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12.19 15:26
IPO시장 건전성 제고 방안. (표제공=금융위원회)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주식시장은 은행 예금이나 적금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주가 하락, 거래 정지, 상장 폐지라는 위험도 짊어질 각오를 지닌 투자자들이 참여한다. 현재 이같은 거래 원리가 적용되지 않고 있는 곳이 기업공개 공모주 청약시장이다.  

공모주를 주당 1000원에 받아 상장 첫날 '따상'이 이뤄지면 2600원이 되고 이튿날 '따따상'에 성공하면 3380원이 된다. 상장 2일차에 공모주를 모두 팔고 나오면 공모가 대비 238%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 교과서에선 결코 있을 수 없는 '노 리스크·하이 리턴'을 볼 수 있는 곳이 한국 증시이다.

이처럼 공모주 단기 투자가 '무위험 투자'로 인식된데에는 증권당국의 수수방관과 무능력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모가 확정을 위해 진행되는 수요예측부터 '엉터리'로 진행된다. 기업공개 업무를 담당하는 주관사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2일간 국내외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희망 매수가격과 수량 등을 파악하는 수요예측을 진행한다. 기관투자자의 규모나 자금조달 능력에 대한 아무런 확인이나 평가없이  공모주 물량을 배정한다. 당국의 규제나 관리지침도 없다보니 기관들은 사고 싶은 가격조차 쓰지 않은 채 최대한 많이 받으려고만 한다. 지난 1월 LG에너지솔루션 수요예측 과정에서 순자본금 5억원, 순자산 1억원에 불과한 자산운용사가 9조5000억원의 수요를 제출한 것은 허수청 청약이 얼마내 팽배해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당시 공모금액은 12조8000억원이었지만 기관 주문은 무려 1경5203조원에 달했다. 허수성 청약이 판치다보니 적정 가치를 감안한 균형가격보다 더 높게 공모가격이 형성되기 일쑤다. 

기관별 배정을 주관사의 선의에 맡기다보니 평소 업무관계가 좋은 기관에 우선배정하는 불공정도 자행된다. 증권사에서 설립한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에 적극 투자한 기관에 공모주를 먼저 주며 후의에 보답하다보니 자본시장법에 따라 펀드 내 한 종목 비중이 10%를 초과할 수 없는 공모펀드는 적은 물량을 배정받고 있다.    

이런 방법으로 공모주를 대거 챙긴 기관투자자들은 조기 이익 회수에 매달린다. 주요 종목 공모주 상장과정에서 상장 당일 가격변동이 공모가의 63~260%로 제한된 것을 활용, 기준가격 결정 직후 소수 계좌에서 빠른 속도로 매수체결 과점에 나서면서 상한가를 굳혀나가는 주문 행태가 반복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교보증권 광클맨과 같은 세력이 판을 치게 되면 주문속도가 느린 개인투자자는 공모주를 살거나 팔 기회를 잃게 되는 불이익을 당한다. 상장 초기에 급등한 공모주를 뒤늦게 사들였다가 시장 분위기가 진정되면서 본격화되는 주가 하락으로 손해를 입는 경우도 많다. 

2021년이후 코스피 시장에 상장된 법인 15개사는 상장일 종가가 공모가 대비 평균 59.9% 올랐지만 약발이 먹힌 기간은 너무 짧았다. 상장 후 1개월에 43.5%로 떨어지고 3개월후에는 33.1%로 내려갔다. 지난 6월말 기준으로 보면 공모가보다 20.8% 떨어졌다. 물론 고금리 충격으로 올해 증시가 약세를 보인 영향이 컸지만 공모주시장이 전형적으로 돈 놓고 돈 먹기식의 투기장으로 전락할 영향도 적지 않다.

장기보유와 배당 수입을 통해 기업과 투자자가 동반성장한다는 인식이 여의도 증권가에 언제 생길 수 있을까. 이런 분위기가 남아 있는 한 자본시장의 핵심기제인 기업공개 역시 제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금융투자협회, 한국거래소는 19일 증권신고서 제출 이전에도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사전 수요조사를 허용하고 주관사의 책임 아래 수요예측 참여기관의 주금납입능력을 확인하며 상장 당일 가격변동폭을 공모가 기준 60~400%로 확대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허수성 청약 방지 등 IPO시장 건전성 제고 방안'을 내놓았다. 수요예측을 내실화하고 허수성 청약을 방지하며 공모주의 급등락을 방지하는데 적지 않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증권당국은 예상했다.

주관사가 자기자본이나 총자산, 수탁고 등을 증빙서류로 확인하고 자금조달계획서를 평가해 주금납입능력 범위안에서만 청약물량을 제출하도록 한 조치가 주목된다. 허수성 청약을 한 기관은 공모주를 주지 않거나 대폭 축소하는 불이익을 주고 이런 일이 1년 사이에 반복되면 불성실수요예측기관으로 지정, 참여기회를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제도가 정착된다면 적정 공모가가 산정되는 기반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의무보유 확약물량에 대해 최우선배정원칙이 마련한 것도 눈에 띈다. 의무보유기간이 끝나자마자 급격히 매물이 쏟아지면서 주가 약세가 나타나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조치이다.

이처럼 증권당국이 뒤늦게나마 개선조치를 내놓은 것은 의미가 있지만 여전히 기관투자자에 비해 일반투자자가 공모주 청약에서 불리한 점은 이번에도 바뀌지 않았다. 기관투자자는 청약증거금을 면제받는데 비해 일반투자자는 청약금액의 50%를 납부해아 하는 것은 그대로이다. 증권사가 맡아 갖고 있었던 증거금에 이자를 주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관투자자가 일반투자자보다 신뢰도가 높다는 전제에 따른 것이지만 지난 2~3년간 공모주 투자만을 노리고 신설된 자산운용사는 급증했다. 코스피 수요예측 참여기관은 2019년 740곳에서 2022년 상반기에는 1375곳으로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영세 자산운용사가 숱한 상황에서 증권당국은 일반투자자를 여전히 차별하는 셈이다. 공모가 뻥튀기를 줄이고 보다 공정한 게임 규칙을 설정하기 위해 기관투자자도 청약금액의 일정 비율을 증거금으로 내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외국인 기관투자자는 의무보유 확약비중에 비해 많은 공모주를 받다보니 상장 초기 미확약 물량을 쏟아내 주가 급변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 증권당국은 이들에 대해 견제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언제까지 외국인 눈치만 볼 것인가.

공모가격과 초기 상장가격이 거품이 아니라 미래가치의 적정한 발현이라는 믿음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쌓여야만 자본시장이 발전되는 선순환 고리가 마련될 수 있다. 여전히 개미에게 기울어진 운동장부터 고치는 후속 대책이 요구된다.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LG에너지솔루션의 유가증권시장 상장 기념식에서 송용훈(왼쪽부터)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보, 안상환 한국IR협의회 회장, 조상욱 모건스탠리 서울지점 대표, 임재준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CEO 부회장,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CFO 전무, 김성현 KB증권 대표, 이기헌 상장회사협의회 상근부회장이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한국거래소)
1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LG에너지솔루션의 유가증권시장 상장 기념식에서 송용훈(왼쪽부터)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보, 안상환 한국IR협의회 회장, 조상욱 모건스탠리 서울지점 대표, 임재준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CEO 부회장,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CFO 전무, 김성현 KB증권 대표, 이기헌 상장회사협의회 상근부회장이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한국거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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