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12.21 11:26
대체육 브랜드. (사진=각사 홈페이지 캡처)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사과나 배, 포도는 외관과 가격을 보고 고르지만 포장된 식품은 브랜드나 제조사를 믿고 선택하기 마련이다. 신제품을 팔려고 한다면 특징이나 장점을 부각, 소비자의 눈길부터 끌어야 한다.    

식품회사가 채식주의자를 위해 개발한 신제품 겉면에 ‘Meat free'를 표시해 팔 수 있을까. 현행 규정으로 금지된다. 이에 비해 ’PLANT-BASED MINCE‘, ’식물성 대체육‘ 이란 표기는 허용된다. 이 제품은 현재 시중에서 팔리고 있다.

도대체 이런 차이가 왜 나는 것일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관장하는 식품표시 광고법 시행령에 따른 ‘식품 등의 부당한 표시 또는 광고의 내용 기준’ 때문이다. 식약처는 식품에 사용하지 않은 원재료를 표시·광고하는 경우 해당 원재료를 쓰는 다른 업체·제품과 ‘부당하게 비교하는 표현’으로 간주, ’무첨가‘ 'free' 등의 표시 사용을 막고 있다.

소비자가 싫어하는 원재료를 넣지 않았음을 알리는 것이 뭐가 잘못일까. 부당한 비교라는 표현 자체도 모호하다. 더구나 이런 규정은 미국, 일본은 물론 국제식품규격(CODEX)과도 맞지 않는다. 업계의 다양한 제품 개발도 방해한다. 

식약처는 이 문제가 국무조정실 산하 신산업규제혁신위원회 검토안건에 들어가자 알레르기 등 인체 위해 우려가 있어 소비자 정보 제공이 필요한 원재료 성분 등의 경우 ‘무첨가, 'free' 등의 표시를 허용하기로 한발 물러섰다. 다만 내년 6월까지 관련 기준 개정을 마치기로 했다. 시행령에 따른 기준을 고치는데 반년 이상 걸리는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식약처는 다른 규제도 개선한다고 밝혔다. 완제의약품 주성분 규격이 공정서와 동일하지 않으면 별규로 심사해 ‘복수 주성분’이 불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의약품 동등성이 입증된 경우 공정서 이외의 규격도 2개 이상 주성분을 인정하기로 했다. 의료기기 허가신청 전 사전검토 요청이 가능한 의료기기 범위와 관련, 현행 신개발 의료기기와 희소의료기기에 이어 혁신의료기기, 임상시험용 의료기기를 추가해 의료기기의 신속제품화를 돕기로 했다.

현재 계획수입 신속통관 대상은 우수수입업소의 가공식품에 한정된다. 앞으로 안전성이 검증된 정제가공용 원료와 식용향료로 확대된다. 이처럼 사전검토 대상이 넓어지면 지원대상이 작년 21건에서 380건으로 급증하고 신속통관제도적용대상이 늘어나면 혜택을 받는 품목이 4만톤에서 212만톤으로 증가한다는 것이 식약처의 설명이다. 이런 조치를 진작 시행했다면 경제복합위기상황에서 신음하는 기업들에게 단비가 되었을 것이다.
 
식약처에 비견되는 첩첩규제의 달인이 온라인 게임을 관장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이다.

모바일 게임을 운영 중인 A사는 게이머의 날로 높아지는 눈높이에 맞춰 고품질의 그래픽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다만 최신 스마트폰이 아니면 정상적으로 즐기기 어렵다는 불만도 나왔다. 진입장벽을 낮추고 이용자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해당 게임을 PC버전으로도 지원한다는 대응책을 마련했지만 출시는 예상보다 지연됐다. 동일한 게임물이라도 당초 등급분류를 받은 플랫폼에 따라 그 효력이 미치는 플랫폼이 달리 규정되어 있어 재심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신규 심사 수수료 등으로 216만원을 날리면서 2개월 가량 심의를 받았다.

문체부 역시 이같은 사안이 신산업분야 기업애로 해소 건의과제로 발굴되자 연내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등급분류규정을 고쳐 PC, 비디오, 모바일 게임물 중 어느 하나의 등급분류를 받은 경우 다른 플랫폼으로 확장시 재심의를 생략하기로 했다. 

게임물에 관련된 문체부의 ‘갑질’ 행태는 20일 발표된 신산업 기업애로 규제개선방안에서 새삼 확인됐다. 현재 게임물 내용 수정 신고 시 등급재분류 대상으로 통보받으면 수정 신고한 전체 콘텐츠를 신고 이전 내용으로 제공해야 한다. 이른바 ‘강제적 롤백 규정’이다. 과도한 규제의 문제점이 신산업규제혁신위에서 지적되자 등급재분류가 필요한 콘텐츠만 롤백하고 나머지 문제없는 내용을 롤백하지 않기로 개선됐다.

이뿐만 아니다. 현재 게임사는 등급 분류와 무관한 경미한 수정사항도 24시간 내 게임물관리위원회에 신고해야 한다. 잦은 행정절차 이행에 따른 업무부담이 제기되자 문체부는 경미한 수정사항의 경우 신고의무를 면제하기로 했다. 

규제의 실익이 없었던 청소년 본인 인증 절차도 뒤늦게 바뀐다. 현재 청소년은 ‘전체 이용가’ 게임물을 이용할 경우 본인인증은 물론 법정대리인의 동의까지 받아야 해 게임물 접근이 힘들었다. 앞으로는 법정 대리인의 동의가 있으면 청소년 본인의 인증을 갈음하는 것으로 개선된다.

보건복지부가 의료광고 자율심의 기준을 명확히 하기로 한 것도 주목된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광고를 할 때 ▲비급여 가격(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급여가격) 공지 ▲일정 조건을 충족한 치료전·후 사진 비교 등을 허용한다. 다른 병·의원보다 비급여 가격이 싸며 치료 효과가 우수하다는 점이 알려질수록 소비자의 선택권이 넓어져 후생도 커진다는 점에서 당연하고 합리적인 조문이다.

의료법과는 달리 대한의사협회는 의료광고자율심의기준을 통해 이를 금지하고 있다. 경쟁 촉진에 따른 수익 감소를 우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의대 입학정원 늘리는 것을 수십년 간 결사적으로 반대해온 의사협회의 기득권 지키기 발상에서 나온 것도 분명하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음데도 복지부는 의협의 의료법 위반 행위를 수수방관했다. 뒤늦게 그간의 판례와 정부 유권해석 등이 반영된 '적정 자율심의 기준' 운영을 의협에 요청하는 등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이번에야말로 의사단체 편이 아니라 국민 입장에 서야 한다. 보다 적은 의료비에 양질의 치료서비스를 받고 싶은 국민의 여망에 부응해야 한다.  

(인포그래픽 제공=국무조정실)
(인포그래픽 제공=국무조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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