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3.08 16:34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LNG운반선. (사진제공=삼성중공업)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LNG운반선. (사진제공=삼성중공업)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조선업계는 과거 출혈경쟁 끝에 저가로 수주한 선박을 건조하면서 매년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2015년부터 8년째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대우조선해양의 작년 순손실은 1조7448억원에 달했다.

이에 비해 수주는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해 수주실적은 1559만CGT로 재작년(1764만CGT)보다 다소 줄었지만 2020년(827만CGT)의 2배 수준이다. 작년에 이어 지난 2월에도 전세계 선박 수주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수출 효자 산업으로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 대우조선은 지난 2년간 수주 목표 달성으로 현재 3.5년치 물량을 이미 확보한 상태다. 대우조선의 수주잔량 113척 중 62척이 LNG운반선으로 향후 높은 수익이 기대된다.

선박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는 점이 희망적이다. 2019년 2월 130.56이던 클락슨 신조선가지수(New building Price Index)는 지난 2월 163.69으로 치솟았다. 지난해 2월만 해도 LNG 운반선의 평균 가격은 2억1800만달러(2833억원)이었지만 이제는 평균 2억5000만달러를 받는다. 고부가·친환경 선박 중심으로 일감을 따내면서 호황 수준의 수주가 지속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우조선해양이 개발한 용접 협동로봇을 작업자가 조작하고 있다. (사진제공=대우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이 개발한 용접 협동로봇을 작업자가 조작하고 있다. (사진제공=대우조선해양)

이처럼 수주 실적은 하늘을 날고 있지만 업계 현실은 바닥을 기고 있다. 선박은 대체로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 절단, 탑재, 진수, 인도의 5단계로 건조된다. 통상 인도 단계에 대금의 60~80%를 지급받는다. 2021년 수주했다면 2022년 설계를 거쳐 올해와 내년 건조한뒤 2025년에야 선주에 넘기면서 대금의 대부분을 받게 된다. 이런 헤비 테일(Heavy Tail) 계약 방식으로 7대 원청사들은 앞으로도 2~3년간 경영난이 여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기성금을 큰 폭으로 올려주기 힘들어 원·하청 기업 간의 임금 및 복지 격차는 좀처럼 줄어들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의 도크는 건조 중인 선박들로 가득 차 있지만 협력업체는 빈 자리가 수두룩하다. 임금은 낮은데 비해 작업 위험도는 높다보니 만성적인 인력부족 사태가 장기화된 상태다. 조선업은 고숙련 근로자가 현장에서 일해야만 작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 신규 인력 유입이 끊기다시피 하면서 지난해 하반기 미충원율은 34%로 전체 산업(15.4%)의 두배에 달했다. 기존 숙련인력의 이탈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이직률은 3.4%로 주조, 금형 등 뿌리산업(3.0%)보다 높았다.

(그림제공=고용노동부)
(그림제공=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가 8일 추경호 부총리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원하청의 임금·복지 격차 완화 ▲숙련인력 양성 지원 ▲협력업체 채용 활성화 지원 ▲안전한 작업장 구축 지원을 골자로 하는 '조선업 상생 패키지 지원사원 추진계획'을 보고한 것은 조선업의 경쟁력을 지키고 일자리 창출 여력을 키우기 위한 비상대책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 당장 반길 정책은 조선업 전용 외국인력 쿼터를 2년간에 한해 '5000명+α'로 신설한다는 것이다. 상반기에 열리는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작년에 조선업 고용허가제 외국인력(E-9) 입국자는 2667명이었고 올해는 도입규모 확대와 조선업 우선 배정으로 5000명 내외로 예상된다.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원·하청사 협업으로 3~4주간 직업훈련을 실시한뒤 사업장에 투입할 방침이다. 같은 사업장에서 일정기간 이상 근무한 숙련 외국인에게 출국후 재입국 과정 없이 국내 계속 머물면서 일할 수 있도록 '장기근속 특례'도 신설한다. 올 상반기에 이런 내용을 담은 외국인고용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전경. (사진제공=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전경. (사진제공=현대중공업)

무엇보다 협력업체 근로자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 지원을 늘리는 방안이 주목을 끈다. 지난해 협력업체 신규입직자를 대상으로 시범운영한 '조선업 희망공제' 사업에서 45세 이하라는 연령 요건을 폐지하고 지원대상지역에 전남, 부산, 군산을 추가한다. 1년 만기로 근로자가 150만원을 내면 지방자치단체가 150만원, 정부가 300만원을 내서 총 600만원을 모을 수 있도록 돕는다. 올해 목표인원은 작년보다 825명 늘어난 2000명이다.

