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12.26 08:30

SK·LG·현대·삼성 등 국내 주요 기업들 잇따른 RE100 선언
신재생에너지 목표 8.7%↓…정부 정책 '엇박자'

(사진=한국 RE100 위원회)

[뉴스웍스=정민서 인턴기자] 올해는 친환경을 앞세운 수출 장벽의 위협이 한층 더 본격화된 시기였다. 친환경의 국제 기준 준수가 기업은 물론, 국가의 수출 경쟁력이 된 상황에서 그간 미온적인 대응을 해왔던 국내 기업들도 속속 친환경 전략을 발표하고 생존을 위한 미래 대비에 나섰다.

올해 부상한 친환경 전략은 바로 'RE100'이다. RE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충당하겠다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연간 100GWh 이상의 전력을 사용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하며, RE100에 참여하는 기업은 가입 이후 1년 내에 중장기 재생에너지 전력 확보 계획을 제출하고 매년 이행 상황을 점검받는다. 영국 런던에 소재한 국제 비영리기구 '더 클라이밋그룹(The Climate Group)'이 2014년 RE100을 제시한 이래 100% 재생가능한 전력을 사용하기로 약속한 글로벌 기업은 397곳에 달한다.

올해는 국내 대표 그룹인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이 동참하며 국내 4대 그룹이 모두 RE100 동참을 선언했다. 이제는 친환경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기업의 핵심 전략이 된 셈이다.  

현재 RE100을 선언한 국내 27개 기업 중 올해 발표한 기업은 13곳이다. 전체 선언 기업 중 올해 절반가량이 동참을 선언했다. 많은 기업이 발등에 불 떨어진 듯 RE100 선언에 동참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존재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안정적인 제조와 판매 활동을 위해서다. 전 세계 주요 기업들이 거래 업체에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생산한 제품을 요구하기 시작하고, 이것이 또 하나의 무역장벽으로 작용하면서 RE100의 참여와 이행 여부는 우리 수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환경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9월 공동 발간한 ‘RE100이 한국의 주요 수출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RE100 미가입 시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 수출액이 각각 31%, 40%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RE100 가입이 급증한 이유에 대해 ▲고객사들의 요구 ▲기업 자체의 ESG경영 전략 ▲탄소국경 조정세, 미국 SEC의 탄소감축 공시 등의 제도적 규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월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제조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국내 제조기업의 RE100 참여 현황과 정책과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한 대기업 중 글로벌 수요기업으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은 비율은 28.8%였다. 이미 RE100은 수출 시장에서 규제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글로벌 수요기업으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은 시점은 '2030년 이후'가 38.1%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2025년까지'가 33.3%, '2026~2030년'도 9.5%로 나타나 국내기업의 RE100 대응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RE100 기업 현황. (출처=에너지경제연구원 등)

국내 주요 그룹들 RE100 속속 선언…삼성 2030년까지 7조 투자

그룹 차원에서 RE100에 가장 먼저 동참한 곳은 SK그룹이다. 2020년 11월 SK그룹은 계열사 8개사의 RE100 가입을 공식 발표했다. 이들 계열사 중 SK㈜는 2030년까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나머지 회사는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100%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SK그룹은 다양한 제도를 활용해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늘려나갈 방침이다. 작년 3월에는 연간 5.7GW 분량에 달하는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 인증에 녹색 프리미엄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더 클라이밋그룹이 제시한 가입 조건에 맞지 않아 캠페인에 참여할 수 없었던 SK이노베이션·SK에너지 등 주요 계열사의 경우, 그룹 차원에서 RE100에 준하는 목표를 세워 에너지전환 실천에 나설 계획이다.

이어 2021년 4월, LG에너지솔루션이 국내 배터리 업계 최초로 RE100에 가입했다. 올해 8월에는 중장기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 세계 생산시설 RE100 전환을 완료한 뒤 2030년까지 비생산시설도 RE100 달성을 완료하기로 했다. 이후 2040년까지 사용하는 모든 전기·연료·가스 사용으로 발생하는 탄소의 제로화를 달성하고, 2050년 원재료(광산)부터 배터리 생산까지 이르는 모든 밸류 체인의 탄소중립 실현을 목표로 삼았다.

