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2.02 15:52
(그림제공=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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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중앙정부의 대학재정지원사업은 2021년 결산 기준으로 약 15조원이며 사업 숫자로는 1026개에 달한다. 대학마다 국고 지원을 받기 위해 신청서를 낸다. 여러 부처가 각각 진행하는 사업을 따내려면 공고문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궁금한 내용을 담당자에게 물어봐야 한다. 취지를 파악하고 대응 방안을 수립, 신청하는데 많은 품이 들어간다. 사업별 보고서는 물론 예·결산서를 일일이 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떨어질 경우 그간 투입된 행정력은 허공에 날아간다.  

수도권에 A급 일자리가 집중되면서 지역인재의 유출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해마다 인구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과감한 혁신과 변환에 나서지 않는다면 결국 문을 닫아야할 대학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수도권에 있는 주요 대학들은 아직까진 신입생 모집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지만 지방대학들은 국립대학조차 충원에 비상이 걸린지 오래다. 정부의 지원사업을 따내야할 절박성이 훨씬 더 크다. 문제는 중앙 부처가 지역의 특성화 전략이나 발전계획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정책 목표에 맞춰 대학 지원 프로젝트를 수행한다는 점이다. 이러다보니 해당 지역 현안을 직접 해결할 수 있는 연구가 별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선진국도 전통사업의 쇠퇴와 주력기업의 몰락에 따른 위기를 대학과 지역사회와의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극복한 바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는 섬유와 담배산업 붕괴로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지역 인재들의 유출이 늘어났다. 주정부는 지역사회 고용을 늘리고 경제성장을 도모하려고 1958년 더럼의 듀크대, 채프힐의 노스캐롤라이나대, 롤리의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를 꼭짓점으로 연결한 삼각지대의 중심에 연구센터 유치에 나섰다. 이후 3개 대학과의 긴밀한 연구협력을 위해 국가 및 민간연구시설이 앞다퉈 입주하면서 리서치 트라이앵클 파크(Research Triangle Park)가 조성됐다. RTP는 민간 주도 상향식 거버넌스 체계를 통해 15만명을 고용하는 성과를 이뤘다. 

핀란드 알토대는 국민기업 노키아의 쇠락으로 인한 충격을 방송, 통신, 콘텐츠 중심의 스타트업을 다수 육성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스타트업 캠퍼스 'A-grid'를 통해 국가경쟁력을 높였다.

프랑스 코트다쥐르에 있는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주도 아래 공공연구단지가 조성된 곳이다. 대학과 연구원이 창업에 나서면 보조금을 지급했다. IT기업들과 연구기관들이 연이어 들어오면서 혁신적인 생태계가 조성됐다. 인근 니스와 칸이라는 유명 휴양지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세계적인 연구도시로 변모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대학을 중심으로 매력적인 창업 및 연구 공간이 마련될 경우 해당 지역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들이다.

(그림제공=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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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1일 열린 제1회 인력양성전략회의에서 지자체가 지역발전과 연계해 지역대학에 투자할 수 있도록 지자체의 대학 지원 권한을 확대하고 자체 혁신에 나서는 대학에게는 규제를 대폭 풀어주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제’를 보고했다. 정부가 갖고 있던 대학 지원 관련 행·재정적 지원을 지자체에 위임하거나 이양해 지역과 대학간 동반성장을 추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Regional Innovation System & Education’의 머리글자를 따서 'RISE'라는 사업 명칭도 만들었다.

존폐 위기에 몰린 지방대학을 살리는 것은 물론 지역발전의 허브가 될 수 있도록 2025년부터 교육부 대학재정지원 예산의 50% 이상을 지자체에 넘긴다는 것이 핵심이다. 지자체가 지원계획을 수립, 개별 대학을 돕도록 한다는 것이다. 지원금을 무기로 대학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해왔던 교육부가 기득권을 대폭 포기한 점이 돋보인다. 물론 중앙정부 주도의 지원으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교육부는 '지역이 키우고 지역을 살리는 지역대학'을 육성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지자체는 자체 지역발전계획과 대학의 특성화 분야 등을 고려해 실수요를 기반으로 RISE 계획을 수립한뒤 교육부 등 중앙부처와 협약을 맺고 지역대학을 돕게 된다. 경쟁력을 갖춘 지역대학 육성을 위해 재정·규제·구조 측면에서 대대적인 개혁이 추진될 예정이다. 

