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11.29 17:48
김소영(오른쪽 가운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유관기관과 금융시장 합동점검회의를 갖고 금융시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금융위)<br><br>
김소영(오른쪽 가운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9월 2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유관기관과 금융시장 합동점검회의를 갖고 금융시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금융위)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1. 우리은행 기업개선부서에 근무한 A씨는 동생 B씨와 함께 2012년 10월부터 2018년 6월까지 은행 계좌에 있던 614억여원을 3차례에 걸쳐 인출, 주가지수 옵션거래 등에 탕진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지난 9월 30일 이들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A씨에게 징역 13년, B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아울러 각각 323억7665만원의 추징을 명했다. 검찰은 93억여원의 추가 횡령 금액을 포함해 공소장 변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항소했다.

#2. 부산은행의 한 영업점 대리급 직원 C씨는 지난 6월 9일부터 7월 25일까지 10회에 걸쳐 해외에서 들어오는 외환을 고객 계좌에 입금하지 않고 지인의 계좌에 넘긴 혐의로 구속됐다. C씨는 19억2000만원 상당을 빼돌린뒤 5억5000만원을 채워 넣어 13억7000만원을 착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이 돈으로 파생상품 등에 투자했다가 대부분 날린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들어 은행의 횡령사고가 연이어 터지고 적잖은 손실이 발생하면서 평판도 떨어졌다. 이에 못지않게 내부통제 제도가 과연 있기나 한 것이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고객에게 돈을 빌려줄 때 신용도와 담보를 철저히 조사하는 은행이 정작 직원이 공금을 장기간 훔쳐온 것을 전혀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이유에서다. 과거처럼 ‘내부 절도’가 여전하다는 점은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각종 매뉴얼이 헛구호에 그치고 있음을 입증한다. 

금융사고 파문에 휩싸여 있는 것은 증권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수수료 챙기기에 급급한 나머지 고객에게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팔았다가 환매 중단 등의 사고가 터지자 결국 판매액의 상당부분을 배상하는 일이 속출했다. 경영진이 단기성과만을 중시하고 불완전판매에 따른 위험 관리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은행이나 증권사는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고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격'이란 비난을 더 이상 듣지 않도록 내부통제의 실효성을 서둘러 높여야 할 것이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은 24조 1항에서 금융회사는 법령을 준수하고 경영을 건전하게 하며 주주 및 이해관계자 등을 보호하기 위해 임직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준수해야할 기준 및 절차(내부통제기준)를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 금융투자업자 및 종금사, 보험사, 상호저축은행, 여신전문금융회사, 금융지주회사 등은 임직원의 불법행위 등을 사전에 방지하는 내부통제체계를 구축한 상태다. 문제는 사고 예방을 목표로 하는 내부통제 제도를 운영하는데 상당한 노력과 비용이 투입되다보니 경영진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가 29일 '내부통제 개선제도 TF' 중간논의 결과를 발표한 배경에는 대표이사와 이사회, 임원이 내부통제와 관련된 책임을 현재보다 더 많이 지지 않는 한 금융사고를 막을 수 없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이른바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 도입을 통해 최고경영진이 책임을 회피하는 구조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금융위가 밝힌 현행 규율체계의 문제점을 살펴보면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D금융사는 업권별 협회가 제정한 표준내부통제기준을 토씨 하나도 수정 없이 그대로 쓰고 있다. 법률상 의무로 부과된 형식과 절차만 갖춘 것이다. 시늉만 냈을 뿐 내부통제 강화를 향한 조직문화 변화에는 무관심하다는 반증이다. 이보다 더한 곳은 F금융사이다. 이 회사는 지배구조법에 명기된 내부통제의 책임을 하위 직원에 위임했다. 대표이사가 기준 마련 의무를 어기더라도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도록 꼼수를 부린 것이다. 내부통제 관련 권한을 하급자에게 넘겨 임원이 책임을 면하게 된다면 임원마다 내부통제에 신경을 쓸 이유조차 없다. 한마디로 지배구조법 정신을 정면으로 어기는 행위이다. 

이같은 문제를 해소하려면 이미 마련된 내부통제체계의 적절성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운영실태를 면밀히 파악하는 것은 물론 임직원이 기준을 과연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점검해 미흡하다면 보완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사의 직무와 집행을 감독하는 등 경영진에 대한 감시 의무를 지니고 있는 이사회 역시 내부통제 관련된 의무를 지고 권한도 행사하는 것도 병행되어야할 필요성이 크다.  

