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1.02 16:57
                                                  동해에서 떠오르는 태양 (사진=전기순)
                                                  동해에서 떠오르는 태양 (사진=전기순)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계묘년 새해를 맞아 대기업과 금융사, 경제단체 대표들이 내놓은 신년사의 공통된 핵심은 여러 악재가 동시에 발생하는 위기를 지칭하는 ‘퍼펙트 스톰’과 임박한 경기침체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는 회사가 살아남을까, 사라질 것인가를 좌우한 중요한 시기라는 경계감도 부각됐다. 이에 따라 당분간 거세 파고를 넘는데 중점을 둔 내실경영을 하면서 그 뒤에 따라올 기회를 즉각 움켜잡을 수 있도록 비즈니즈모델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성장엔진 장착 준비에 나서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아놀드 토인비가 '역사의 연구'에서 설파한 것처럼 자연 또는 외부의 적으로부터의 도전에 현명하게 응전, 성공적으로 극복하자는 메시지로 요약된다.

위기에 결코 무너지지 말고 과감히 맞서는 것은 물론 신수종사업에 대한 투자 역시 적기에 이뤄져야한다는 원칙이 제시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일 신년사를 통해 "위기가 더 큰 기업을 만든다는 것을 한화가 지난 역사를 통해 증명해왔다"며 "한 발자국도 내딛기 어려운 극한의 상황에서도 멈추거나 움츠러들기 보다는 내일을 꿈꾸고 백년 한화를 향한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한다"고 독려했다. 이어 김 회장은 "내실을 다지면서도 미래성장동력과 핵심 역량 확보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바로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허태수 GS그룹 회장이 위기극복을 위한 현장 인재들의 역할을 강조한 것도 주목된다. 허 회장은 "세계 경기 하락과 유가, 환율, 물가의 급변동 등 일련의 사업환경 변화는 유례없는 장기 침체의 시작을 예고하고 있다"며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그는 "위기극복의 지혜와 생존은 자발적으로 혁신하는 현장인재들에게 달려있다"며 구성원의 분발을 촉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시기에 대응을 잘한 기업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보통의 기업보다 엄청난 격차를 벌렸다"며 "우리도 퀀텀 점프를 하여 메이저 플레이어로 가느냐 아니면 국내시장에 안주해 존재감 없이 쇠퇴해 가느냐는 올해 얼마만큼 초격차 역량과 최고인재를 확보해 담대한 미래전략을 구상하고 철저히 실행하는가에 달려있다"고 밝혔다. 최고인재의 선제적 확보와 육성, 근본적인 조직문화 개선을 요구한 것이 눈에 띈다. 특히 손 회장은 "2년째 최고 실적을 달성하고 있음에도 그룹 시가총액이 정체되어 있는 것은 우리 그룹의 경쟁력에 대한 시장의 확신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반성했다.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이 "선제적인 위기 관리를 위한 리스크관리문화가 반드시 정착되어야 한다"며 "시장 변화에 흔들림 없는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기술 개발과 품질 제고, 고객 가치 극대화의 중요성도 부각됐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과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은 2일 ‘삼성전자 2023년 시무식’에서 “어려운 때일수록 세상에 없는 기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을 발굴해야 한다.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인 품질력을 제고하고 고객의 마음을 얻고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해 기술 경쟁력 확보에 전력을 다하자”고 강조했다.

안정적 수익기반 확충과 미래 신성장동력 확보. 포트폴리오 다양화도 빠지지 않았다.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은 "차별화된 전략으로 전문성과 경쟁력을 강화해 시대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며 "신사업 발굴과 사회적 책임의 실행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과 기업가치 제고를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다짐했다. 동국제강의 당면과제와 경영방향을 밝힌 것이다.

김교현 롯데케마칼 부회장은 임직원에게 ▲석유화학 산업의 안정적 수익창출 기반 구축 ▲미래 신성장 동력 확보 매진 ▲상시적 리스크 관리 ▲신뢰와 존중의 기업문화 조성을 강조했다.

토끼해를 맞아 토끼를 빗대 임직원의 분발을 촉구하는 요청도 쏟아졌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토끼는 위기에 닥쳤을 때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여 위기를 벗어난다'는 뜻을 지닌 '동여탈토'(動如脫兎)를 키워드로 꺼냈다. 그는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으로 토끼의 기민함처럼 ’Agile KB'로 변화하여 ‘세상을 바꾸는 금융’이란 우리의 미션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재근 KB국민은행장도 "토끼는 가장 영리하고 빠른 동물의 대명사로 다산과 번영을 상징하는 행운의 상징"이라고 전제한뒤 "토끼가 멀리 점프할 수 있는 것은 몸과 다리를 용수철 같이 움츠려서 도약에 필요한 에너지를 축적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는 "강추위에 견딜 수 있는 체력을 다지고 미래의 성장을 견인할 실력을 키워서 우리 KB의 더 큰 도약을 도모하는 ‘용수철 같은 자세’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최윤호 삼성SDI 대표는 시무식에서 토끼의 특징을 열거하며 올해 과제를 열거했다. 최 대표는 "토끼의 큰 귀로 시장 변화를 선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토끼의 지혜로 위기를 극복하며, 긴 다리로 한 단계 점프업해 2030년 글로벌 톱 티어 달성을 앞당기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영리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판다는 의미인 교토삼굴(狡兎三窟)도 인기를 끌었다. 한성희 포스코건설 대표는 교토삼굴을 인용하면서 "지금과 같은 위기에서 이중삼중의 대비책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세 개의 굴로 ▲안전 ▲수익성 제고 ▲친환경 및 미래 신성장 포트폴리오를 손꼽았다.

인재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구현모 KT 대표는 "기업은 결국 사람이다. 기업을 움직이는 시스템과 리더십, 기술은 결국 사람에 맞닿아 있는 만큼 혁신적인 기술 역량은 KT그룹의 성장과 미래를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밝혔다.

역대 신년사에서 빠지지 않는 '올해의 사자성어'도 주목을 끌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고난을 극복해 오히려 기회로 삼는다는 '이환위리'(以患爲利)와 같이 내재돼 있는 기회를 포착하고 청사진을 만들어가는 일에 집중해 새로운 성공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환부작신(換腐作新)의 자세로 전방위적 구조개혁을 추진해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높이고 글로벌 경제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썩은 것을 도려내어 새 것으로 바꾸듯이 새해에는 국민과 정치권, 기업이 한마음 한뜻으로 원팀이 되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점을 요청한 것이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전 그룹, 모든 임직원들이 위기를 두려워하기보다 '한 번 날면 반드시 하늘 높이 올라간다‘는 비필충천(飛必沖天)의 기세로 우리가 가진 저력을 믿고 강력히 돌파해 나가는 한 해로 만들어가자"고 강조했다.

승진보다는 일과 가정의 조화를 중시하는 신세대의 비중이 날로 커지는 것은 감안, 구성원간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개방적이고 유연하게 '일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는 요청도 줄을 이었다. 미국처럼 '조용한 사직'으로 인재가 이탈되지 않도록 수평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조직 구성원을 포용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점이 강조됐다. 임직원이 올린 성과에 적합한 보상을 통해 회사와 임직원 간, 임직원 상호 간에 신뢰와 존중을 쌓으면서 건강한 기업문화를 정립해야한다는 목표도 주어졌다.

위기는 기회를 내포한다. 모든 것이 불투명한 현 시점에서 내실을 다지면서 고객의 신뢰를 얻는 노력이 절실하다. 몸집을 키우기 보다는 혹한에 견딜 수 있는 체력부터 키울 때라는 재계의 판단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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