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1.10 11:42
(인포그래픽 제공=보건복지부)
(인포그래픽 제공=보건복지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의과대학(6년)을 졸업하고 의사 면허를 딴 뒤 인턴(수련의·1년)과 레지던트(전공의·3~4년) 과정을 거쳐 전문의가 되려면 최소 10년이 걸린다. 중·고교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의대에 입학한 뒤에도 장기간 힘들게 공부한 의사들이 선배들처럼 높은 보상과 처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런 현실에서 의료사고에 노출될 위험이 높은데 비해 수입은 형편 없는 진료과목 전공을 꺼리는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과거처럼 의사의 전통적인 직업윤리를 내세우면서 기피과목 전문의가 되라고 유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산모와 태아의 건강, 어린이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 인력이 갈수록 줄어 들고 관련 기반도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그간 보건복지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는데 실패했다. 사태 악화를 방치하는 무능력과 무책임을 과연 언제까지 참아줄 것인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68.2%를 기록했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확보율은 2021년 34.4%로 반토막이 났다. 지난해에는 27.5%까지 떨어졌다. 산부인과 전문의도 2001년도 270명이 배출된 이후 감소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2021년 기준 전국 시·군·구의 42%가 분만 취약지로 분류됐다. 대도시에 살지 않는다면 애를 낳거나 아이가 아파도 가까운 거리에서 전문의가 있는 병·의원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이다. 젊은 세대들이 서울 등 수도권에서 살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의료인력 부족은 심각하다. 그 공백을 일부 메우는 의료인이 간호사이다. 간호사들은 현재 과로로 시달리고 있다. 국내 최고의 상급종합병원인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하는 30대 간호사는 지난해 뇌출혈을 진단 받고 골든타임 내 응급수술을 받지 못해 사망했다. 서울아산병원에 일하는 신경외과 의사 25명 중 개두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2명이었지만 각자 일정으로 병원으로 복귀할 수 없어 결국 서울대병원으로 옮겼지만 비극을 피할 수 없었다. 필수의료 인력을 적정 수준으로 확보하려면 의사 수를 대폭 늘리는 것이 절실하다.

국내 의과대학 정원은 2006년이후 17년째 3058명으로 동결된 상태다. 공급을 장기간 통제한 여파로 의사 연봉은 모든 직업군 중에서 가장 높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7월 발표한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현재 의사 평균연봉은 2억3000만원이었다. 흉부외과로 개원한 전문의 연봉이 4억8799만원으로 가장 높았고 안과 4억5836만원, 정형외과 4억284만원 순이었다. 반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연평균 임금이 1억875만원으로 가장 낮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 한국의 인구 1000명 당 임상 의사수(2020년 기준)는 2.5명으로 멕시코(2.4명)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이다.  오스트리아가 5.4명으로 1위를 기록했고 노르웨이가 5.1명으로 뒤를 이었다. OECD 평균은 3.7명이다. 

이러다보니 성적이 전체 대입 수험생의 상위 1% 이내 속하고 적성도 맞는다면 100% 의대 입학을 희망하고 있다. 서울대 공대와 자연대 최상위권 학과조차 복수지원 합격자 중 지방 의대에서 떨어진 수험생이 입학하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학문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더 늦기 전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9일 내놓은 ‘2023년 주요 업무 추진 계획’을 통해 생명에 직결되거나 수요 감소과목, 기피과목 등 필수의료 분야를 지속적으로 강화한다고 밝혔다. 중중·응급환자를 담당하는 어린이병원의 사후 적자를 보상하고 소아응급체계를 강화하며 아동 심층상담 시범사업도 실시할 방침이다. 지역과 진료과목 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과소공급 분야에 대한 보상수준을 높이고 올해 분만에 대해 지역수가를 도입하는 등 공공정책수가를 지속적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특히 복지부는 이날 "비대면 진료 제도화와 의대 정원 증원 등 핵심정책은 의료계와 상시 협의체를 가동해 속도감 있게 추진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를 공식화하고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면서도 의료계와의 '협의' 필요성을 내세웠다. 과거 역대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리려고 할 때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의대 교수들이 파업 등으로 반대 투쟁에 나서자 결국 굴복했던 전례를 잘 알고 있기에 추진 시한을 아예 설정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복지부는 의료인력의 수도권 쏠림과 진료과목간 불균형 완화를 위해 전공의 배치기준을 재검토하고 수련의 질 향상을 추진한다고 공언했다. 의료서비스를 전공의에게 의존하는 실태를 전문의 중심으로 개편하기 위해 평가수가도 개선한다고 밝혔다. 방향 자체는 옳지만 의사가 모자라는 마당에 과연 현실성 있는 대책 마련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 도입과 변호사 시험 도입으로 한국은 변호사 3만명 시대를 맞이했다. 지난 10년 사이 3배 정도 증가한 것이다. 2012년 제1회 시험 당시 1451명이었던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가 2018년 1599명, 2019년 1691명, 2020년 1768명으로 매년 늘어난데 따른 것이다. 

인구 대비 변호사 수로 비교하면 한국은 2013년 일본을 이미 추월했다는 것이 변호사단체의 설명이다. 일본은 사법제도와 법조인 인접 직역의 규모가 우리나라와 가장 유사하다. 단기간에 변호사가 급증하면서 변호사 초봉도 크게 낮아졌다. 이에 비해 2021년 의사 수는 11만명으로 2012년 8만7000명에 비해 9년간 2만300명 늘어나는데 그쳤다. 치과의사도 2012년 2만2000명에서 2021년 2만7000명으로 5000명 증가했을 뿐이다.   

국민들은 자신에게 꼭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누리면서 건강수명을 늘릴 권리를 갖고 있다. 이런 욕구를 해결해주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코로나19가 엔데믹으로 전환하는 단계를 맞아 윤석열 정부는 숙원과제인 의대 정원 증원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의사단체가 누리고 있는 '기득권 깨기'도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 추진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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