌써부터 여행사를 통한 사전문의와 예약이 쇄도하고 있다. 국내 골프장도 이젠 그린피를 더 올리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고 여겨진다.

코로나 사태 속에 대중제 골프장의 영업이익률은 최고 40% 수준에 달했다. 코로나가 엔데믹으로 전환되는 추세에서 이런 초호황은 당분간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향후 인구고령화에 따라 골프를 그만두는 노인은 늘어날 것이고 복합경제위기와 고물가에 따라 골프를 배우려는 젊은 세대는 최근 3년보다 줄어들 수 있다. 첨단 기술을 총동원, 원가를 가능한 낮춰 라운딩 비용을 현재보다 절감하려는 업계 노력이 경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국 골프산업은 결국 불황의 늪에 빠질 것이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