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3.31 17:03
​2018년 10월 반달가슴곰이 강원도 동부 비무장지대(DMZ) 내 무인생태조사 장비에 찍혔다. (사진제공=국립생태원)
​2018년 10월 반달가슴곰이 강원도 동부 비무장지대(DMZ) 내 무인생태조사 장비에 찍혔다. (사진제공=국립생태원)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한국의 비무장지대(DMZ:demilitarized zone)는 내국인은 물론 방한 외국인이 가장 가고 싶은 곳이다. 휴전협정에 따라 설정된 DMZ는 국제연합군과 북한군·중국군의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구분한뒤 이 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씩, 4㎞의 폭을 갖는 비무장지역을 일컫는다. 동서 길이는 248㎞에 이른다. 상호 충돌을 막기 위한 완충지대로 기능하도록 민간행사와 구제사업을 제외하고는 적대행위를 할 수 없는 곳이다. 이같은 원칙과는 달리 남·북한은 감시초소(GP) 등을 두고 상호 경계작전을 펼치고 있다. 이로 인해 인원 출입이 최소화되면서 희귀동물들의 주요 서식지로 자리잡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통일부, 국방부, 행정안전부, 환경부는 DMZ를 세계적인 평화·생태체험 관광명소로 키우기 위해  공동업무협약을 맺고 'DMZ 평화의 길'을 조성했고 2019년과 2021년에 시범 개방한 바 있다.

(그림=평화의길 누리집 캡처)
(그림=평화의길 누리집 캡처)

문광부는 'DMZ 평화의 길 테마노선' 11개 코스가 오는 4월 21일부터 전면 개방된다고 31일 밝혔다. DMZ 접경지역 인근의 자연환경과 역사자원을 눈과 귀, 손과 발로 확인하는 기회가 마련된 셈이다. 코로나19사태가 사실상 종식된 마당에 군사규제로 침체된 접경지역 관광을 살리기 위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참가비로 1만원을 받지만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특산품 등으로 환급할 예정이어서 공짜나 마찬가지다. 마을 주민 등으로 구성된 해설사나 안내요원을 통해 매력적인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만7세 이상은 참가가 가능하다. 초등학생을 동반한 가족여행지로는 최적지로 여겨진다. DMZ를 출입할 때 5㎏ 남직한 방탄장비를 착용하는 이색 경험도 매력적이다.

2023년 테마노선 운영 코스. (표제공=문광부)
2023년 테마노선 운영 코스. (표제공=문광부)

올해 내국인의 국내 관광활성화를 유도하고 방한 외국인 목표 달성도 위한 프로그램으로 분석되지만 실제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11개 코스의 참가 인원이 너무 적은데다 실제 운영기간도 짧기 때문이다. 1회 방문인원은 20명이고 하루 방문인원도 20~40명에 그친다. 그나마 여름철 혹서기와 장마기간(7~8월)중에는 운영이 중단된다. 7개 코스는 10월 31일로 개방이 끝나고 3개 코스는 11월 30일, 인제 코스는 12월 3일 운영이 종료된다. 겨울이 일찍 오는 지역 특성을 감안한 것이겠지만 11월부터 대부분의 코스 운영을 중단한다는 계획은 도무지 납득하기 힘들다.

사실상 봄과 초여름, 가을철에만 개방되는 셈이다. 정부는 참가자의 안전을 위한다는 이유를 제시하지만 생색만 내고 만약의 안전사고 등에 따른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행정편의주의, 보신적 발상에 따른 결정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트레킹을 즐기는 국민들에게 1~4.4㎞에 그치는 도보 구간 길이는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파주코스에서 DMZ 생태탐방로는 임진각 통문에서 통일대교, 초평도, 임진나루를 거쳐 율곡 습지공원까지 이어지는 9.1㎞ 구간의 도보 탐방길이다. 정작 평화의 길 투어에서는 임진각 시작점에서 통일대교까지 1.4㎞만 걷는다. 다른 구간으로 이동하기 위한 불가피한 코스 조정으로 해석되지만 "민통선 철책길을 따라 걸으면서 자유, 안보, 평화의 소중함을 체험하도록 한다"는 정부 발표와는 거리가 멀다.

참가 희망자들은 31일부터 '평화의길' 누리집과 걷기여행 모바일 앱 '두루누비'를 통해 온라인으로 방문 희망일 21일 이전에 신청해야 한다. 민간인이 들어가지 못하는 지역인 만큼 방역, 안보, 안전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방문객의 참가를 제한하는 것은 당연하다. 희망일로부터 14일 전 추첨을 거쳐 대상자를 뽑는다. 경쟁률은 매우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한 추첨을 통해 방문자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포 시암리철책길 (사진=평화의길 누리집 캡처)
김포 시암리철책길 (사진=평화의길 누리집 캡처)

행운의 참석자들은 방문일 10일 전 참가비를 입금하고 7일 전 참가가 확정된다. 군 부대에 참가자 명단이 제출되면 희망일 1일 전 최종 안내문자가 발송된다. 안보 및 기상상황 등에 따라 여행이 취소되거나 대체 일정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10개 접경 지자체의 11개 코스는 걸어가는 구간과 차량으로 이동하는 구간으로 이뤄진다.

