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3.02 16:06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가운데, 이인실(왼쪽 첫 번째) 특허청장이 배석해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홈페이지 캡처)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가운데, 이인실(왼쪽 첫 번째) 특허청장이 배석해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홈페이지 캡처)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1970년대만 해도 ‘MADE IN USA' 태그가 붙은 상품은 한국인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1980년대 들어 ’MADE IN JAPAN'이란 꼬리표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선진국 수준에 다가선 1990년대 중반이후 고소득층들이 신분 과시를 겸해 독일 유명 브랜드 자동차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의류와 가방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매 붐이 생긴뒤 현재까지 그 열풍이 지속되고 있다.  

그간 강대국 브랜드의 '호구' 노릇을 했던 한국의 사정은 이제 바뀌었다. 방탄소년단 등 K-팝스타가 뜨고 화장품, 식품 등의 우수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2010년대 중반부터 제3국에서의 K-브랜드 위조상품이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K-브랜드 위조상품 유형 (자료제공=특허청)
K-브랜드 위조상품 유형 (자료제공=특허청)

위조상품 유형은 ▲정품의 상표 위조(상표권 침해) ▲정품 외관 모방(디자인권 침해 또는 부정경쟁행위) ▲정품 외관·포장의 캐릭터나 표지 모방 사용(저작권 침해 또는 부정경쟁행위) ▲매장간판에 KOREA 표시 또는 판매상품에 한국어 표기 등으로 이뤄진다는 것이 특허청의 분석이다. 특히 식품과 패션, 화장품에서 '가짜' 한국 상품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2019년 현재 해외에서 K-브랜드 위조상품으로 발생하는 국내 산업 피해는 ▲수출 등 매출 축소 22조원 ▲일자리 손실 3만1753개 ▲국가 세입 감소 4169억원에 달했다는 것이 지식재산연구원의 추정이다.

전세계 위조상품 무역규모는 2019년 현재 4640억달러로 같은 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4123억달러) 거래액을 훌쩍 능가했다. 자유무역이 확대되고 디지털경제로 전환되면서 ▲타인의 상표권이나 디자인권, 특허권을 침해하는 상품(counterfeit goods) ▲저작권을 침해하는 상품(pirated goods)을 거래하는 규모는 2000년보다 4.2배 증가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실물을 확인한뒤 구매하기보다는 휴대폰 등을 통해 마음에 드는 상품을 사는 행태가 확산되는 흐름 속에서 이를 노린 범죄행위가 더 늘어날 것은 뻔하다. 

2011년~2013년만 해도 한국은 전세계 위조상품 국제무역 10대 피해국에 끼지 못했다. 2017년~2019년에는 피해건수가 전체의 2%를 기록하면서 8위 국가에 들어갔다. 한류 인기가 확산되고 한국 기업의 기술경쟁력이 강화되면서 K-브랜드 가치가 높아진 것에 따른 부작용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해외 위조상품 예방에 절실한 국내기업의 해외상표 확보가 부진하다는 점이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대중국 수출액당 상표출원은 3.2건으로 미국(49.4건)이나 영국(36.7건)과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적었다. 이제라도 해외상표 등록에 주력해야 한다.

부동의 위조상품 피해 1위 국가인 미국은 중소기업에 지식재산권 절도, 위조상품, 사이버안보에 대한 대응컨설팅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민관협력을 통해 지재권센터, 관세국경보호청이 업종별 위조상품 단속에 나서고 있다.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 아래 위조·복제품 마켓 경보가 발령되는 등 민간 주도의 예방 활동도 활발하다. 국토안보부가 2020년 1월 연방정부와 업계의 대응조치를 망라한 '위조품 및 불법복제품 불법유통 방지 대책'을 발표할 정도로 타국의 위조상품으로 인한 자국 산업의 피해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정부 주도의 피해구제에 중심을 두는데 그쳤다는 것이 특허청의 자평이다. 온라인 위조상품 모니터링 및 단속지역도 중국, 동남아시아 등 8개 국가의 19개 전자상거래플랫폼에 국한됐다. 이러다보니 유럽이나 중동지역 등에서 발생하는 위조상품에 속수무책인 실정이다. 

