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2.22 16:27
하나은행 서울 중구 본점. (사진제공=하나은행)
하나은행 서울 중구 본점. (사진제공=하나은행)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지난해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7차례에 걸친 인상 끝에 2.25%포인트 올라갔다. 금리 급등의 최대 수혜자는 은행이었고, 최대 피해자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서민이었다.

은행업계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25%p 상승하면 은행의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이 0.03~0.05%p 커지고 이자이익은 1000억원 가량 확대된다. 1년 사이에 기준금리가 0.25%p의 9배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은행마다 엄청난 이자이익을 올렸다. 

은행 전체 이익의 8할 이상은 이자이익에서 발생한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대규모 공적자금을 지원 받고 은행들이 통폐합되면서 몇몇 대형 은행이 금융시장을 과점하다보니 이처럼 이자이익 비중이 높은 것이다. 인터넷 은행들은 당초 기대에 비해 '메기 효과'를 일으키는데 역부족이다.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 (사진=이한익 기자)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 (사진=이한익 기자)

지난해 5대 시중은행의 이자이익은 39조 5636억원으로 2021년(32조22억원)보다 23.6% 늘어났다.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은 14조6005억원으로 전년 대비 21.1% 증가했다. 농협은행의 이자이익은 재작년보다 17.8% 늘어난 6조9383억원을 기록했고 당기순이익은 1조7182억원으로 10.5% 증가했다. 기업은행의 이자이익도 7조407억원으로 2021년보다 25.9% 늘어났다. 

지방은행도 약진했다. 부산·경남·대구·광주·전북은행의 연간 이자이익은 5조3086억원으로 전년보다 16.8% 늘어났다. 5대 시중은행과 농협은행, 기업은행, 5개 지방은행의 이자이익은 총 58조 8512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은행의 순이자마진은 2020년 1.42%에서 2022년 1.63%로 0.21%p 상승하는데 그쳤지만 재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금리 상승기에 주택값이 큰 폭으로 뛰면서 주택담보대출 등이 급증한 영향 등으로 2년 연속 이자이익이 급증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 대부분의 국민들은 2021년 상반기보다 2~3배 늘어난 대출원리금을 갚느라 고군분투했다. 반면 은행은 금리 인상분 이상을 대출금리에 전가했다. 땅 짚고 헤엄치기로 엄청난 이익을 올렸다. 

KB국민은행 여의도 신관. (사진제공=KB국민은행)
KB국민은행 여의도 신관. (사진제공=KB국민은행)

2021년에도 기준금리가 7월 0.5%에서 11월에 1.0%로 오르면서 은행권은 막대한 수익을 거두었다. 이에 따른 보상으로 지난해 5대 시중은행의 성과급 총액은 1조3823억원으로 전년 대비 35% 급증했다. 국민은행 임원 1인의 성과급이 무려 15억7800만원에 달했다. 역대급 돈잔치를 벌인 것을 놓고 은행이 공공성을 저버렸으며 사회적 책임도 소홀히 했다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2023년 성과급 역시 사상 최대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3일 "은행의 돈잔치로 인해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금융위는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를 내릴 만한 상황이다.

은행이 작년에 이익을 많이 올린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지난해 전북은행의 변동금리 비중은 77%, 광주은행은 55.7%에 달했다. 금리 상승기에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3조1692억원의 당기순이익으로 리딩뱅크가 된 하나은행의 경우 기업대출에서 변동금리 비중이 다른 은행보다 높은 효과를 누렸다.

