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2.13 15:35
경주천년한우. (사진제공=경주시)
경주천년한우. (사진제공=경주시)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오늘 저녁 한우로 한턱 쏠게."

영화나 드라마에서 승진하거나 복권에 당첨된 주인공이 동료나 친지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최상의 표현이다. 한우 등심이나 안심은 극강의 육즙과 풍미가 가득한 '명품'으로 인식된다. 미국산이나 호주산 쇠고기도 맛에선 크게 뒤지지 않지만 가성비에서 주로 주목받을 뿐이다. 

서울 유명 고깃집에서 한우 1인분에 5만원 안팎을 받는다. 서울 마장동 축산시장 등을 찾아가 정육점에서 고기를 구입, 차림상 식당에서 구워먹으면 이보다 싼 가격에 한우를 즐길 수 있다. 이런 번거로움을 각오하더라도 상당한 비용이 든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한우는 암소와 수소를 거세한 거세우 두 종류로 구분된다. 수소의 90% 이상이 거세된다. 지방이 잘 형성되도록 활동량을 줄이기 위한 수단이다. 대체로 거세우는 30개월 지나면 도축된다. 육질이 좋아 암소고기보다 도매시장 가격이 비싸다. 암소는 통상 두차례 가량 낳고 도축되는 경우가 많다. 암소 중에선 한 번도 낳지 않은 미경산우값이 가장 높고 5산 이상의 암소값이 가장 낮다.

(표제공=농림부)
(표제공=농림부)

올해 한우 사육마릿수가 358만두로 역대 최다치에 달하고 도축물량도 95만두로 작년보다 8만두 늘어나면서 한우 도매가격은 추세적인 하락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농림축산식품부는 보고 있다. 지난 1월 한우 도매가격은 1kg에 1만5904원으로 1년전(1만9972원)보다 20.4%, 평년(1만937원)에 비해 16.5% 떨어졌다. 거세우 도매값은 1만7672원으로 1년전(2만1129원)과 평년(2만85원)보다 각각 16.4%, 12% 하락했다. 애써 키운 한우값이 떨어지면서 한우농가의 수입도 줄어들었다. 

문제는 도매값이 하락한 비율만큼 소비자가격에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한우 소매가격은 등심 1등급 100g에 9741원으로 1년 전보다 12.9% 내렸지만 평년보다는 4.5% 올랐다. 설도 1등급은 4234원으로 1년 전보다 11.9%, 평년에 비해 9.6% 하락했다. 복잡한 유통단계를 거치면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한계 때문이다.

가뜩이나 고금리로 가계소비 여력이 극도로 줄어든 현실에서 고급육인 한우에 대한 소비는 살아나기 힘들 것이다. 도매가격이 폭락해도 높은 유통비용으로 소비자가격은 별로 내려가지 않는다면 추가적인 수요 창출이 이뤄질 턱도 없다. 고깃집에서 원가 하락으로 한우 등심값을 낮췄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지난 3년간 한우는 45만마리 증가했다. 이중 24만8000마리는 전체 사육농가 8만8000호의 9.7%를 차지하는 100마리 이상을 키우는 대형농가에서 늘어났다는 것이 농림부의 분석이다. 작년보다 올해 한우 2만4000톤 물량이 추가공급될 전망이다. 이처럼 공급이  늘어나는데도 소비는 정체 또는 감소하는 흐름이 지속된다면  도매가격 하락폭은 더 커지고 그 기간도 늘어날 것이다. 이로 인한 타격은 규모의 경제에서 밀리는 중소농(50두 미만 사육)의 경영부담 가중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를 방치하면 한우 산업기반 약화로 이어진다. 사육 한우가 급감하면 결국 한우값 폭등을 야기할 것이다.

농림부는 중소농의 손실 최소화를 위해 농협경제주지주와 협력, 전국 980개 농협 하나로마트를 중심으로 가칭 '2023 살 맛나는 한우 프로젝트'를 통해 올해 내내 전국 평균 가격보다 20% 낮은 수준으로 파는 것으로 골자로 하는 한우 수급 안정대책을 12일 내놓았다. 한우 도매가격 변동폭을 주 단위로 반영해 권장판매가격을 결정, 제시한다. 직매비율을 높여 유통비용도 낮춘다. 아울러 소비 비수기인 2~3월, 6~7월, 10~12월에는 가칭 '소프라이즈 ~ 2023 대한민국 한우 세일'을 실시, 한우 도매가격 급락을 최대한 억제하기로 했다. 식재료 중 일부를 한우로 대체, 소비 중인 삼성웰스토리처럼 주요 가공·급식업체의 신청을 받아 외국산 소고기와의 차액 일부를 한우 자조금에서 지원한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뒤늦게나마 대대적인 한우 수요 촉진 방안을 제시한 것은 소비자와 농가의 상생을 도모한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이다.

