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2.09 15:47
(그림=보건복지부 페이스북 캡처)
(그림=보건복지부 페이스북 캡처)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자동차 사고를 당하거나 간밤에 갑자기 아플 때 응급병원이 너무 멀리 있다면 어찌 될까. 질병이나 분만, 사고, 재해로 인한 부상이나 기타 위급한 상태에서 즉시 필요한 응급처치를 받지 않는다면 생명을 잃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로 이어질 수 있는 응급환자는 매일 생긴다. 이태원 참사 당시 응급의료가 신속히, 대규모로 이뤄졌다면 적잖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응급의료는 응급환자가 발생할 때부터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나거나 심신에서 중대한 위해가 없어지기까지 제공하는 상담이나 구조, 이송, 응급처치,진료 등의 조치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제때, 제대로 제공되지 못하면 상당수 환자는 가족의 곁을 떠나게 된다. 적시성(適時性)과 적정성(適正性)을 핵심으로 삼는 대표적 필수의료분야이지만 공공재 성격이 강해 민간 의료기관에선 투자를 꺼리는 '시장실패'의 영역에 놓여 있다. 결국 정부가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지원도 늘려야 하는 분야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현재 중중응급환자가 적정 시간 내 최종치료기관에 도착하는 비율은 49.6%를 기록했다. 중증응급환자는 뇌출혈, 중증외상, 심근경색 등 급성기(急性期) 치료가 사망 위험에 밀접한 영향을 주는 질환에 걸린 환자를 의미한다. 중증응급환자가 병원 내부에서 사망하는 비율은 6.2%. 예방가능한 외상(外傷) 사망률은 15.2%에 달한다. 중증외상은 발생 후 1시간 이내, 심근경색은 2시간 이내, 허혈성 뇌졸중은 3시간 이내가 골든타임이다.  중증응급환자가 권역응급의료센터로 가더라도 최종치료가 가능한 분야별 전문인력은 2~3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결국 의료진 부족으로 수용을 거부당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라는 결정을 받기 일쑤다. 

특히 인구가 감소하는 군 지역에 산다면 의료기관의 잦은 폐업으로 가벼운 응급환자조차 응급치료를 받기가 힘든 실정이다. 지역간 응급의료 접근성의 불균형이 심화되는 것이 대도시에 사는 장년층의 농·어촌 이주를 가로막는 결정적 요인이기도 하다.

이뿐만 아니다. 많은 국민들은 방문이 가능한 응급실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동심장충격기 등을 이용한 심폐소생술을 알고 있다고 해도 응급환자가 잘못될 경우 지게 될지 모를 책임 시비에 대한 우려로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구급대원 역시 환자 중증도 판단 역량이 아직 부족한데다 응급처지 영역도 제한적이다. 

이처럼 열악한 응급의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복지부는 8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올해부터 2027년까지 응급의료체계 기본 틀이 되는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안'을 공개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핵심은 질환별 수술 등 최종치료 기능을 포함해 응급 중증도를 기준으로 응급의료전달체계를 전면 개편한다는 것이다. 응급환자가 응급처치 이후 최종치료까지 받을 수 있도록 지역내 병원간 순환당직제를 실시하고 공공정책수가를 도입, 보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표제공=보건복지부)
(표제공=보건복지부)

전국 어디서든 1시간 안에 중증응급환자가 수술, 시술, 입원 등까지 받을 수 있는 '중증응급의료센터'를 50~60개까지 확충한다는 것이 이번 중기계획의 골자다. 40개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중중응급의료센터로 개편하면서 10~20개 가량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센터 지정 평가 항목에 중증응급환자에 대한 최종치료가 가능한지를 중점 반영할 방침이다.

125개 지역응급의료센터는 '응급의료센터'로 바뀌게 된다. 응급의료센터의 책임진료 기능은 중증응급의심환자를 최종치료하고 중중응급환자를 수용하는 것이다. 243개 지역응급의료기관은 1차 응급의료 및 경증응급환자를 최종치료하는 '24시간 진료센터'(지역응급실)로 개편된다. 중중응급의심환자 및 경증응급환자 질환군과 책임진료기능에 대한 정의는 올해 연구를 통해 마련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응급병원이 환자 상태에 따라 최종진료까지 맡도록 해 중중응급환자의 병원 내 사망률을 5.1%로 낮출 방침이다. 이같은 방향으로 응급의료체제를 바꾼다는 것은 바람직하다. 문제는 실천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고 센터간 역할 분담이 제대로 될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제3차 응급의료기본계획이 시행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권역응급의료센터는 4개소, 지역응급의료센터는 6개소 확충되는데 그쳤다. 현재보다 치료부담이 가중되면서 전문인력 추가 확보 등 투자 비용도 늘어날 것이 명백한 중증응급의료센터를 향후 5년간 최소 10개에서 최대 20개 늘릴 수 있을까. 여기에 들어갈 재원을 조달할 방안은 과연 있나.

