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2.01 14:19
조규홍 (오른쪽) 보건복지부장관이 1월 26일 열린 의료현안협의체 간담회에 참석,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보건복지부)
조규홍 (오른쪽) 보건복지부장관이 1월 26일 열린 의료현안협의체 간담회에 참석,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보건복지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1. 2016년 교통사고를 당한 중환자가 전북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의사가 없어 7시간 대기한 끝에 숨졌다. 2019년에는 수술 후유증을 앓던 환자가 부산 대학병원으로 이송 도중 "받아들일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끝에 뇌사했다. 2022년에는 상급종합병원인 서울아산병원 간호사마저 제때 치료받지 못해 뇌출혈로 사망했다.  

#2. 중중외상은 발생 후 1시간 이내, 심근경색은 2시간 이내, 허혈성 뇌졸중은 3시간 이내가 골든타임이디. 중증응급환자가 적정시간내 응급의료기관에 도착하지 못하는 비율은 2018년 50.3%에서 2021년 51.7%로 더 높아졌다.

#3. 119구급대는 신고를 받고 중환자를 태운뒤 이송 병원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0년 급성심근경색 응급환자의  11.2%가 최초 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어 다른 병원으로 이동했다. 여기에는 구급대와 병원 간에 중증도 분류기준이 다른 탓도 있다. 병원은 5단계인데 비해 구급대는 4단계이다. 같은 증상과 질환에도 병원과 상이한 판단을 하다보니 가장 알맞은 이송 병원을 고르기 힘들다. 보건복지부와 소방청 간의 '불통'을 상징하는 사례다.

#4. 지방에 사는 소아암환자는 단순진료를 받으려해도 매번 서울로 와야 한다. 2022년 현재 소아암 전문의는 모두 67명이다. 서울 29명, 경기 12명으로 수도권 비중이 61.1%에 달한다. 경상북도와 강원도에는 단 한 명도 없다. 처참한 현실이다.

#5. 강원도 평창은 자동차로 1시간 이내 거리에 태아를 낳을 수 있는 산부인과가 없다. 2021년 출생아수도 106명에 그친다. 250개 시·군·구의 42%인 105곳은 분만취약지역이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분만 의원이 279개에서 218개로 61개 줄었다. 종합병원과 병원을 합쳐 80곳이 문을 닫았다.

대한민국은 전국민 건강보험 제도 덕분에 경쟁국 대비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국민의 생명 유지에 직결된 '필수의료'는 붕괴 위기에 처한 상태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시점에서 치료적기를 놓치거나 거주지 아닌 다른 곳에서 진료를 받아야만 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수술할 의사를 찾기 위해 중중응급환자가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것은 기본이다. 응급실에 가도 진료를 사실상 거부당하거나 후순위로 밀리는 일도 숱하다.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는 내과, 예방의학과, 재활의학과 전문의 등으로 구성된 곳이 대부분이어서 고난도 수술과는 거리가 멀다. 대학병원조차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모자라 신생아·소아에 대한 입원치료를 중단한 상태다. 중증진료에 집중해야할 상급종합병원은 경증환자로 늘 만원을 이룬다.

(표제공=보건복지부)
(표제공=보건복지부)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하반기이후 20여 차례 의료현장과 전문가 의견을 수렴, 마련한 '필수의료지원대책'을 31일 발표했다. 언제 어디서든 필수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목표이다. 이를 위해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정기준에 뇌출혈, 중증외상, 심근경색 등 급성기 치료가 사망 위험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중증응급질환에 대한 최종치료기능을 포함시켜 중증응급진료 역량을 갖춘 중중응급의료센터로 개편하기로 했다. 현재 40곳인 권역응급의료센터를 50~60개 중중응급의료센터로 확충할 방침이다. 권역심뇌혈관센터도 2시간 이내 고난도 수술이 상시 가능하도록 전문치료 중심으로 기능을 개편하기로 했다.

(표제공=보건복지부)
(표제공=보건복지부)

방향은 옳지만 과연 해당 분야 전문의를 제대로 충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비필수·비응급·비중증분야 의사에 비교해 잦은 수술과 당직으로 업무가 과중한데 비해 임금은 상대적으로 낮아 전문의가 되려는 수요가 줄어드는 분야인 탓이다. 신경외과를 지망한 전공의 중 상당수는 밤낮 없는 수술과 진료에 매달리는 교수들을 지켜보고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나면 응급환자가 없고 급여도 높은 척추병원 봉직의로 일할 것을 고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릎인공관절수술로 편히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을 막기는 쉽지 않다. 

이에 비해 '병원 간 순환당직 체계'를 올해부터 시범사업으로 도입한다는 대책이 보다 현실적인 방안으로 판단된다. 복지부는 개별 병원에서 주요 응급질환에 대해 24시간·365일 대응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을 감안, 의료권역 내 최소 1개 병원에서는 최종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당번 요일에는 늘 당직 의사가 근무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지자체는 질환별로 최종치료 가능 여부와 가능한 의사 수를 병원별로 정기적으로 조사한뒤 이를 기반으로 지역내 요일별 순환당직 일정을 편성하게 된다. 

복지부가 소방청과의 협업을 통해 환자 중증도 분류기준을 병원 기준과 일치시키고 지역별 이송지침을 개발, 119구급대가 응급환자를 최적의 병원에 신속히 이송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로 한 것은 비록 뒤늦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이를 위해 응급실 종합상황판에 표시되는 응급실 가용병상과 질환별 치료 가능 여부 등 정보 수집관리체계를 개선, 실시간성과 정확성을 높이기로 했다. 웹사이트 또는 모바일 앱을 활용, 응급환자 영상 등 정보를 공유하고 병원간 협진과 진료 자문을 지원하는 응급전원협진망의 경우 양방향 메신저를 개발, 일대다(一對多) 의뢰 기능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간발의 차이로 귀중한 생명을 잃는 비극을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긴요한 대책이 아닐 수 없다.

