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3.07 11:40
이정식(왼쪽 두 번째)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 참석, 추경호(세 번째) 부총리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기획재정부)
이정식(왼쪽 두 번째)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 참석, 추경호(세 번째) 부총리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기획재정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윤석열 정부에서 노동개혁 1호 법안이 6일 추경호 부총리가 주재하는 비상경장관회의에서 보고됐다. 현재는 기본 40시간과 연장 12시간을 합쳐 주당 52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다. 정부는 일감이 몰리는 특정 주에 연장근로를 집중적으로 실시, 최대 69시간까지 몰아서 근무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 개정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특정 주에 일을 많이 했다면 다른 주에는 그만큼 적게 일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1953년은 공장에서 일한 시간만큼 생산물이 나오는 시대였다. 지금도 제조업이 산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지만 비제조업의 경우 근로형태와 방식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1주 단위' 근로시간제는 4차 산업혁명 특성과는 맞지 않는 데다 세계적 추세와도 거리가 멀다. 70년 만에 연장근로 단위기간을 1개월, 3개월, 6개월, 1년으로 푼 것은 시대변화에 뒤늦게나마 대응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업장에서 근로시간을 개편하려면 ▲근로자 과반 또는 근로자 과반으로 이뤄진 노조(근로자 대표)의 동의 ▲과반 노조가 없는 경우 노사협의회와의 합의 ▲노사협의회가 없다면 투표로 선출된 근로자 대표와의 합의 등이 필요하다. 사업주가 멋대로 연장근로를 시킬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는 과로를 막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2018년 주 52시간제를 도입했지만 취지와는 달리 획일적이고 경직적으로 운영되면서 부작용을 양산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노동시간 축소로 시간외수당을 받지 못해 실질임금이 줄어든 중소기업 근로자 중 상당수는 생계비를 보충하기 위해 퇴근 이후 아르바이트 전선으로 내몰렸다. 덩달아 중소기업의 경영난도 심화됐다. 

(그림=고용노동부 페이스북 캡처)
(그림=고용노동부 페이스북 캡처)

주 단위 연장근로로 인해  기업들은 일감 증가와 감소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 제도가 개선되면 이런 문제가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 안이 실행된다면 연장·야간·휴일 근로시간을 모아 휴가처럼 쓸 수 있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가 생긴다. 근로자가 출퇴근 시간과 근로일을 정할 수 있는 '선택 근로제' 적용 기간도 모든 업종은 3개월(기존 1개월)로, 연구개발(R&D) 업무는 6개월(기존 3개월)로 확대되면서 주 4일제도 가능해진다.  유럽처럼 장기간 휴가를 쓸 수 있게 된다. 집중적으로 일한뒤 지방에서 한 달 살기 등을 통해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는 젊은 직장인들의 수요가 충족될 수 있다.  경총 등 사용자 단체는 업무효율이 높아질 것이라며 정부 방안에 환영 의사를 밝혔다.

정부는 입법예고를 거쳐 오는 6~7월 중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벌써부터 개정 법률이 시행되면 임금이 낮고 고용도 불안정한 영세사업장에서 근로자 과로를 막기 위한 견제장치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무엇보다 정부안에 대한 노동계의 비판 수위가 매우 높아 입법작업 난항이 예상된다. 민주노총은 6일 논평을 통해 “정부의 안을 적용해 '1주 최대 64시간' 옵션을 선택하면 아예 연속휴식을 부여하지 않아도 되기에 1개월 단위로 환산해 특정 주에 몰아서 적용을 하면 월~금 내내 09시 출근 24시 퇴근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민노총은 이어 "근로시간 제도 개편에는 노동자의 건강과 휴식은 없고 오직 사업주의 이익만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극단적인 사례라고 치부하기 앞서 제도가 이같이 악용될 수 있는 여지를 미리 막는 것이 요구된다. 

야당은 개정안 반대 의사를 공식 천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이수진 원내대변인 논평을 통해 "근로자대표제도를 완화해 직종, 직군별 근로자대표가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정부 방침은 노조조직률이 14.2%에 불과한 상황을 악용해 직종, 직군별 근로자대표를 통해 손쉽게 저임금 장시간 노동 착취를 하겠다는 술수에 불과하다"며 "일방적인 장시간 노동시간을 위한 법 개정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의당도 이날 브리핑을 통해 "과로사 조장 정책이라 할 만큼 건강권, 노동권에 치명적인 노동개악"이라며 "정의당은 국민을, 노동자를 기업의 소모품 정도로만 여기는 노동개악을 강력히 규탄하며 정부의 정책철회를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림=고용노동부 페이스북 캡처)
(그림=고용노동부 페이스북 캡처)

두 야당이 반대하면 연내 법률 개정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내년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원내 1당이 되기만을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다. 일하는 방식이 디지털 혁명과 정보기술의 발달 등에 유연하게 바뀌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의 미래는 어두워질 뿐이다. 노사가 자율적인 선택으로 근로와 휴식의 적절한 병행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하고 이로 인해 상호 수익을 늘리는 선순환 모델을 서둘러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용노동부는 근로자 건강권과 복지 확보 방안을 보다 챙기고 강화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연장근로 단위 기간 개편시 3중 안전장치를 둔다는 방침의 실효성을 높여야할 것이다. 만약 미진한 점이 있다면 당연히 보완해야함은 물론이다. 노동계의 주장 중에서 합리성이 있는 내용은 과감히 받아들여 입법의 정당성을 보강하는 것도 필요하다. 

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이제라도 국가이익을 챙겨야 할 때다. 산업경쟁력 강화와 국제적인 노동제도 변혁 흐름에 맞춰 대승적인 차원에서 협력하면서 전체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는 노력에 나서야할 것이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