이뿐만 아니다. 외국인이 해외에서 국내 기업 브랜드와 같거나 유사한 상표권을 무단으로 선점,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을 방해하거나 위조상품을 내놓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도 국내외 지식재산 보호를 위해 설립된 공공기관인 한국지식재산보호원의 지원은 뒷걸음을 치고 있다. 해외 상표 무단선점 정보 제공 실적은 2021년 4977건에서 2022년에는 4654건으로 줄었고 분쟁대응 전략 컨설팅도 같은 기간 122건에서 93건으로 감소했다. 

이같은 상황을 감안, 특허청은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된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해외 위조상품 위험 10대 업종과 10개 국가를 대상으로 매년 1회 위험경보를 발령, 기업의 자율적인 피해 예방을 유도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K-브랜드 위조상품 대응 강화방안'을 보고했다. 지식재산보호원 '공익변리사 특허상담센터'의 변리사와 변호사 15명을 활용, 위조상품 위험기업에 맞춤형 법률자문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표제공=특허청)
(표제공=특허청)

해외 수출국가에서 지재권을 확보하고 있어야만 위조상품이 출현했을 경우 법률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올해 농식품 수출상품화, 수산식품 수출유망 상품화, 소상공인 온라인 판로지원에도 해외상표 출원을 돕겠다는 조치는  효과가 기대된다.

위조상품 모니터링을 올해부터 미국·유럽·중남미 등 최대 114개 국가, 최대 1604개의 온라인플랫폼까지 전면 확대하기 위해 그간 자체 모니터링단 운영에 그쳤던 지식재산보호원은 민간 전문업체를 활용하기로 했다. 소기의 성과를 거두어야 할 것이다. 소셜미디어플랫폼도 뒤지겠다는 조치 역시 뒤늦었지만 필요하다. 소규모 수출기업이나 수출예정기업을 대상으로 해외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위조상품 유통피해 진단서비스를 새로 제공한다는 방안도 해당 기업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주요 국가들은 위조상품을 자국 경제 발전과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 중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정부 주도로 방지대책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부가 혁신기업의 수출을 늘리고 수출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해외 진출 기업의 위조상품 예방 지원을 강화하고 피해기업에 대한 지원을 고도화하기로 결정한 것은 의미가 적지 않다.

해외 위조상품 피해를 줄이려면 해외세관의 단속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글로벌 기업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현재까지 우리 기업들은 해외 세관을 활용한 위조상품 국경조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세계무역기구 TRIPs 협정에 따라 지재권 침해물품의 국제거래 금지를 위해 기업들이 지재권을 현지 세관에 등록하면 해당 세관은 해당 지재권 침해물품을 단속하게 된다. 국내 기업들이 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들도 나서야 한다. 온라인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상표법 개정안이 2020년 7월~9월 발의되었지만 산자중기위에 여전히 계류 중이다. 상표권자가 위조상품을 발견, 신고하면 온라인플랫폼은 해당 상품 판매를 중단해야만 하고 온라인플랫폼이 상표권자의 위조상품 판매자 정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산업재산권분쟁조정의원회에서 심의 후 정보제공을 명령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도 입법화가 지연되고 있다.

정부의 위조상품 대응 추진 체계 (그림제공=특허청)
정부의 위조상품 대응 추진 체계 (그림제공=특허청)

기업의 지식재산권은 피땀을 흘려 획득한 권리이다. 수출경쟁력의 근간이자 미래성장의 발판이다. 특허청이 K-브랜드 분쟁대응을 총괄하고 외교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산업통상자원부, 관세청 등이  대응체계를 유지한다는 방향은 맞다. 정부는 관련 단체, 협회와의 유기적인 공조 속에 '원팀'으로 K-브랜드의 값어치를 높이고 국가 이익을 지키는데 한치의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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