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1.27 15:11
이창양(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6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EC룸에서 김우승 한양대 총장, 박재완 성균관대 이사장, 최중경 동국대 교수, 박일평 LG사이언스파크 대표, 김현석 삼성전자 고문 등 6개 분과별 좌장 및 간사기관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제1차 산업대전환 포럼 좌장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산업부)
이창양(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6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EC룸에서 김우승 한양대 총장, 박재완 성균관대 이사장, 최중경 동국대 교수, 박일평 LG사이언스파크 대표, 김현석 삼성전자 고문 등 6개 분과별 좌장 및 간사기관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제1차 산업대전환 포럼 좌장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산업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한국은 지난 20년 동안 획기적인 새 먹거리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2000년 당시 10대 수출품목은 반도체, 컴퓨터, 자동차, 석유제품, 조선, 무선통신기기, 합성수지, 철강판, 의류, 영상기기이었다. 2021년에는 반도체, 자동차, 석유제품, 합성수지, 조선, 자동차부품, 철강판, 디스플레이, 무선통신기기, 컴퓨터이었다. 반도체는 부동의 1위 품목이고 의류가 빠져 나간 자리를 디스플레이가 채우는 수준의 변화에 그쳤다. 지난 1월 1일부터 20일까지 수출 5대 품목 역시 반도체, 승용차, 석유제품, 철강제품, 자동차부품이었다. 자동차부품과 디스플레이의 성장세가 돋보일 뿐 '그 나물에 그 밥'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배터리(이차전지)를 제외한 기존 주력상품이 모두 중국 등 경쟁국의 거센 추격에 직면한 상태라는 점이 걱정된다.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에서 메모리 반도체 등 일부 제품만이 경쟁력을 유지할 뿐이다. 이로 인해 대중국 무역수지 흑자는 2018년부터 줄곧 줄고 있다. 반도체를 제외한 대중 무역수지는 2021년 처음 적자로 돌아선뒤 2022년에는 243억9500만달러 적자로 확대됐다.

삼성전자 중국판매법인은 지난해 3분기에 가전제품과 스마트폰 판매 부진으로 636억원의 손실을 냈다. 2013년만해도 중국에서 25조원 가량의 매출을 올렸고 스마트폰 점유율도 20%를 웃돌았던 영광은 추억 속으로 사라진지 오래다. 작년 매출은 10분의 1 수준으로 격감했고 휴대폰 점유율은 0%대로 추락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가 중국에서 당하는 수모는 언제라도 다른 주요 수출시장에서 재현될 수 있다.  

향후 10년 이내 변신을 향한 모멘텀을 확보하는데 끝내 실패한다면 한국 역시 일본이 겪고 있는 '잃어버린 30년' 위기에 처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미 시작됐다는 평가도 물론 나온다.  

일본은 1980년대말 1인당 국민소득이 4만5000달러로 미국인보다 잘살았다. 미국의 랜드마크 빌딩과 영화제작사 등을 사들일 정도로 떵떵거렸지만 65세 이상의 인구 비율이 29%로 세계 1위에 오르며 인구 감소라는 충격을 먼저 당한데다 IT기술 등 디지털 혁명에 대한 대처가 늦어져 현재 취업자 평균 임금이 한국보다 뒤처졌다. 그럼에도 막대한 해외채권을 보유한 세계 3위 경제대국이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말 내놓은 '2075년 글로벌 경제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오는 2050년 인도네시아가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으로 급성장하고, 이집트와 나이지리아도 세계 15위권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현재 세계 10위이지만 2030년에는 인도네시아와 브라질에, 2050년에는 멕시코와 사우디아라비아에 추월당할 것으로 예상했다. 2075년이 되면 나이지리아의 경제는 세계 5위, 파키스탄은 세계 6위, 필리핀은 세계 14위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한국의 1인당 잠재 GDP 성장률은 2030년부터 2060년까지 0.8% 수준으로 추락, 38개 회원국 중 가장 낮을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의 미래가 이처럼 암울해진데에는 이유가 많지만 고령화속도와 합계출산율이 세계 1위라는 점이 가장 크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분기 0.86명, 2분기 0.75명, 3분기 0.79명에 그쳤다. 2018년부터 역대 최저 기록을 지속적으로 갱신 중이다.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앞지르는 인구 감소는 2019년 11월부터 나타났다.

오는 2025년에는 65세 이상 비중이 20.6%를 기록하면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7년 만에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들어가게 된다. 15년이 걸렸던 미국이나 10년이 소요됐던 일본보다 훨씬 빠르다. 이런 속도가 이어진다면 2030년에는 인구 4명 중 1명이, 2039년에는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일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 현재 한국의 생산연령인구 비중은 71%를 기록했지만 2040년에는 56.8%로 급락한다. 이에 비해 같은 기간 중국은 69%에서 62.9%로, 미국은 64.9%에서 61.5%로, 일본은 58.5%에서 53.8%로 떨어지는데 그친다. 

