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1.09 15:23
(사진제공=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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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웍스=최승욱 기자]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로 세계 곳곳에서 지역봉쇄와 생산 중단 사태가 발생하면서 값싼 조달에 중점을 둔 글로벌 공급망은 무너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국과 유럽연합의 대러시아 제재가 지속되면서 '경제안보' 관점에서 원자재와 부품을 구매한다는 사고가 서방진영에 확보하게 자리잡았다.

미국의 대중국 제재는 관세 부과로 수입을 줄여 무역수지 적자를 개선한다는 종전 방침에서 탈피, 자국과 동맹국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새로 만들면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간다는데 맞춰져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속에서 한국 정부는 양국의 산업정책 변화 흐름을 주시하면서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보다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는 5일 내놓은 '2023년 오프로드 통상환경에 대비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통상리포트를 통해 올해 통상환경이 미·중 간 경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각국의 보조금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무엇보다 미국의 대중국 무역이 지난해 3분기 현재 5587억달러로 전년 동기(4885억달러) 대비 14.3% 늘어났지만 전체 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대중국 수입 비중은 미·중 무역갈등이 본격화되기 이전인 2017년 21.9%에서 2022년 3분기 17.6%로 하락했다. 지난해 5월 미국은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키면서 중국을 배제하고 동맹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밝힌데 이어 6월 '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을 제정,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생산된 면화, 태양광패널 부품 등 모든 제품의 수입을 막은 여파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지난해 8월 반도체 시설장비 투자에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는 내용의 '반도체과학법'을 제정하면서 향후 10년간 수혜기업의 중국 반도체 투자를 금지시킨데 이어 10월에는 중국의 첨단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 인력 확보를 저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수출통제 조치를 내놓았다. 미국에서 생산된 제품뿐만 아니라 미국의 기술을 활용해 외국에서 생산된 제품까지 통제하는 '해외직접생산규칙'(FDPR) 적용 품목을 인공지능 및 슈퍼컴퓨터용 반도체, 슈퍼컴퓨터까지 확대한다는 것은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중국의 첨단기술 확보를 막겠다는 의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해 10월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중국을 미국에 도전하는 유일한 국가로 인식하고 있다고 천명한 바 있다.    

미국은 대중국 공급망 제재와 중국 반도체산업에 대한 기술이전 금지로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특히 자국 중심 산업정책을 날로 강화하는 가운데 반도체와 희토류 등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칩4 동맹'과 '핵심광물 안보파트너십' 추진에 적극 나서고 있어 한국 정부와 기업의 기민한 대처가 요구되는 실정이다.  

미국 중간선거 결과 전통적으로 중국 관련 이슈에 보다 강경한 노선을 걸어왔던 공화당이 하원을 탈환하고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적극 지지했던 케빈 매카시 의원이 15차례 투표 끝에 지난 6일 하원의장으로 선출됨에 따라 초당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대중국 견제법안이 논의될 가능성이 커졌다. 민주당의 상원 장악으로 미국 연방의회가 양분되면서 논쟁 소지가 많은 국내용 법안 제·개정은 어려워졌다는 것이 무역협회의 분석이다. 반면 양당의 고른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중국 때리기' 법안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여겨진다.

오는 2024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 역시 재임 성과를 내야하는 만큼 미국의 해외 투자를 심사하는 '국가핵심역량수호법'(NCCD) 제정을 위해 공화당의 협력을 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법은 미국의 첨단기술이 중국에 이전되거나 중국내 첨단기술 발전에 미국이 도움을 주는 것을 막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연방의회를 통과하면 첨단 기술 분야에서 ▲대중국 수출 ▲중국으로부터의 투자 ▲중국으로의 투자가 모두 차단될 전망이다. 양국간 관계개선은커녕 거리두기가 심화될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이같은 조치들과 관련,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만 발표했을 뿐 실질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고 있다. 그만큼 초강대국 미국의 공세에 맞설 카드가 제한된다는 점을 시인한 셈이다. 그렇지만 중국의 저자세가 언제까지 갈지는 불투명하다.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 주석은 내부결집을 유도하고 지지기반도 강화하기 위해 공세적인 대외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 무역협회의 예상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대만과의 무력 갈등 수위를 높이거나 북한의 한반도 긴장 고조 행위를 부추기거나 용인하면서 불안정한 내부 상황 반전을 노릴 수 있다. 우리나라에게 불리한 시나리오이다.  

정부 지출, 조세 지원, 특혜 금융 등 각국 정부의 정책지원이 2020년 5082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사진제공=무역협회) 
정부 지출, 조세 지원, 특혜 금융 등 각국 정부의 정책지원이 2020년 5082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사진제공=무역협회) 

미국은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를 뜻하는 리쇼어링 등을 통한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전략을 현실화하기 위해 인프라 투자 및 일자리법, 반도체과학법,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잇따라 제정한 바 있다. 동맹국과 통상마찰을 야기하는 수준의 자국산 우대 조항을 고수하면서까지 보조금 전쟁에도 본격적으로 참여한 상태다. 중국 역시 2015년 발표한 '중국제조 2025' 달성을 위해 전기자동차, 반도체제조업 등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을 늘리고 있다. 무역협회는 "2019년  중국 정부가 제공한 직접 보조금, 특혜 대출 및 세금 감면 등 혜택은 1조7100억위안(약 2480억달러)로 추정되며 이는 2019년 중국 국내총생산의 1.73%에 해당한다"며 "미국의 GDP 대비 보조금 지급비율인 0.39%보다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특히 5000개 중국 본토 상장기업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 상하이자동차그룹이 2021년 5억9800만달러의 보조금을 받아 수혜기업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BYD, 창청자동차, 장화이자동차 등 3개 자동차사도 보조금 수혜 10위 기업에 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과 중국의 자국 주력산업 육성에 대응, 유럽연합도 공급망 내재화와 기후변화 대응을 명분 삼아 대규모 지원정책을 시행 중이다. 이런 움직임은 신종 무역장벽이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경제안보 우선 흐름에 편승, 추진 중인 각종 무역협정과 주요국의 무역 관련 입법 작업에서 한국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흐름을 잘 파악하면서 우리의 입장이 반영되도록 적극적인 협상에 나서야 할 것이다.

외국 기업과 동등한 여건에서 국내 기업이 경쟁할 수 있도록 법률과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정부와 국회의 의무이다. 주요국의 각종 보조금 지급 내역을 상세히 파악하면서 상호주의에 따라 우리 기업도 공장 신·증설이나 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더 받을 수 있도록 후속조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정치권도 당파적 이익에서 벗어나 ‘기업하기 좋은 나라 건설’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정부가 제출한 세법 개정안을 신속한 입법 작업으로 뒷받침하기는커녕 정쟁으로 시간만 보낸다면 한국 기업의 해외 이탈은 가속화될 것이다. 국내로  복귀한 해외 진출기업이 올해 더욱 증가하도록 금융·조세 혜택을 강화하는 조치도 요망된다. 한국이 생산과 서비스, 연구개발에서 가장 매력적인 국가로 발돋움해야만 양질의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창출될 수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선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림제공=무역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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