올해부터 내년까지 RISE 체계를 구축하기위해 5개 내외 시·도를 시범지역으로 뽑는다. 이곳을 고등교육혁신특화지역으로 지정하고 규제를 풀어줄 방침이다. 예를 들어 겸임교원을 학기 단위로 임용하거나 특별채용을 허용한다. 학교밖 이동수업 규제를 완화하고 국내 대학간 공동교육과정을 운영할 경우 학점기준을 낮춰주며 학교 인근 공원에서 자율주행로봇 실증 교육과정도 운영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그림제공=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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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의 대학지원 추진기반을 갖추기 위해 시·도에 대학지원전담부서를 신설해 대학 관련 업무를 총괄, 기획하도록 하며 대학과 산업계가 참여하는 가칭 '지역고등교육협의회'도 만들도록 할 방침이다. 사업의 관리와 선정, 평가를 담당할 전담기관(RISE 센터)을 지정, 운영하도록 한다. 이를 통해 지역 주도 대학지원 관련 우수모델을  만든뒤 제도 개선과 법령 개정을 거쳐 2025년 전국적으로 RISE를 시행한다는 시간표를 마련했다. RISE 체제가 확립되면 대학이 필요로 하는 정부지원사업이 RISE 센터를 통해 한꺼번에 제공될 수 있는데다 관련 사업간 연계성도 향상돼 보다 효율적인 사업 추진이 가능할 수 있다. RISE의 장점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지자체와 대학이 협업을 통해 캠퍼스를 중심으로 창업 및 혁신공간을 구축하는 계획을 세우면 중소벤처기업부의 벤처기업육성촉진지구나 국토교통부의 캠퍼스 혁신파크 사업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대학의 연구기술자원을 활용해 지역산업 생태계 고도화에 나선다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역산업연계 대학 개방형 혁신연구실 육성 지원 사업과 연계될 수 있다. 대학의 직업평생교육 기능을 확대하는 것도 살 길이다.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 핵심 산업에서 근무할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고 대학 졸업 이후 회사를 다니면서 계속 살도록 정주 여건 개선에 나선다면 법무부의 지역특화형 비자 시범사업 지원을 받는 것도 가능하다.

혁신적 변화를 선도하는 글로컬대학을 육성한다는 교육부 목표도 눈에 띈다. 글로컬대학이란 특정 분야에서 세계적인 대학으로서 지역발전을 선도하고 지역내 다른 대학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대학을 의미한다. 대규모 구조개혁과 정원 감축, 교육과정과 연구개발 방식 전면 개편, 과감한 교원인사 개혁, 지역산업과의 파트너십 형성 등을 통해 강소대학으로의 변신을 결정하는 등 담대한 비전과 혁신의지, 실천역량을 갖춘 대학을 뽑는다. 선정 및 지원에 관한 사항을 상반기 중 별도 발표할 예정이다. 

교육부는 지정된 글로컬대학에 5년간 대학당 1000억원 지원을 추진한다. 지자체와 산업계의 집중투자도 유도할 방침이다. 올해 10개 내외로 시작해 2027년까지 비수도권 모든 지역에서 총 30개 내외를  지정할 계획이다. 적지 않은 혜택이 집중되는데다 대학의 명성도 올릴 수 있는 만큼 글로컬대학이 되기 위한 경쟁은 매우 치열할 것이 분명하다. 만약 가칭 글로컬대학육성위원희 심의에 신청했다가 탈락한다면 총장부터 사퇴할 처지에 놓이게 되는 등 후폭풍도 거셀 것이다. 이로 인한 후유증이 크겠지만 이같은 충격요법 없이 지방대학의 경쟁력을 제고할 대안이 과연 있을까.  

글로컬대학이 지역내 특정 회사와 맺은 협약에 따라 맞춤형 교육과정을 도입, 운영하고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졸업생들이 매년 안정적으로 입사한다면 해당 과정 신입생 모집도 쉬워질 것이다. 대학과 기업 간 공동연구를 통해 신기술 개발에 성공할 경우 매출 급증에 따른 채용 인원 확대로 대학도 혜택을 받게 된다. 지역산업에 적합한 인재를 키워 취업시키고 해당 지역에서 계속 살도록 한다면 수도권 편중 현상을 완화시키는 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 

대학은 지식과 기술, 인재의 집합체이다. 지역대학이 지역발전의 중심이 되겠다는 각오를 새로 다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RISE 프로젝트의 효용성이 극대화되도록 세부실천과제를 수립, 이행해야할 것이다.

올해 글로컬대학 선정 과정에서 공정성과 신뢰도를 확실히 확보하지 못한다면 단계적인 사업 확대는 암초에 걸릴 것이다. 특정 대도시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하지 않고 대학과 기업을 중심으로 균형발전 중인 독일에서 배울 교훈이 많다. 이를 위해 글로컬대학 모델이 성공해야 한다. 글로컬대학이 지역 변화를 선도하고 국가경쟁력 제고에 기여한다면 지방대학 시대가 열리고 국가균형발전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혁신 의지와 지역성장을 이끌어낼 역량을 갖춘 지방대학을 제대로 뽑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에서도 '제2의 RIP 신화'를 창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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