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2.15 16:01
(그림제공=한국전력공사)
(그림제공=한국전력공사)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국내 원자력 발전소는 부산 기장과 경북 월성, 울진 등 남부 동해안 지역과 전남 영광 등 남부 서해안에 자리잡고 있다. 석탄발전소의 절반은 수도권과 비교적 가까운 충남 서해안에 몰려 있고 나머지는 전남 여수, 경남 하동, 강원 동해, 삼척 등에서 가동 중이다. 생산한 전력을 주로 소비하는 곳은 수도권이다. 거리가 멀다보니 송전 시설을 구축하는데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 전자파 우려, 미관 침해 등의 이유로 송전탑이 세워지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공사가 늦어지기 일쑤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해안~신가평 500kV 초고압직류송전(HVDC) 건설사업이다. 경북 울진 신한울원전에서 시작해 경북 봉화, 강원 삼척, 영월, 정선, 평창, 횡성, 홍천, 경기 양평을 거쳐 가평 신가평변전소에 이르기까지 총연장 230㎞의 선로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다. 440기의 철탑이 세워진다. 동해안지역에 대규모 발전설비가 연이어 신설되는 것을 감안, 수도권에 송전선로를 새로 내기 위한 사업으로 주민과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지연됐다. 2009년 당초 765kV로 건설하려다가 송전탑이 지나가는 지역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2016년에야 500kV HDVC로 송전 방식 변경이 확정됐다. 이후 입지를 선정할 때까지 동부구간(울진~평창)은 위원회 구성으로부터 2년7개월, 서부구간(횡성~가평)은 3년 4개월이 걸릴 정도로 난산을 거듭했다. 

앞으로 다른 지역 기업과 주민을 위해 왜 우리가 피해를 봐야하느냐는 목소리는 더 커질 것이고 항의와 반대에 나서는 집단행동은 더 거세질 것이다. 물론 삶의 질 확보를 위한 당연한 움직임이다. 이로 인해 향후 초대형 송전사업 신규 추진은 포기해아할 판이다.

이처럼 발전과 공급, 소비에서의 여건 변화를 감안, 정부는 개발경제시대에선 당연했고 효율성도 높았던 '중앙집중화 전력 공급 구조'에서 탈피를 시도, '분산에너지 발전' 확대로 패러다임 변화를 추진해왔지만 아직 갈 길이 너무나도 멀다. 분산에너지 발전이란 전력을 주로 쓰는 곳과 가까운 지역에서 중·소규모로 전력을 생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열병합 등 집단에너지나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등으로 전력을 만든다. 우리나라 여건에서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녹색성장을 명분으로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지만 분산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2017년 10.0%에서 2022년 13.2%로 5년간 3.2%포인트 상승하는데 그쳤다. 집중 투자로 재생에너지는 확대됐지만 전력수급 과정에서의 약점 노출이 더 늘어난 탓도 적지 않다. 제주지역에서의 풍력 및 태양광 출력제한은 2021년 65회, 1만245MWh에서 작년에는 132회, 2만8853MWh로 증가했다.

앞으로도 전력 소비가 꾸준히 늘어날 것인데 비해 발전소를 새로 세우고 신규 송전설비도 갖춰 공급여력을 보강하는 작업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국내 전력 사용량은 2021년 533TWh로 2015년(484TWh)보다 크게 늘었다. 전력 소비량은 올해 558.3TWh에서 2027년에는 608.9TWh, 2032년에는 660TWh로 증가할 전망이다. 탄소중립에 따른 전기화 흐름이 확산되는데다 휘발유·경유차의 전기차 전환,  데이터센터 증가, 운송부문의 전기화 가속화 등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능형전력망 (그림제공=산업통상자원부)
지능형전력망 (그림제공=산업통상자원부)