조선업 희망공제 지원 대상자를 올해와 내년까지 한시적으로 신규입직자에서 재직근로자까지 확대한다는 것도 눈에 띈다. 근로자와 원청기업, 지방자치단체, 정부 등 4자가 납입기간 2년 중 각각 200만원을 낸다. 근로자는 200만원을 부담하고 2년 만기후 총 800만원을 손에 쥐게 된다. 연간 300만원의 보조금을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청 근로자가 최소 2년은 근무하도록 유도하는 당근책이다.

나이가 많더라도 조선 하청업체에서 2년간 일하면 월급 외에 매년 750만원의 별도 수입을 올리게 된다. 월로 환산하면 62만5000원이 된다.   

희망공제 적용 대상 확대로 하청업체는 잦은 이·전직에 따른 인력 운영의 어려움이 줄어들 수 있다. 고용부는 2026년부터는 조선 원청사의 경영실적이 호전되면 기성금의 대폭 인상도 가능할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리 되면 희망공제 지원금 혜택이 사라지더라도 실질 임금 수준은 유지된다. 

협력업체에서 만 35~49세 근로자를 새로 뽑고 최저임금의 120% 이상을 지급한 경우 월 100만원의 채용장려금을 최대 12개월 주는 '조선업 일자리도약장려금'을 신설한다. 협력업체의 채용을 도우면서 근로자의 임금 상승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생산직 정년퇴직자의 재취업 지원을 위해 협력업체에겐 채용장려금으로, 근로자에겐 숙련기술전수수당이란 이름으로 각 월 50만원을 6개월간 지급하는 '숙련퇴직자 재취업지원금' 신설도 구인난 해소에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하청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복지사업의 주요 재원인 '사내협력사 공동근로복지기금'도 확대한다. 올해부터 2025년까지 원청의 출연에 따른 정부의 매칭 지원 한도를 매년 10억원에서 20억원으로 늘린다. 3년으로 제한됐던 지자체의 출연금 지원 기간도 풀어 내후년까지는 매년 6억원까지 매칭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복지기금의 규모는 향후 3년간 매년 최대 170억원씩 추가 확대될 수 있다. 지난해 기준 193억원에서 2배까지 늘어나게 되면 기금 수혜자와 규모가 늘어난다. 근로의욕 제고에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로의 훈련생 참여 촉진을 위해 훈련수당을 2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올린다. 올해 1만5000명을 교육시킬 방침이다. 조선업 상생협약 체결기업의 협력사 중 50인이상 중소기업으로서 평균매출액이 1000억원 이하라면 스마트안전장비 구입비용을 최대 3000만원까지 주고 유해위험요인 시설개선비로 3000만원 지급하는 것도 효과가 기대된다.

조선 5사 원·하청 대표 각 5명과 이정식(앞줄 왼쪽 네 번째)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 2월 27일 현대중공업에서 조선업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상생 협약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HD현대) 
조선 5사 원·하청 대표 각 5명과 이정식(앞줄 왼쪽 네 번째)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 2월 27일 현대중공업에서 조선업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상생 협약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HD현대) 

고용부는 이번 지원사업으로 내후년까지 하청근로자의 실질임금이 10% 가량 인상되는 효과가 발생된다고 밝혔다. 이정식 장관은 "조선업계가 맺은 상생협약을 성실히 이행하는 것을 전제로 지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상협의체를 통해 이행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한뒤 그 결과에 따라 지원내용과 규모 등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마당에 이같은 조건을 붙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조선업계는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만큼 생산성 향상과 기술개발, 노사협력을 통해 수주한 선박을 차질없이 완벽한 품질로 제작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원청기업은 길고 긴 불황기를 견디어 낸 하청근로자들의 노고에 보답, 지급여력 범위내에서 최대한 기성금을 올려 이 재원이 임금 인상으로 돌아가도록 배려할 필요가 크다. 인력 양성 확대와 협력업체 고용 지원, 안전기반 구축을 통해 원청기업과 협력기업이 동반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K-조선'이 지속가능한 성장의 토대를 굳건히 마련, 세계 1등 조선국가로서의 명예 유지는 물론 실속 극대화까지 챙기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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