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12.26 19:02
김주현(가운데) 금융위원장이 26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정책금융기관과 2023년도 정책금융 자금공급 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제공=금융위).
김주현(가운데) 금융위원장이 26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정책금융기관과 2023년도 정책금융 자금공급 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제공=금융위).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정책금융이란 정부가 정책 목표에 맞춰 특정 산업분야를 키우거나 시장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우대금융을 뜻한다. 성장 잠재력이 큰 주력산업이나 신산업 품목군, 당장 수익성은 낮아 민간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기술력과 판로 확대 가능성이 높은 아이템을 갖고 있어 전망이 밝은 벤처·혁신기업에 주로 공급된다. 시중금리보다 낮은 금리 대출, 민간 보증회사보다 싼  보증료에 보증서 발급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정책금융을 취급하는 정책금융기관은 경제·산업의 각종 현안과 과제를 반영, 각종 위기 상황마다 일시적인 자금난에 처한 우량기업에게 유동성을 보충해주는 등 성과를 올려왔다. 문제는 자체적으로 톱-다운 방식으로 분야별 공급액을 결정, 실행에 옮겨오면서 정책금융 본연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각 중앙부처는 산업정책을 결정, 발표하면서 사후적으로 정책금융기관과 자금지원을 협의해왔지만 정책금융기관은 연초 자금공급계획을 이미 확정했다며 지원에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물론 부처별 산업정책 과제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책금융기관이 보수적으로 대응해온 사정은 이해되지만 자금이 꼭 필요한 분야에 정책자금이 충분히 배정되지 못해 목표 달성에 차질이 빚어지는 사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정책금융의 이용대상인 산업별 협회·단체와 기업계의 자금 수요를 공식적으로 모아 통보하는 창구가 없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정책목표 방향이나 산업현장 필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다보니 정책금융기관은 우수기업을 광범위하게 돕는 범용상품을 주로 공급하는데 머물렀다. 결과적으로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자금을 빌리거나 투자받을 수 있는 우량기업만 편중 지원된 셈이다. 이러다보니 정책금융이 시장금융과의 차별성이 낮고 정부정책 목표 달성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게된 것이다. 정부예산 지원이나 자체 신용을 바탕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정책금융기관이 정부와 보다 긴밀히 협업해야한다는 당위성이 확인된 셈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에서 금융위원회가 26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2023년도 정책금융기관-정부부처 간 정책금융 자금공급 협약식’을 가진 것이 주목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주재한 협약식에는 강석훈 산은 회장, 윤종원 기은 행장, 최원목 신보 이사장과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 올해보다 11조원 늘어난 205조원 규모의 대출과 보증 자금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산은과 기은이 각각 73조5000억원, 71조원 규모의 신규 대출을 취급하고 신보는 60조5000억원 보증을 담당한다.

(표제공=금응위원회)
(표제공=금응위원회)

전체 공급 목표의 40%인 최소 81조원은 관계 부처 협의에서 선정된 ‘5대 중점 자금공급 분야’에 들어간다. 구체적으로 ▲글로벌 초격차산업 육성 15.6조 ▲미래 유망산업 지원 13.1조 ▲기존 산업 사업 재편 및 산업구조 고도화 17.3조 ▲유니콘 벤처·중소·중견기업 육성 9조 ▲대외여건 악화 따른 기업 경영애로 해소 26.4조원이 투입된다. 금융위는 이중 22조원을 각 정부부처가 제안한 핵심사업과 ‘신성장 4.0 전략’ 분야에 공급하고 일반적인 자금보다 금리·보증료 등을 우대해 지원효과를 높일 계획이다. 정책금융기관이 자체적으로 출시하는 전략분야 우대대출상품도 5대 중점분야에 공급하고, 정부부처나 산업계가 희망하는 분야엔 맞춤형 우대금융도 공급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정부는 11월 4일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3대 산업의 15대 기술을 ‘국가첨단전략기술분야’로 지정한 바 있다. 현재 반도체의 수출 비중은 20.1%, 디스플레이는 4.5%, 이차전지는 1.4%를 차지한다. 총 5.3조가 들어가는 이차전지 산업 중에서  산업부의 ‘이차전치 초격차 확보를 위한 생태계 전방위 지원’에 '1.31조+α'를 우선 투입한다. 반도체 산업에 총 2.8조원을 공급하되 산업부의 ‘반도체 생태계 지원’과 과기정통부의 ‘AI반도체 기술경쟁력 강화’에 '5300억원+α'를 지원한다. 디스플레이 산업 역시 9000억원을 투입하면서 산업부의 '디스플레이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6800억원+α'를  제공한다는 결정도 눈에 띈다. 아울러 한국 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고 향후 시장잠재력이 커 초격차 지위에 오를 수 있는 미래차산업에 3.5조원, 원전 생태계에 3조원을 쏟아붓겠다는 결정도 돋보인다. 이같은 분야는 향후 정책펀드를 통해 투자재원을 별도로 조성할 방침이어서 최종 공급액은 이보다 늘어날 것이 확실시된다. 

이처럼 정부가 정책금융의 산업전략 연계와 지원가능을 대폭 강화하기로 결정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내년도 설비투자가 2.8% 감소하고 수출도 4.5% 줄어들면서 경제성장률이 1.6%에 머물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서 국가 전체 관점에서 한정된 정책금융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부 부처와 정책금융기관 간 상설협의체인 ‘정책금융지원협의회’를 지난 14일 구성하고 협의회를 통해 각 부처와 소관업계의 산업정책 수요를 체계적으로 반영, 내년도 정책금융 자금공급방향을 마련하고 협약식을 체결한 것은 향후 팀워크 발휘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 정부가 밝힌 내년도 경제정책방향 목표는 위기극복과 경제재도약이다. 글로벌 통화긴축, 고금리, 공급망 재편 등에 따른  경제복합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민간 중심으로 활력을 제고하고 미래에 대비해 체질을 개선하는 노력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산업과 금융, 정부부처와 정책금융기관이 합심해 역량을 결집해야 함은 물론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것처럼 ‘위기를 넘어,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만들려면 정책금융이 본연의 역할을 100% 이상 수행해야 한다.  

이날 제시된 자금공급 방향이 제대로 집행되는지 주기적인 실적 점검과 보완이 필요하다. 특정 산업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신상품을 개발, 출시하는 노력도 뒤따라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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