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12.20 11:15
(그림제공=픽사베이)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1. 게임회사에서 일하는 개발자 A씨는 신규 게임 출시를 앞두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수면과 식사, 기타 사회생활을 희생한 채 장시간 집중적으로 근무하는 ‘크런치 모드’를 겪었다. 회사는 포괄임금제 시행에 따라 1개월에 40시간은 무조건 야근해야한다고 강조했다. A씨는 연일 야근은 물론 휴일에도 출근하는 등 50시간 가까이 일했지만 야근이나 휴일근무수당을 받지 못했다.

#2. 제조업체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B씨는 인력이 부족해 요즘 매일 4시간씩 야근을 한다. 지문인식 출퇴근기록기가 있어 출퇴근 관리가 명확히 이뤄지는데도 회사는 포괄임금에 야근수당이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수당을 주지 않고 있다.

대체로 기업 규모가 작거나 노동조합이 없는 기업에서 포괄임금제를 악용한 ‘야근갑질’과 임금체불이 발생하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개별적으로 산정해야할 여러 임금 항목을 포괄해서 일정액으로 지급하는 계약을 의미한다. 연장과 야간, 휴일근로를 포함해 정액금이나 정액수당으로 주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제도는 아니지만 법원 판례에 따라 형성된 임금지급 계약 방식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노동자가 실제 일한 시간에 따라 시간외근로 등에 상응하는 법정수당을 산정해 지급해야 한다. 다만 대법원은 수당 지급과 관련된 소송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거나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지 않다면 근로시간 규제를 위반하지 않을 것 ▲당사자 간 합의가 있을 것▲근로자에게 불이익하지 않을 것이란 엄격한 요인 하에서 임금의 포괄적 산정을 인정해왔다. 근로시간의 산정이 어려운 등의 사정이 없음에도 포괄임금에 포함된 정액의 법정수당이 근로기준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산정된 법정수당에 미달한다면 포괄임금제에 의한 임금지급 계약 부분은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만큼 ‘무효’이며 사용자는 근로기준법의 강행성과 보충성 원칙에 이해 근로자에게 미달되는 법정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판례에 비춰보면 A씨와 B씨는 유효하지 않은 포괄임금계약 상태에서 일한 만큼 사용자에게 미지급된 법정수당을 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음은 명백하다.

노동현장에서 포괄임금제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소의 고정 OT(Overtime) 계약이다. 근로시간을 산정할 수 있는데도 임금계산의 편의성, 사업주와 근로자의 예측가능성 제고 등을 이유로 맺어진다. 기본임금 외 법정수당을 수당별 정액으로 지급하는 계약으로서, 약정된 연장근로시간을 넘길 경우 초과분을 추가적으로 주어야 하는데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내년 1월부터 3월까지 유효하지 않은 포괄임금계약이나 고정OT계약을 유효한 포괄임금계약으로 오인하거나 남용, 실제 근로시간에 따른 임금을 주지 않은 사업장을 상대로 기획형 수시감독에 나선다고 19일 밝혔다. 기획형 수시감독이란 동향이나 제보, 언론보도 등을 통해 노동관계법령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별도의 계획을 세워 실시하는 근로감독이다. '공짜노동'을 강요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연장근로시간제한 위반, 약정시간을 초과한 실근로에 대한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등을 확인하는 것은 이번이 사상 처음이다. 주된 과녁은 크런치모드 활용빈도가 높은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와 게임업체 10~20곳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고용노동부 페이스북 캡처)

주당 8시간 야근에 합의한뒤 야근시간이 12시간에 달했다면 초과된 4시간에 대한 수당을 주는 것은 사용자의 의무이다. 법률용어에 아직 생소하거나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한 청년 등 노동약자를 상대로 일한 만큼 보상하지 않고 '공짜야근'을 시키는 사업주는 관련 법률에 따라 처벌받는 것이 마땅하다. 

국민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려면 직장 업무와 퇴근후 생활이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일-가정 양립'이 실천되어야만 임직원이 근무시간 중 생산성과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워라밸'(Work-life balance)은 회사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근로문화 선진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아울러 공정한 노동시장 질서를 확립하고 실근로시간을 줄여나가는 노력도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민주노총 등 노조 상급단체의 잘못과 전횡을 바로 잡으려면 사용주의 부당노동행위부터 법과 원칙에 따라 근절해야 한다. 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 중인 노동개혁의 출발점은 '야근갑질' 척결이 되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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