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12.23 16:12
ㅗㅁ(그림=기획재정부 페이스북 캡처)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1년 현재 대한민국의 상품시장 규제강도는 38개국 중 6번째로 강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과도한 규제, 공공부문 비중 급증, 재정 의존 확대 등으로 민간의 활력이 떨어지고 도약의 발판도 약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재인 정부 시절 노동, 소득주도 성장 정책, 재생에너지 확대, 징벌적 부동산 규제 등에서 정권 이념 고수와 관련자 기득권 유지에 따른 폐해가 노출됐지만 법률 개정과 제도 개선으로  약점을 바로잡고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가파른 최저임금 상승까지 겹치면서 한국에 투자할 매력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성장잠재력도 떨어졌다. 

평균 수명 연장으로 고령인구의 비중은 날로 치솟는 반면 출생아는 매년 줄고 있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2050년대 초 한국이 세계 1위 최고령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나온 상태다. 조속히 기존 주도산업에서 후위 그룹과의 신기술 초격차를 창출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는데 실패한다면 중국,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의 거센 추격 속에 세계 10대 경제강국이란 자리에서 밀려날 시기가 결코 멀지 않았다.

정부가 ▲신(新)기술 미래분야 개척 ▲신(新)일상 Digital Everywhere ▲신(新)시장 경쟁을 넘어 초격차 확보를 골자로 하는  ‘신(新)성장 4.0 추진 전략’을 21일 발표한 것은 이런 위기감을 반영한 결정으로 분석된다. 이미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실현하고 선진국에 진입한 만큼 향후 목표로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 달성과 초일류국가 도약을 내세운 것이다. 이를 위해 미래기술을 확보하고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며 반도체, 이차전지, 차세대 디스플레이 등  전략산업의 초격차를 넓힌다는 새로운 성장전략이 제대로 추진된다면 수출 실적에서 일본을 안정적으로 제치고 5위 국가로 우뚝 서는 것이 가능하다. 이어 수출 4위 국가인 네덜란드와의 순위 다툼도 노릴 수 있다.  

그간 산업별·정부 주도 방식의 성장전략을 선진국처럼 범부처·민관협업 방식으로 업그레이드한다는 발상도 주목된다. 독일은 2018년 'High Tech Strategy 2025'를 통해 건강과 변혁, 지속가능성, 기술·모빌리티라는 3대 영역에서 암 극복, 사람을 위한 기술, 지속가능 순환경제, 배터리 국내생산 등 12개 임무를 선정한 바 있다. 일본도 2019년 'Moon shot'으로 표현한 도전적 연구개발에서 공간·시간의 제약에서 해방된 사회 실현, 질병 조기 예측 및 치료 실현, 범용 양자컴퓨터 실현, 인간과 공생가능한 AI 로봇 구현 등 7개의 도전과제를 제시했다. 

정부는 각국의 성장모델을 참고해 기술과 일상, 경쟁 분야에서 ①미래형 모빌리티 ②독자적 우주탐사 ③양자 기술 ④미래의료 핵심기술 ⑤에너지 신기술 ⑥내 삶 속의 디지털 ⑦차세대 물류 ⑧탄소중립도시 ⑨스마트 농어업 ⑩스마트 그리드 ⑪전략산업 No.1 달성 ⑫바이오 혁신 ⑬K-컬처 융합관광 ⑭한국의 디즈니 육성 ⑮빅딜 수주 릴레이라는 15대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체계적 추진을 위해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 '신성장 4.0 전략회의'를 운영, 이행상황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보완한다는 체제도 마련했다. 기획재정부 1차관을 팀장으로 하는 '신성장전략 TF'를 신설하면서 각 부처와 국책연구기관으로 구성되는 4개 작업반을 두고 성장전략 자문단을 편성하겠다는 것은 당연한 결정이다. 

문제는 현 정부 임기 내에 이뤄질 프로젝트가 적다는 점이다. 한국판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 조성, 특수영상 클러스터 구축, 민간도심항공 모빌리티 상용화(2025년)와 50큐비트 양자컴퓨터 개발, 응용염 원자로(Molten Salt Reactor) 기술 개발(2026년)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2030년 전후에 달성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분야 선진국보다 기술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현실에서 불가피한 점은 인정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호성' 목표 제시로 끝나서는 곤란하다.

더구나 2026년 5월부터 대선 바람이 불면서 임기말 대통령 국정동력도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정권교체에 관계없이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전임 정부 국정과제의 대부분이 폐기됐던 한국 정치문화에서 '신성장 4.0 전략'의 약효도 이번 정권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결국 3년 6개월 내 선택과 집중을 통해 육성할 가치가 크고 실현가능성도 높은 프로젝트에 승부를 거는 배짱과 끈기, 집념이 요구된다. 모든 것을 다 잘해보려고 시도하다가 아무런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질 것인가.

이런 측면에서 정부가 '신성장 4.0 전략' 프로젝트 등 국가적 도전과제 해결을 위해 '임무지향형 연구개발 트랙'을 신설하고 연구개발 수행의 모든 단계를 민간 중심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한 것은 바람직하다. 특히 성장성과 혁신성이 높은 분야에서 민간이 수행기업을 발굴하고 정부가 매칭 형태로 지원하는 '고위험·고성과' 프로젝트에 거는 기대가 크다. 민간이 20억원 이상을 미리 투자하면 정부는 최대 40억원까지 지분투자한다는 것이다. 15개 핵심 프로젝트 전반에 재량권을 갖고 연구개발에 매진하는 '임무지향형 사업단'을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활성화하고 정부는 규제혁신 등 지원역할에 주력한다는 방침도 돋보인다. 

15대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정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민간의 지혜를 빌리고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참여한 기업이 연구개발에 성공한다면 확실히 돈을 벌 수 있겠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산업구조 전환기를 맞은 한국 경제는 향후 30년 동안 먹고 살 신수종을 하루속히 찾아 사업화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긴 호흡을 요구하는 '신성장 4.0 전략'을 추진하면서 눈앞에 닥친 수출·내수 동반 침체라는  위기에서 버틸 단기 생존 전술을 총동원하는데에도 주력할 때다.

만약 내년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3.5%를 넘어 3% 후반대로 오르면 대부분의 경제주체들은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게 된다. 이미 영세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은 물론 대기업마다 감원 한파가 거세게 불고 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정부는 경제정책의 최우선 목표를 불황 극복에 두어야 한다. 경기침체의 폭을 낮추고 기간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내수와 투자를 살리기 위해 보다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강구, 경제심리 회복을 유도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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