이같은 현실에서 산업부는 14일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통해 '제3차 지능형전력망 기본계획(2023~2027년)'을 심의, 확정했다. 분산형 전원 비중을 현재 13.2%에서 5년 뒤 18.6%로 5.4%p 높이기 위해 3조7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재생에너지 잉여전력 부문간 연계기술 개발에 2025년까지 290억원, 재생에너지 연계 대규모 그린수소 생산 실증 및 기술개발에 2026년까지 296억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충전기를 통해 전력망에 연결될 전기차 배터리를 에너지저장장치로 활용하는 기술인 VGI(Vehicle Grid Integration) 활성화를 위한 스마트 충·방전 사업모델도 개발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태양광이나 연료전지 등 분산에너지를 통합, 전력시장에서 입찰하는 ICT 기반의 가상발전소인 '한국형 통합발전소' 도입을 추진한다는 방안이 주목된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재생에너지를 '급전(給電)가능 자원'으로 등록, 전력 도매시장 참여를 허용하는 재생에너지 발전량 입찰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올해말 제주지역에서 시범사업을 실시한 뒤 2025년말 전국적으로 확대적용할 계획이다. 일반발전기처럼 용량요금과 부가정산금 등 인센티브를 지급하지만 8%의 허용오차를 벗어난 과잉발전량에 대해서는 페널티를 부과한다. 차질없이 운영된다면 전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전력공급의 유연성을 높이면서 현명한 전력소비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수요반응(Demand Response)' 시장을 확대한다는 조치도 눈에 띈다. 산업부는 작년 1만1000명을 기록한 '국민 DR' 참여고객을 2027년까지 2만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DR은 전력공급이 모자를 경우 가정이나 상가 등에서 아낀 전기를 전력 시장에 팔아 수익을 창출하는 제도를 말한다. 개별 입주가구가 DR에 참여하면 '국민 DR'이라고 호칭한다. 참여 가구는 문자, 스마트폰 앱을 통해 전력거래소로부터 전력 사용 감축 요청을 받은뒤 전기 사용을 줄이면 1kWh 당 1300원 가량의 정산금을 받을 수 있다. 

'국민 DR'은 취지와 의도에선 좋지만 사실상 사문화된 제도라는 비판을 받는다. 모집세대의 절반이 전기차충전기이었고 실제 참여세대는 33%에 그쳤다. 수급비상 발령요건이 공급예비력 6.5GW 미만으로 엄격히 설정돼 있어 최근 3년간 단 1회만 발령됐다. 수요자가 일일이 전기차충전을 삼가거나 가전제품을 끄고 소등하는 노력에 비해 얻는 대가도 미미하다.  

정부는 월별 불균형을 줄이고 참여기회도 확대하기 위해 일일 발령한도를 기존 1일 1회에서 1일 2회로 늘리기로 했다. 전력 피크 수요 를 줄이기 위한 발령조건도 ▲최대전력 예상시간의 공급예비력이 적정 공급예비력 미만일 경우 ▲최대전력 예상시간의 기온이 동·하계 수급대책의 기준 전망 시 적용기온을 초과(여름)하거나 미만(겨울)일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로 완화할 방침이다. 등록요건도 현행 계약전력 70kW 이하 및 주택용에서 계약전력 200kW 이하 및 주택용으로 확대한다. 

지능형전력망은 배전선로에 고장이 나면 즉시 감지하고 이 구간을 제외하면서 공급을 재개할 수 있다. 실시간 데이터 수집과 통신, 제어 등이 양방향으로 이뤄지면서 전력 수요와 공급을 최적화한다는 강점을 지닌다. 투자와 지원을 통해 운영기반 경쟁력이 강화된다면 전력 생산과 소비의 효율화가 기대되고 관련 산업도 발전하면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도 기대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분산에너지시장의 급성장과 분산에너지거래 모델이 활성화되면서 전세계 지능형전력망 시장규모는 2021년 360억달러에서 2030년에는 1600억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매년 18.2%의 높은 성장률이 예상된다.

이처럼 파이가 날로 커질 시장에 우리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 향후 5년간 실시될 이번 3차 기본계획이 효과적으로 추진되는 것이 중요하다. 매년 수립되는 시행계획부터 과거보다 한층 정교하게 작성되어야 한다. 수요자의 적극적인 관심과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만한 세부실천방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지난 2차 계획처럼 저조한 성과를 올리는데 그칠 공산이 적지 않다. 각종 제도 변화에 대한 대국민 홍보 강화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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