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12.22 15:01
2023 경제정책방향 (표제공=기획재정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격지수는 2017년 1월 100에서 2021년 10월 206.4로 4년 10개월 동안 106.4% 상승했다. 이처럼 한창 달아올랐던 부동산 시장은 지난해 10월을 정점으로 하락세로 전환했다. 올해 하반기 들어서는 북극권 냉기에 휩싸여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년 사이에 몇 억원 급등했다는 호황 시절 소식은 이젠 '1년 사이에 반토막', '분양 미달  아파트 속출'이란 헤드라인으로 대체된지 오래다. 대출금리의 급격한 인상 속에 그간 소홀히 여겨왔던 가격 거품에 대한 공포가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혼을 끌어모으듯이 모든 대출을 일으켜 아파트를 산 국민들의 충격이 가장 크다. 거래가 급감하고 어쩌다 계약이 체결된 ‘급급매’ 가격이 해당 아파트 시세가 되면서 매입 가격보다 떨어진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인위적 감원을 노린 명예퇴직 바람이 부는 상황에서 '실직'이란 충격이 더해지고 집값 하락세가 앞으로도 이어진다면 대출이자 상환은커녕 집을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하는 신세로 내몰릴 수 있다.

이와 관련, 한국은행은 22일 내놓은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각 가구가 보유한 주택자산 가격이 2022년 6월 말 대비 20% 하락하면 고위험 가구 비중이 3.3%에서 4.9%로 확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위험가구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40%를 넘고 부채자산비율(DTA)을 100%를 넘는 가구를 의미한다. 20명 중 1명은 집을 매각해도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배째라' 신세로 내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서울 지역 대단위 아파트에선 지난 7월 이후 시세가 20% 이상 떨어진 곳이 적지 않다. 고위험가구가 한은 예상보다 이미 더 늘어났을 수 있다.

내년 상반기까지 내림세가 지속된다면 은행은 담보로 잡은 주택을 경매시장에 내놓을 것이다. 현재 분위기라면 예정가격에서 최소 1~2회 유찰될 우려가 높다. 유찰횟수가 늘어나면서 해당 아파트 시세는 내려갈 것이고 이로 인해 담보가치가 추가로 떨어지는 악순환 고리에 들어갈 수 있다.

이처럼 부동산시장이 무너져 내린다면 부동산 거래업자의 대다수는 문을 닫게 되고 건설업체는 신규 분양의 위험성을 의식, 공급 감소에 나설 수밖에 없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으로 자금을 빌려준 증권사나 제2금융권의 연쇄 피해 발생도 불가피하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부동산시장 경착륙 방지이다. 이를 위해 다주택자에 대한 과도하고 징벌적인 규제를 정상화하겠다는 정부 방침은 '전세 감소, 월세 우위'라는  시대 변화를 감안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전세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제도로 유명하다. 고도성장 시절 주택값이 안정적으로 계속 오를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도입된뒤 현재도 운영 중이다. 은행 대출을 받고도 돈이 부족하면 전세를 끼고 사는 관행이 일반적이다.

전세금 대출금리 폭등으로 월세가 더 싸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늘 오르는 것으로 생각했던 전셋값도 큰 폭으로 떨어지는 상황이다. 이젠 집 주인이 대출을 받아 전셋값 일부를 세입자에게 돌려주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세는 집 구매 수단의 하나로 활용될 수 있는데 비해 월세는 집을 사는 것과는 별 관련이 없다. 뒤집어 보면 전세 감소는 주택 구매 수요 감소를 의미한다. 다주택자를 부동산 투기의 주범으로 몰아세웠던 문재인 정부와 달리 현 정부가 다주택자를 부동산 시장 거래 주체로서 존중하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과 관련성이 크다.

주택 매수 수요가 급격히 위축된 마당에 규제지역 다주택자들이 고금리 부담을 짊어지고 집값 하락 위험성을 감수한 채 집을 사도록 유도하는 조치는 현실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점을 감안,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21일 ‘2023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부동산 시장 규제 패러다임을 전면 전환하겠다. 다주택자를 주택 시장 내 공급의 주체로 보아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규제를 정상화하기 위해 취득세, 양도세 중과 및 규제지역 내 대출규제 등은 완화하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분양권이나 주택입주권을 산 뒤 1년이 지나서 팔 경우 양도차익이 발생할 경우 기본 양도세 외에 추가로 부과했던 '단기 양도세'를 물리지 않겠다는 결정이 주목된다. 미분양주택과 입주권에 대한 단기 양도세율을 2020년 수준으로 환원하기로 한 조치는 그만큼 불황의 골이 깊음을 뜻한다.

금리인상 추세가 빠르면 내년초 마무리되고 정체 시기를 거쳐 하락 추세로 접어들면 부동산값이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 규제지역을 내년 초 추가로 해제해고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지역도 줄이며 실거주 및 전매제한 규제도 문재인 정부 이전 합리적 수준으로 환원한다는 방침 역시 매수 수요를 이끌어내기 위한 처방이다.

정부 대책의 효과와 관련, 매수 수요 진작이나 심리 회복에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부동산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집값 바닥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다 주택담보대출금리도 8% 돌파를 앞두고 있어 시장 반응도 시큰둥하다. 12월 현재 서울지역 주택 전월세전환율이 4.9%, 경기도는 6.2%인 현실에서 주택임대사업자들이 7~8%대 이자를 물고 대출을 더 받아 주택을 살 유인은 없다. 세입자를 찾기 힘들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이런 현실에서 금융당국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그대로 갖고 간다면 당분간 '백약이 무효일 것'이라는 분석은 설득력을 갖는다. 은행권은 총 대출액이 1억원을 넘는 차주들에게 DSR 40%를 적용해야 한다. 제2금융권은 50%이다. 소득이 낮다면 LTV 규제가 모두 풀려도 DSR 규제에 묶여 LTV 상한까지 대출받을 수 없다. 

차주가 갚을 수 있는 소득 능력 범위 내에서 돈을 빌리도록 한다는 금융당국의 원칙은 구구절절 옳다. 수년간 크게 늘어난 가계부채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과도한 DSR 규제를 손보지 않는 한 차가운 바람만 불고 있는 부동산시장을 되살릴 수 없다는 반론 역시 합리적이다.

DSR이란 대못은 유지하더라도 은행 40%, 저축은행 50%라는 규정이 꼭 지켜져야할 정도로 가치가 높은 지는 의문이다. 부동산시장이 얼어붙은뒤 터져 국민경제 전체에 큰 피해를 주기 전에 선제적으로 DSR 상한선을 일부 높이는 방안을 검토할 때다.

DSR이라고 해서 결코 성역일 수는 없다. 정부는 개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정책일관성 유지와 대의명분 확보에 급급한 나머지 때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끝내 저지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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