이와 관련, 금융위는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대표이사와 임원에게 명확히 부여하고 이를 위해 회사의 각 업무영역별로 금융사고의 발생 방지 조치를 취할 임원을 미리 '관리책임자'로 지정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전했다. 다만 이런 제도 도입이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사고 발생시 담당 임원이 운영한 내부통제가 정상 작동되었다고 입증하는 경우 제재를 감경하거나 면제해주는 인센티브 방안이 함께 도입되어야한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강조했다. 

사고가 터졌을 때 담당 임원이 "해당 사실을 알 수 없었다"며 책임 회피에 급급하지 말고 "이러이러한 방지노력을 취했음에도 끝내 사고가 났다"고 소명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금융위가 마련한 개선방안의 핵심이다. 권한 위임 자체를 막을 수 없지만 위임했다는 이유만으로 사고에 대한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는 원칙을 정립, 앞으로 실천에 옮기겠다는 방침은 시의적절하다. 

금융위는 대표이사에게 가장 포괄적인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부과, 금융사고 발생 방지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되 사회적 파장이나 소비자 및 금융회사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한 ‘중대 금융사고’에 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대표이사가 중대 금융사고를 예방·적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능한 규정과 시스템을 구비하고 해당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되도록 관리했다면 조치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고 간주, 중대 금융사고가 났다해도 관련 책임을 줄여주거나 책임을 아예 묻지 않기로 했다. 이같은 방침은 지배구조법이 제자리를 잡는데 기여할 것으로 여겨진다. 최고경영자의 임기가 사실상 1년인 현실에서 단기성과 경영의 폐해를 견제하는 장치로 작동할 수 있어서다. 

아울러 이사회가 대표이사 등의 내부통제 관리업무를 감독하고 대표이사에게 관련 의무 이행현황을 보고하도록 요구할 권한을 부여한다는 금융위 방안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 작동을 보강해 내부통제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표이사가 중대 금융사고를 직접 담당하게 되면 임원들은 기타 금융사고를 맡게 된다.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영역내에서 내부통제와 관련된 관리와 감독을 직접 하라는 것이다. 대표이사를 정점으로 전 임원이 참여하는 가운데 부문별 책임구조가 확립된다면 현재보다 금융사고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전년도보다 수익과 매출을 더 올리는 것보다 사고를 방지하는 것이 보신(補身)에 좋기 때문이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날 "이번 제도 개선을 통해 대표이사가 수익창출을  위한 성과관리와 금융사고 방지를 위한 위험 통제를 균형 있게 수행하면 궁극적으로 금융사고 발생이 줄어들 것"이라며 "금융권에서도 능력과 성과뿐 아니라 정직성·청렴성·평판이 좋은 임원이 성공하는 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금융회사마다 실적지상주의에 빠진 나머지 정직성과 청렴성이 다소 떨어지고 평판이 나쁘더라도 영업이익을 많이 올려온 임원이 결국 은행장이나 대표이사 등으로 승진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음을 꼬집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다만 내부통제 시스템을 제대로 마련하고 잘 작동되도록 관리했는지에 대한 판단 기준 자체가 모호성과 주관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리 되면 금융당국 재량권에 대한 시비가 무성할 것이다. 중대 금융사고의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가를 놓고도 입씨름은 불가피하다. 정의가 명료하고 적용 사례도 분명히 제시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강행한다면 금융당국이 결국 정권의 기조에 맞지 않는 금융회사 수장을 쫓아내는 수단으로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을 도입하려 한다는 지적을 받을 우려가 적지 않다. 금융위는 법리적 검토와 업계 의견수렴을 거쳐 세부 제도 개선내용을 확정해야할 것이다. 무엇보다 업계가 능히 받아들일 만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제도 개선의 출발점이다. 

향후 우리은행과 같은 대규모 횡령 사고가 나면 은행장은 관리의무 이행에 있어 미흡하지 않았다는 점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다면 중징계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리 되면 임기 연장은 수포로 돌아간다. 이런 의무를 지는 책임자 범위에 금융지주 회장도 포함된다. 거액을 횡령한 개인이 공·사문서를 위조하고 부서장의 일회용비밀번호를 훔치는 것을 어찌 막을수 있겠냐며 책임을 모면하는 것도 이제는 불가능해진다. 사고방지를 위한 내부통제 관리를 제대로 이행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