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1.17 16:48
KTX 열차가 정차된 모습. (사진=코레일 홈페이지)
KTX 열차가 정차된 모습. (사진=코레일 홈페이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1. 작년 11월 5일 경기도 의왕시 오봉역 구내 양회(시멘트)선에서 수송 담당 역무원이 기관차에 치여 숨졌다. 고인은 2개 선로에 있던 빈 화차 20칸을 서로 연결하여 옮기는 입환 작업을 하고 있었다. 국토교통부는 작업 계획대로 선로전환기가 전환되지 않았던 상황임에도 관련 신호를 확인하지 않은 채 기관차가 후진하다가 해당 선로에 있었던 피해자와 충돌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선로 밖 안전한 곳에서 작업’ 등 안전수칙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돼 한국철도공사에 시정명령을 지시했으며 과징금도 부과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코레일은 해당 선로전환기는 고장 난 사실이 없으며 주 1회 정기점검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선로전환기가 왜 전환되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추가 분석이 요구된다.

#2. 작년 7월 1일 SRT 열차가 대전조차장역 구내를 시속 98㎞로 운행 도중 2개 차량이 궤도를 이탈하자 기장이 비상제동을 걸었다. 사고 구간에 깔린 레일에서 그간 지속적인 궤도틀림 등 이상징후가 발생했는데도 레일 재설정 등 보수조치가 시행되지 않은 것이 탈선을 야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앞서 가던 열차가 사고구간을 통과하면서 이상진동을 보고했으나 철도역 관제사가 이 사실을 뒤따라오는 열차에 즉시 알리지 않았다는 점은 어처구니가 없다. 후속열차가 즉각 서행운전에 들어갔다면 탈선을 막을 수 있었다. 

2022년은 철도안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해로 기록됐다. 오봉역을 비롯해 정발산역(9월 30일), 중랑역(7월 13일), 대전조차장역(3월 14일)등 4개 역에서 코레일 작업자 4명이 사망했다. 작년 1월 5일 KTX가 충북 영동터널 주변을 지나다가 열차 바퀴가 빠져나가 탈선한데 이어 11월 6일에는 무궁화호가 영등포역을 진입하던 중 분기부에서 6칸이 궤도에서 이탈했다. 분기부 텅레일(Tongue Rail)이 이미 부서진 상태였지만 선로 점검에서 이를 파악하지 못했다. 

수도권 1호선의 지각운행은 너무나 잦다. 특히 작년 12월 15일 밤에는 1호선 전동차가 한강철교 위에서 2시간이나 멈춰서는 사고가 났다. 이전 역에서 출입문이 열리면 멈추는 등 이상 징후가 있었지만 이를 무시하고 운행한 결과였다. 

코레일 사고는 2012년 222건에서 2020년 40건으로 줄었다가 2021년 48건, 2022년 66건으로 증가세로 반전한 상태다. 작년 12월 30일에는 SRT 전용구간인 지제역 인근 통복터널에서 발생한 전기공급선 장애로 167개 고속열차 운행이 최대 130분 지연되면서 이용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철도 안전에 대한 국민의 우려와 불안감이 갈수록 커지자 국토교통부는 17일 '철도안전 강화대책'을 내놓았다. 국토부가 밝힌 사고의 원인을 들여다보면 기가 막힌다. 무궁화호 탈선의 경우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 6회의 궤도틀림이 검측됐지만 보수조치 1회는 누락됐고 2회는 3개월 이상 늦게 조치가 이뤄졌다. 오봉역 참사도 신호가 계획대로 바뀌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기관차를 운행한 잘못이 드러났다. 한마디로 기본 안전수칙부터 지켜지지 않고 있음이 입증된 셈이다.

코레일의 잘못은 이곳저곳에서 발견된다. 근로시간 단축을 명분 삼아 3조2교대 근무를 4조2교대로 바꿔달라는 노조 요구를 안전도 평가 등 충분한 사전 준비도 없이 덜컥 받아들였다. 국토교통부의 승인도 받지 않았다. 이로 인해 작업 강도는 낮아졌지만 인원은 확충되지 않아 결과적으로 점검이 소홀해졌다. 무궁화 탈선사고가 난 영등포역의 경우 4조 2교대 도입이후 조당 일평균 인력이 40명에서 34명으로 줄었다. 눈 가리고 아웅한 격이다. 코레일은 뒤늦게 1800여명 충원을 요청했지만 기획재정부와 국토부는 반대했다.