RE100을 제시한 더 클라이밋 그룹과 CDP(Carbon Disclosure Project)가 발표한 '2021 RE100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RE100 가입 14개의 국내 기업 가운데 전환율(2020년 기준) 33%로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올해 4월에는 현대차그룹 계열인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현대위아가 RE100 가입을 승인받았다. 현대차그룹 4개사는 지난해 7월 글로벌 RE100 가입을 선언했고, 이후 회사별로 '한국 RE100 위원회'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해 최종 가입 승인을 받았다. 이들 계열사 중 현대자동차는 2045년까지, 현대모비스와 기아는 2040년까지, 현대위아는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100%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4개사는 공동 진출한 글로벌 사업장에서 RE100 대응 협업체계를 갖추고 ▲주요 사업장에 태양광 패널 등을 설치함으로써 재생에너지 전력을 생산하는 '직접 재생에너지 생산' ▲재생에너지 전력 공급자로부터 직접 전력을 구매하는 '전력거래계약(PPA)' ▲'녹색 프리미엄' 전력 구매 등을 추진해 2050년 RE100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그룹의 다른 계열사들은 이번에 승인받은 회사와 협력해 각 사업장 내 재생에너지 전력사용을 늘리기로 했다.

이어 9월에는 삼성전자가 RE100 가입을 선언했고, 삼성 계열사 4개사(삼성SDI·삼성디스플레이·삼성전기·삼성바이오로직스)도 RE100 선언에 동참했다. 5개사 모두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전환 목표를 밝힌 것이다.

삼성전자는 환경경영 과제에 2030년까지 총 7조원 이상을 투자한다. 이는 재생에너지 목표 달성에 필요한 비용을 제외한 수치다. 탄소중립 목표를 스마트폰·가전 사업 등을 담당하는 DX부문은 2030년에 우선 달성하고, 반도체 사업을 맡는 DS부문 등 다른 부문은 2050년을 목표로 최대한 조기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해외 사업장의 경우, ▲베트남·서남아시아는 올해 ▲중남미는 2025년 ▲동남아·독립국가연합(CIS)·아프리카는 2027년 등 5년 안에 재생에너지 사용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재생에너지가 저렴하고 가격 예측이 가능한 미국·중국·유럽 등에선 이미 목표를 달성했다.

친환경을 강조하던 삼성전자가 RE100 가입을 서두르지 않은 이유는 신중함이 가장 컸다. 반도체·스마트폰·TV·가전 등 전자산업 전 영역에서 제품을 직접 생산하기에 전력 사용량이 상당한 탓이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쓴 전력은 25.8TWh에 달한다. 경쟁사인 ▲구글(18.2TWh) ▲TSMC(18.1TWh) ▲인텔(9.6TWh) ▲메타(9.4TWh) ▲애플(2.9TWh)과 비교할 때 훨씬 큰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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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8월 ESG 리포트를 발간하고, RE100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사진제공=LG에너지솔루션)

◆신재생에너지 비중 목표 8.7%포인트 낮춰…정부 정책 '엇박자'

친환경이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떠오르면서 기업들이 대응 수립에 부산한 것과 달리, 정부 정책은 엇박자가 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제적 추세와 기업들의 요구와는 반대로 정부는 지난 8월 공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실무안'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를 21.5%로 제시했다. 이는 지난해 확정한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의 목표치 30.2%에서 8.7%포인트 후퇴한 것이다. 정부는 이에 근거해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RPS)' 제도의 의무 공급 비율도 줄이기로 했다. RPS 제도는 500MW 이상의 발전설비를 보유한 발전사업자가 총발전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다.

열악한 국내 신재생에너지 인프라도 문제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총발전량 577TWh 중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43TWh로 전체 발전량의 7.5%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0%)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규모가 작은 만큼 재생에너지 단가도 비싸기 때문에 국내에서 RE100을 달성하려면 해외 소재 기업보다 더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재생에너지는 발전 비용도 세계 평균보다 비싸다. 2020년 한국전력 경영연구원이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블룸버그NEF)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태양광 균등화발전원가(LCOE)는 MWh 당 106달러로 미국(44달러)보다 크게 높았고, 세계 평균(50달러)과 견줘도 두 배 이상이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현재 시점에서의 국내 RE100 가입 기업의 전력 소비량이 전체 재생에너지 발전량보다 적지만, 향후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력 다소비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 증가에 대비해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녹영 대한상의 탄소중립센터장은 "해외 수요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수준이 높아지면서 국내기업의 중소·중견기업 협력사까지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며 "현재 RE100에 참여하고 있는 국내 기업의 협력사가 1만개 이상으로 파악되는 만큼 중소·중견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 증가도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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