어차피 대형병원 위주로 선정될 중중응급의료센터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가중될 우려가 높다. 이송과정에서 중중응급환자와 중증응급의심환자의 구별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응급의료센터와 24시간 진료센터와의 경계도 모호해 상호갈등이 야기될 수 있다. 

중소병원의 수익성이 악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입원이 필요하지 않는 경증응급환자 치료를 위해 24시간 진료센터를 운영할 경우 늘어나는 비용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지역별로 우수한 치료 역량을 갖춘 중소병원들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부터 강구되어야할 것이다.  

(그림제공=보건복지부)
(그림제공=보건복지부)

복지부는 개별 의료기관이 365일 당직이 어려운 경우 지역 내 병원 간 순환당직제를 제도화해 지역 내 최소 한 곳은 책임진료에 나서도록 할 방침이다. 의료 취약지의 경우 응급의학 전문의로 구성된 팀이 순환근무하도록 하는 방안도 시도한다. 다만 복지부가 내세우는 순환당직제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환자를 넘겨주고 받는 과정에서 의료사고가 날 경우 책임 소재를 둘러싼 분쟁이 나타날 것은 뻔하다. 본질적인 해법은 필수의료분야 전문의 확충이다.  

복지부는 환자 발생 예측이 불가능한 응급 의료의 특성을 고려해 '기회비용'에 대한 보상을 강화한다. 중증응급센터 최종치료 담당인력에 대해 야간·휴일 당직을 보상하는 방안부터 마련할 방침이다. 환자가 오지 않더라도 늘 대기해야 하는 응급의료의 특성을 감안, 공공정책수가 등 새로운 지불제도 도입을 검토한다. 응급환자에게 우선 배분될 수 있도록 입원실과 수술실이 비어있는 기간에 대해 보상하는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4차 응급의료기본계획안 중에서 주목되는 대책은 응급의료를 합리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온라인 포털과의 연계를 통해 통증, 발열 등 주요 응급증상별 의심질환 정보를 알리고 이 질환 치료에 적합한 병원을 안내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여기에는 실시간 응급실별 혼잡도도 포함된다. 비응급질환인데도 응급실을 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 국민의 이용 편의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IT강국답게 응급의료 정보체계를 선진화한다는 방안도 눈에 띈다. 응급의료 종합상황판을 이용자별 맞춤형 응급의료정보 제공 플랫폼으로 전면 개편한다. 이리 되면 응급의료와 관련된 의사결정이 보다 신속하고 편리하게 이뤄질 수 있다.

또 담당 진료과가 응급질환별 진료 가능 여부를 직접 입력하도록 한다. 수시점검을 통해 정보의 책임성을 확보할 방침이다.

아울러 구급대원이 환자 상태와 이송 중 처치 정보를 단말기에 입력하면 실시간으로 이송 예정 의료기관에서 공유할 수 있도록 연계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방안도 실효성이 기대된다. 이런 개선방안이 실행되면 중증응급환자가 적정 시간 내 최종치료기관에 도착하는 비율이 2027년에는 60% 수준으로 향상될 것으로 복지부는 기대했다.

병원마다 최첨단 의료기기가 경쟁적으로 도입되고 의료기술도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서면서 위기에 처한 환자를 구해주는 필수의료에 대한 관심은 커졌고 기대수준도 높아졌다. 힌정된 의료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응급의료에 대한 투자를 현재보다 확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지역 중심의 응급의료 정책 기반이 보다 강화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복지부는 응급의료 인지·신고·처치에서 이송, 진료, 전원을 포함하는 지역 응급의료체계 평가를 도입하기로 했다. 평가과정을 통해 미비점을 발굴하고 보완한다면 복지부가 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의 가장 큰 목표로 제시한 '전국 어디서나 최종치료까지 책임지는 응급의료' 달성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림=보건복지부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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