위험도에 따라 모자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한다는 차원에서 현재의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신생아 집중치료 지역센터체제를 중증 모자의료센터-일반 모자의료센터 체제로 개편, 중증도에 맞춰 역할을 분담하도록 한다는 계획도 바람직하다. 임신부터 분만, 신생아 치료까지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올해 시범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분만 후 안정적인 회복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 50% 미만에 그치는 산부인과 1인실 비중을  80% 미만으로 완화한다는 방안도 산모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복지부는 소아암 환자들의 원활한 치료와 회복을 위해 소아암 지방거점병원을 새로 5개소 지정하고 집중 육성하기로 했지만 지방 근무를 꺼리는 전문의 확보방안은 제시하지 못했다. 현재 8개소인 소아전문 응급의료센터도 내년까지 4개소를 추가 지정한다지만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이 정원의 10%대로 떨어진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지 지극히 의문이다.

(표제공=보건복지부)
(표제공=보건복지부)

의료계에서 '3D 분야'로 취급받는 필수의료 분야 의료인에 대한 보상을 높이기 위해 기존 행위별 수가의 한계를 보완하는 '공공정책 수가'를 신설한다는 복지부 결정이 주목된다. 응급수술·시술은 현재 평일 주간 근무자에게 수가를 50% 추가로 주고 있는데 앞으로 100%로 높이고 현재 100%를 지급하는 평일 야간과 공휴일 주간은 150%로, 공휴일 야간은 20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40개 권역응급의료센터와 18개 지역응급의료센터부터 도입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고난도·고위험 의료행위에 대해 추가 보상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이를 심뇌혈관질환분야부터 적용한뒤 단계적으로 넓힐 방침이다. 대동맥박리는 제때 치료하지 못하면 24시간 이내 숨질 확률이 25%에 이른다. 팀 단위로 접근, 치료해야할 필요성을 고려해 별도 수술 수가를 신설할 방침이다.

(그림제공=보건복지부)
(그림제공=보건복지부)

복지부는 지방에 있는 의료기관이 존속할 수 있도록 지역별로 차등화된 '지역수가'를 처음 도입한다. 대도시를 제외하고 시·군에 있는 분만 의료기관부터 분만수가에 지역수가를 신설하고 100%를 추가지급한다. 지역수가 신설의 효과를 평가한뒤 응급이나 중증소아 진료 등의 분야도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안전한 분만환경 조성을 명분으로 '안전정책수가'도 신설, 추가로 100%를 준다. 지역수가를 합산하면 지방 산부인과 수입이 현재의 3배로 늘어나게 된다. 이와함께 분만 과정에서의 뇌성마비 발생 등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 보상금액과 국가분담비율도 내년부터 확대하기로 했다. 현재 보상액은 최대 3000만원이고 분담율은 국가 70%, 의료기관 30%이다. 의료사고 부담 경감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표제공=보건복지부)
(표제공=보건복지부)

보상 수준을 이렇게 높인다면 그만큼 건강보험 지출액도 크게 늘어나게 된다. 복지부는 재원 확보를 위해 의원 15%, 병원 20%, 종합 25%, 상급종합 30%의 종별가산율을 각각 0%, 5%, 10%, 15%로 낮추고 검체·영상검사는 모든 종별에 대해 일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종별가산율 정비로 얻은 돈을 저평가 분야 보상 강화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타당한 결정이지만 이런 노력으로 필수의료 보상 강화에 필요한 재원을 과연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까.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은 2006년이후 동결된 의대 정원부터 늘리는 것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은 2021년 보고서를 통해 2035년에는 의사 9654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의 1명을 키우는데 10년 가량 걸리는 것을 고려하면 당장 의대 신입생을 많이 뽑아야할 처지다.

필수의료분야에서 일하는 의사 고령화도 심각하다. 2020년 현재 산부인과 전문의의 33.1%가 60대 이상이다. 외과는 31.4%, 소아청소년과는 25.5%, 심장혈관흉부외과는 23.4%에 달한다.

대한의사협회는 필수의료 분야 지원을 강화하고 의사가 의료사고로 인해 무거운 형사처벌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며 증원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의협의 반발에 밀려 복지부는 충분한 의료인력을 확보하겠다면서도 현재의 인력범위 내에서 근무여건 개선과 지역·과목간 균형배치를 통해 인력유입을 극대화한다는 소극적인 대책을 내놓는데 그쳤다. 36시간 이상 일하는 전공의의 연속근무를 해소하고 당직후 휴식을 보장하려면 의사 숫자를 대폭 늘리는 것 외에 뾰족한 해법이 있나.

복지부는 지난 1월 26일 조규홍 장관과 이필수 의사협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의협과 '의료현안협의체' 간담회를 갖고 국민의 건강증진과 보건의료 발전이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로 했다. 매주 의료현안협의체 모임을 갖고 지역 의사 부족과 필수분야 의사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 적정 의료인력 확충을 놓고 논의한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행정고시에 합격한뒤 기획재정부에서 줄곳 근무해온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의료계에 빚 진 것이 없다. 작년 5월 복지부 차관으로 부임한뒤 장관으로 승진했다. 직업관료로서 최고의 영광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의대 입학정원 증원은 절박하고 시급한 과제다. 국민연금 개혁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조 장관은 빠른 시간내 구체적 이행방안을 마련하는데 직을 건다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 의협과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절실하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