이번 대책이 성공하려면 소비자가 확연히 느낄 만큼 가격이 내려가야 한다. 이를 위해 선봉에 선 농협의 역할이 관건이다. 유통마진을 포기하거나 최소화하는 결단을 통해 한우값을 정부 가이드라인 이상으로 낮춘다면 하나로마트에 한우 애호가가 몰릴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경쟁자인 대형마트, 온라인몰, 슈퍼마켓, 정육점도 가격 인하행렬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자조금을 더 쓰더라도 전국적으로 한우 소비 붐을 조성하는 노력도 요구된다.

농림부는 당초 2021년부터 농가 신청을 받아 감축하고 있던 암소 9만마리에 더해 농가 자율적으로 5만 마리를 내년 상반기까지 도축할 계획이다. 적정물량 이상으로 한우를 늘리는데 큰 영향을 미친 대형농가에 5만마리 감축물량을 배정한 것은 당연한 조치다. 월별, 분기별 출하계획대로 감축되는지 지속적으로 관리해야할 것이다.  

농림부는 진작 한우 수급상황을 면밀히 살펴 한우가 확대공급되지 않도록 정책을 펼쳤어야 했다. 코로나19 기간 중 가정에서의 식사 증가,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한우 수요가  커지자 사육규모도 지속적으로 확대된 것이 한우 과잉공급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앞으로는 수급과잉이 예상되면 3년전부터 씨수소 정액가격을 인상하고 공급이 부족한 경우 정액가격을 인하해 수급 조절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할 방침이다. 축산자조금도 수급 불안이 전망되면 농가 거출금을 인상해 수급 조절에 활용한 계획이다. 다만 수급에 대한 예측능력을 키우는 것이 단기간 내에 가능할지 의문이다.

유통효율화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대책이다. 농협의 축산물 가격 선도 역할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축산물품질평가원, 한우협회, 소비자단체 등을 통해 소매가격을 주기적으로 조사, 공개하도록 했다. 소매점 간 가격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방안이다. 지난해 농협 도드람, 농협 고령, 협신식품 등 3개소에서 시범운영 중인 축산물 온라인 경매를 올해 농협 부경, 농협 제주 등 3개소에서 추가 실시하고 올 상반기에 부분육 경매도 시범운영하기로 했다. 유통비용 최소화가 이뤄지면 유통업자를 제외한 모든 국민이 이익을 얻게 된다.

축산물 납품가격 신고제 도입을 추진한다는 대책도 주목된다. 축산 계열사업자, 도매업자, 가공업체 등에 대해 가축 또는 부분육을 납품받는 가격과 포장육을 납품하는 가격 등을 보고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평균 납품가격을 공개, 소매단계의 유통비용 절감을 유도한다는 계획이 본격적으로 운영된다면 상당한 효과가 기대된다. 미국 농무부는 2001년부터 축산물 가공업체의 생축 및 부분육 구매와 판매정보를 보고 받아 일·주·월 단위로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2018년 현재 소고기 시장의 90% 수준 가격과 물량 정보가 낱낱이 공개되는 상황이다.

농림부의 이번 대책으로 소비자가 한우를 과거보다 훨씬 싼 가격에 살 수 있게 되고 이로 인해 도매가격 하락세가 완화돼 중소농의 경영도 안정된다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경주시의 한 한우농가. (사진제공=경주시)
경주시의 한 한우농가. (사진제공=경주시)

한우 가격과 함께 육우고기 도매가격도 폭락하면서 젖소 수송아지 한 마리가 공짜 또는 단돈 만원에도 팔리지 않는 실정이다. 육유는 한우를 제외한 품종으로 먹기 위해 키우는 소를 말한다. 사료값 폭등과 사육공간 부족으로 육우농가의 수송아지 입식 포기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농가의 사육의지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유유 생산기반도 무너지게 된다.

국내 소고기 시장에서 수입소고기와 경쟁하는 육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한국낙농육우협회는 지난 1일 성명서를 통해 "농협 하나로클럽에 육우 입점이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에 육우고기 유통 및 소비활성화 지원 대책 마련을 촉구한 바 있다.

시장에서 한우와 육우가 보다 본격적으로 경쟁할수록 소비자의 선택권도 덩달아 확대될 수 있다. 가격과 품질을 따진 뒤 자신의 기호와 형편에 따라 편리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일부 식당에서 육우를 한우로 속여 파는 사기행위가 아직 근절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여전하다. 한우, 육우, 젖소별로 분명히 밝혀 파는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위반자에 대한 처벌 강화도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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