은행이 실물경제에 자금을 공급한다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면 차주의 부도나 파산 등으로 인한 손실을 감당하기 위해 평소 충당금을 넉넉히 쌓아놓고 자본여력도 늘려야 한다. 특정한 주인이 없다보니 금융지주마다 사업구조의 다각화나 비이자수익 증대, 해외 진출 등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힘든 분야에 큰 관심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장기 발전 계획 추진에 주력하기 보다는 지점 폐쇄와 명예퇴직금 지급을 통한 인건비 절감으로 자기자본이익률을 높여 사상 최대 순이익을 올리는데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은행권 전반에 확산된 경쟁제한적 분위기 속에서 도토리 키 재기식 영업에 안주하다보니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세계적 금융회사가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우리은행 본점 전경. (사진제공=우리은행)
우리은행 본점 전경. (사진제공=우리은행)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은행 인가 단위를 기능별로 쪼갠 '스몰라이센스'를 도입한다는 방침을 내놓은 것이 주목된다. 소상공인이나 벤처기업 등 특정 전문분야를 갖춘 강소은행의 신규 참여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과점으로 인해 시장경쟁이 저해되고 발전이 늦어지는 약점을 새로운 플레이어 참여로 극복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은행권 경영·영업관행·제도 개선 TF' 1차 회의를 주재하면서 "은행권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비교 추천 등을 통한 기존 은행권내 경쟁, 은행권과 비은행권 간 경쟁 뿐만 아니라 스몰라이센스·챌린저 뱅크 등 최근 제기되고 있는 은행권 진입정책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핀테크의 금융업 진출 확대 등 금융과 IT간 영업장벽을 허물어 실질적인 경쟁을 촉진하는 방안을 비롯한 다양한 경쟁촉진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이 스몰라이센스를 도입하면 한국에서도 '챌린저 뱅크'(challenger bank)가 공식적으로 생길 수 있다. 영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로이드, 바클레이즈,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 HSBC 등 4대 은행 과점에 대한 비판이 늘어나자 2013년 소규모 특화은행의 진입자본을 500만유로에서 100만유로로 대폭 낮췄다. 기존 대형은행이 지배하는 시장의 틀을 흔들라는 의미를 담아 '도전자'라는 단어를 붙였다. 챌린저 뱅크는 중소기업금융과 소매금융 등에 주력하는 소규모 특화은행으로 모바일과 데스크톱 플랫폼을 기반으로 '디지털 우선’을 추구한다. 레볼루트는 2016년 출범 당시 고객 10만명이었지만 앱이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평가 아래 2021년 1500만명으로 크게 늘었다. 영국 최초의 인터넷 전문은행으로서 한국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에게 큰 영향을 미친 아톰뱅크와 함께 챌린저 뱅크의 대표주자이다.   

고액의 성과급 지급에 대한 국민들의 따가운 질책을 감안, 은행 경영진 보수를 주주들이 감시하는 세이온페이(Say-On-Pay) 도입 여부를 살펴본다는 금융위 입장도 눈에 띈다.

세이온페이는 회사가 주주총회에서 경영진 보수 계획을 설명하고, 주주가 투표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1990년대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경영진의 과도한 보상을 막기 위해 영국에서 시작됐다. 임원진 보수에 대해 주주들의 의견이 공개적으로 제시된다는 특성을 갖는다. 국내에도 도입된다면 은행 경영진이 스스로 자신들의 보수나 성과급을 결정해온 관행을 제어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금융당국은 클로백(Claw-back) 제도도 강화할 방침이다. 클로백은 발톱으로 긁어 회수한다는 뜻이다. 임직원이 회사에 손실을 초래하거나 비윤리적인 행동으로 명예를 떨어뜨리면 이연 성과급을 줄이거나 취소하는 것이다. 이미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 규정에 '이연지급 예정 성과보수를 실현된 손실 규모를 반영, 재산정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금융사의 수익이 변동되면 성과급을 환수하거나 삭감하는 방식을 통해 클로백의 실효성을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향후 TF 회의 개최와 실무작업반 운영을 통해 ▲금융회사의 비금융업 영위 허용 ▲비이자이익 비중 제고 방안 ▲스트레스 완충자본 도입 ▲경기대응완충자본 적립 ▲사회공헌활동 강화를 위한 실적 공시 다양화 등을 검토한뒤 오는 6월까지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비록 민간기업이지만 공적인 역할이 요구되는 은행들이 미래를 위해 혁신과 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경쟁의 판도 자체를 바꾸는 작업이 필요한 시기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금융산업은 큰 변혁의 흐름 속에 놓여있다. 디지털화에 따른 비대면영업이 보편화되는데다 산업간 경계도 희미해지면서 전통적인 라이벌 구도도 바뀐지 오래다. 은행들이 전도가 유망한 비금융사업에 보다 많이 직·간접적으로 진출,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부수업무 범위를 넓혀주는 것은 물론 자회사 출자 규제도 대폭 완화될 필요가 적지 않다. 

중장기적으로 은행산업이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경쟁력 강화를 유도할 것인지를 깊이 있게 성찰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금융당국의 몫이다. 유연하고 합리적인 제도 개선을 통해 향후 은행산업이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나야만 해외 투자자의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관심도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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