인력난이 심해지면서 경험이 부족한 신입 직원이 위험한 업무에 투입됐다. 2018년 오봉역에서 발목이 절단된 직원은 27세였고 작년 오봉역 사망자는 33세에 불과했다. 작년말 출입문 오작동으로 한강철교 위에서 2시간 이상 정차한 전동차 기관사는 3개월 실무수습을 마치고 단독승무에 투입됐지만 열차 비상대응 조치에 서툴렀다. 코레일의 조직관리에서도 안전우선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차량의 고속화와 선로 연장 증가에도 불구, 코레일은 인력 위주로 차량을 정비하고 시설도 유지보수하고 있는 형편이다. 일반철도 유지보수 비용에서 인건비(경비 포함)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5년 71%에서 2022년 75%로 올라갔다. 이탈리아가 선로 1㎞당 장비를 0.54대 갖춘데 비해 한국은 0.14대에 불과하다. 주요 민간 기업마다 디지털전환과 인공지능 개발에 나서는 판에 코레일은 구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뿐만 아니다. 코레일은 선로점검을 시행하지 못해 최대 시속 170㎞ 이내로 달려할 구간에 지연시간을 줄일 목적으로 최대 190㎞로 주행했고 상하진동이 발생, 단계적인 감속이 필요한데도 도착시간 지연을 막기 위해 과속운행한 사실이 2019년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된 바 있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사례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한마디로 코레일은 안전보다 열차 정시운행을 우선시하고 있는 셈이다. KTX는 도착 예정시간보다 20분 이상 40분 미만 늦으면 12.5%, 40분 이상 60분 미만 지연되면 25%, 1시간을 넘으면 운임의 50%를 고객에게 배상하고 있다. 배상금 지출을 아끼려다보면 승객의 안전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물론 코레일도 억울한 측면이 있다. 코레일이 운영하는 KTX요금은 2011년 4.9% 인상된 이후 줄곳 동결 중이다. 낙후지역에 대한 노선도 의무적으로 운영하면서 매년 1조원 안팎의 적자 행진을 기록 중이다. 누적부채는 20조원에 가깝다. 이런 현실에서 첨단 유지보수 체계를 구축하고 관련 장비를 사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국토부는 ▲민간철도 안전 전문위원 100여명과 청년 제보단 100여명을 통한 안전 취약 요인 상시 점검 ▲지방국토관리청에 철도안전관리 전담조직 보강 ▲정확성이 요구되는 선로 점검은 주간에 1시간 시행 ▲열차 운행속도와 통과톤수를 고려해 점검과 유지보수 기준을 차등화하는 '선로 등급제' 2024년 도입 ▲기관사의 휴대폰 사용 제한을 위해 운전실 내 CCTV 설치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업무량이 많은 역사의 경우 노련한 중간관리자(3급)가 안전 및 직원 관리를 맡는 부역장이나 차량을 정리하고 신호기를 관리하는 역무팀장을 맡도록 하기 위해 현재 선호도가 높은 여객전무의 직급을 기존 3급에서 4~5급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신규 광역기관사는 현장에 익숙해진뒤 차량을 운전하도록 전철차장 업무를 거쳐 기관사로 투입되도록 보직경로를 개선한다는 조치도 제시했다.

무엇보다 '스마트 유지보수 마스터플랜'을 올해 하반기에 수립한다는 국토부 방침이 주목된다. 발로 걸어가면서 점검하는 현행 방식을 원격감시나 검측차량 점검으로 대체, 업무 전반을 자동화·첨단화한다는 것이다. 선로 내부결함을 조기 파악하는 초음파 검사차량을 현재 1대에서 3대로 늘리고 초음파검사기도 기존 70대에서 85대로 확충하며 레일 연마를 통해 선로 사용기간을 33% 연장시킬 수 있는 레일 연마차 2대와 연마기 18대를 2025년까지 도입한다는 방침도 눈에 띈다. 첨단장비를 통해 위험요소를 실시간 파악해야만 작업자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뒤늦었지만 긴요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코레일이 철도시설과 보수, 관제를 독점하다보니 철도산업에서 발전이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간 밥그릇 지키기를 위해 투쟁을 일삼아온 결과 철도안전에 대한 국민의 믿음도 사라지게 된 것 아닐까. 민간 회사가 코레일 영역에 뛰어들 수 있도록 시장이 개방될 필요가 크다. 이와 관련, 코레일 스스로가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 이런 자구노력이 진행된다면 정부도 더이상 고속철도 요금 인상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기술 고도화 추세에 맞춰 정비분야의 안전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원천기술을 보유한 제작사의 정비참여를 활성화한다는 국토부 방침은 시의적절하다. 현재 제작사 등에 차량정비를 위탁하더라도 모든 정비책임은 운영자가 져야 한다. 전문업체 아웃소싱이 사실상 원천봉쇄된 셈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토부는 제작과 정비, 운영 간에 명확한 사고 책임 분담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수도권 광역철도 A노선 중 수서~동탄 구간이 내년 상반기 운행될 예정이다. 단계적으로 개통되는 구간이 늘어나게 된다. GTX 시대가 열리면서 철도 운영 주체는 다양해진다. 운행횟수가 늘어날수록 사고 위험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국민안전을 최우선시하는 철도정책을 수립, 철저히 실행에 옮겨야할 때다. 정부와 코레일, SR, 국가철도공단 등의 부단한 노력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과 정시성, 쾌적성을 갖춘 'K-트레인'이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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