생산연령인구(15~64세) 100명당 부양해야할  65세 이상 인구를 뜻하는 노인부양비는 2020년 22.2명에서 2027년에는 33.5명으로 늘어난다. 아동과 노인을 합산한 총부양률은 2058년이 되면 10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돈을 버는 국민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는 얘기다. 2050년대초에는 일본을 넘어 세계 1위의 최고령 국가가 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사회복지 비용이 급증하면 납세자의 세금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이래서야 근로의욕이 생길 턱이 없다. 

저출산·고령사회를 맞아 지속가능한 국가체제로 서둘러 개편하지 못한다면 본격적으로 도래할 '축소사회'의 병폐에 시달릴 것이다. 인구가 늘어나는 시기에 도입된 교육·병역제도,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이 인구 감소기에서도 작동할 수 있게 바꾸는 노력이 시급하다. 매년 줄어들 신생아들부터 잘 키워야 한다. 교육규제 쇄신을 통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미래인재로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 65세로 규정된 노인 기준 연령을 단계적으로 높여 경제활동기간을 늘려나가야 한다. 효과적으로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정책 도입과 함께 외국인에 대한 우호적인 인식 전환도 요구된다.

이런 현실에서 산업통상자원부가 26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제1차 산업대전환 포럼 좌장회의를 갖고 기업투자와 인재 양성, 생산성, 기업환경, 글로벌전략, 새로운 비즈니스 등 6개 분과별로 100일간 민간 전문가들이 자유롭게 논의한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이후 100일간 관계부처와 함께 민간제언을 정책화해 '산업대전환 전략'을 연내 수립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시의적절한 대응이 아닐 수 없다.

작년 10월 말 민간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산·학·연 관계자 100여명이 모여 산업대전환 포럼을 구성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왔다. 투자분과는 첨단투자에 대해 업종별 경쟁국을 지정하고 경쟁국 이상의 인센티브를 보장하는 '투자인센티브 총액 보장제도'와 '국가투자지주회사'(K-테마섹) 설립, 규제에 대한 산업영향평가제도 도입 등을 논의하고 있다. 주목되는 접근방법이다.  

산업대전환 포럼에서 제시한 것처럼 한국 특유의 '갈라파고스 규제'로 인해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의 3분의 1은 한국에서 정상적인 사업이 불가능하다. 금융시장의 건전성이 향상되고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도 대폭 개선되었지만 경제력 집중 방지를 명분으로 내세운 규제는 198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자회사·손자회사의 지분율을 규제하고 일반지주회사의 금융회사 보유도 금지하는 국가이다. 용인반도체 클러스터는 지방자치단체 등의 인·허가가 늦어지면서 투자의향서를 제출한뒤 착공되는데까지 무려 4년 이상 걸렸다. 매출이 커질수록 지원은 줄어들고 각종 규제와 비용부담이 늘어나다보니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은 주기적으로 분사에 나서면서 핵신경쟁력을 강화할 여력이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 

정부가 연구개발에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고 있지만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과는 별 관련이 없다. 연구개발 과제 성공률은 무려 99%에 이르지만 사업화 성공률은 43.7%에 그친다. R&D가 사업화에 제대로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을 표현하는 '코리아 R&D 패러독스'는 시정되기는커녕 고착화되는 실정이다.

이제라도 성장전략부터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지난 30년간 중국을 활용해 경제 규모를 키워왔지만 중국은 산업고도화에 성공한데다 미래전략 핵심기술인 인공지능과 양자에선 한국은 물론 일본까지 앞서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기술패권경쟁과 자국 우선주의 심화 흐름에 맞춰 중국 의존도부터 낮추는 노력이 시급하다. 글로벌 선도기업의 사업 동향과 미래 변화 흐름을 포착, 유망 비즈니스 분야도 서둘러 발굴해야 할 때다.

구태의연한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 한 기존 산업 시스템의 근본적 개선은 불가능하다. 모든 것에 성역이 없다는 자세로 원점에서 기업의 발목을 잡는 족쇄부터 풀어야 한다. 대립적이고 후진적인 노사관계를 서로 파이를 키워 나눠 먹는 상호보완적 관계로 재정립하는 것이 지상과제이다. 외국 첨단기술 기업의 투자 유치를 위해 인센티브를 대폭 확대하고 글로벌 기업들이 서로 쓰려고 하는 수준의 인재를 양성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산업대전환 포럼이 한국을 '투자특별국가'와 '투자허브'로 만들고 금융을 혁신하며 외국 전문인력이 한국에서의 근무를 희망하는데 도움을 줄 제언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초격차 연구개발을 확대하고 인공지능을 내재화하며 기업가정신을 부흥하고 기업의 성장사다리를 촘촘하게 마련하는 정책이 마련되고 착실히 이행된다면 향후 10년 뒤 한국 산업은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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