의두돈대 (사진=평화의길 누리집 캡처)
의두돈대 (사진=평화의길 누리집 캡처)

강화코스에선 옛 군사시설인 돈대가 아직도 국방과 평화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의두돈대에서 시작하는 해안 철책로를 따라 걷다가 실향민이 생계를 이어갔던 대룡시장을 방문한다. 애기봉평화생태공원 전망대에 오르면 한강에서 임진강, 예성강 등이 합류하는 조강(祖江)의 풍경과 북한 마을의 생활 모습도 볼 수 있다. 한강 하구는 한반도 중부 내륙의 모든 물길을 담아내는 '할아버지 강'으로 불려온 곳이다.

고양 장합 습지 탐조대 (사진=평화의길 누리집 캡처)
고양 장합 습지 탐조대 (사진=평화의길 누리집 캡처)

군 철책선이 세워진뒤 사람의 발길을 닿지 않아 경기지역 내륙 습지 중에서 최초로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수도권 최대의 장항 습지를 보려면 고양 코스에 도전해보자. 장항습지 탐조대의 1층에는 전시‧교육 시설이 있다.  2층은 탐조공간이다. 장항습지를 공부하고 직접 탐조하며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민간인 통제구역인 시암리철책길 끄트머리에는 한강 하구 습지의 일부인 시암리 습지가 있다. 천연기념물 재두루미 등 멸종 위기종이 찾는 곳이다.

통문 (사진=평회의길 누리집 캡처)
통문 (사진=평회의길 누리집 캡처)

파주 코스를 선택하면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명소로 자리매김하려는 DMZ 평화의 길을 체험할 수 있다. GP(Guard Post:경계초소) 출입문인 통문을 열고 들어가 비무장지대에서 도보탐방에 나선다. 구 장단면사무소와 장단역 죽음의 다리 등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남한 최전방의 관측소인 비룡전망대를 가려면 연천코스를 가야 한다. 연천은 경기도 최북단 지역이다. 황해도 장단군과 금천군, 강원도 철원군과 맞닿아 있어 6.25 전쟁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비룡전망대는 평소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곳으로 육군 제25보병사단에 의해 관리된다. 비룡전망대에서 남방한계선 철책이 보인다. 우리 측 GP도 눈에 띈다. 

철원은 화산암 분출로 형성된 용암대지 철원평야와 그 사이를 깊이 파고든 한탄강이 흐르는 곳이다. 소련식 건축양식의 노동당사, 백마고지 전적비, 유해발굴 지역을 다니면서 아픈 역사를 확인하려면 철원코스가 제격이다.

철원 비상주GP (사진=평화의길 누리집 캡처)
철원 비상주GP (사진=평화의길 누리집 캡처)

많은 호수와 물줄기가 봉우리와 만나 절경을 자아내는 화천은 중동부 전선 최전방 지역이다. 화천 코스를 방문하면 북한의 수공 위협에 국민 모금운동으로 건설된 평화의 댐을 보고 가곡 '비목'의 배경이 된 백암산을 케이블카로 오르게 된다. 버스로 세 번째 통문에 도착하면 휴대폰과 신분증을 맡기고 비무장지대에 들어선다. 국군 전사자 200여구와 유엔군 전사자 300여구 유해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해발 281m 화살머리 고지를 방문한다. 작전상황이 발생하면 군병력이 출동하는 비상주GP까지 돌아보게 된다. 앞쪽으로는 북한군의 GP가 3곳이나 있다. 오른쪽의 502GP까지 2.3㎞, 가장 가까운 558GP까지는 1.9㎞에 불과하다. 남북이 대치 중인 최전방지역의 긴장감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두타연 (사진=평화의길 누리집 캡처)
두타연 (사진=평화의길 누리집 캡처)

한반도의 정중앙에 있는 양구는 태조 이성계, 겸재 정선 등 금강산 여행객들의 필수 코스였다. 한국전쟁 당시 '피의 능선 고지'등 수많은 전투가 있었다. 양구코스에 도전하면 남북한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어우러지며 만들어 낸 걸작인 두타연을 만날 수 있다. 거친 물줄기의 모습과 함께 폭포, 그 밑에 넓게 형성된 웅덩이,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자갈과 함께 소용돌이치며 만들어 낸 포트홀 등을 갖춘 곳으로 유명하다. 거세게 몰아치는 하천이 깎아놓은 기암절벽도 명물이다.

양의대 습지 (사진=평화의길 누리집 캡처)
양의대 습지 (사진=평화의길 누리집 캡처)

북한에서 임남댐을, 남한에서 평화의 댐을 건설하면서 생긴 양의대 습지와 내금강으로 향하는 통로인 금강산 가는 길도 들른다. 화천 7사단과 양구 21사단을 잇는 최북단 다리인 오작교도 방문한다. 

인제 1052 고지(사진=평화의길 누리집 캡처)
인제 1052 고지(사진=평화의길 누리집 캡처)

 인제코스가 당첨되면 평화의 길 인제 구간의 탐방이 시작된다. DMZ 자연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인제의 1052고지를 들른다. 12보병사단이 현재 사용 중인 GOP가 있는 곳이다. 을지 삼거리 도보 투어를 통해 철책 너머로 펼쳐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고성코스 (그림=평화의길 누리집 캡처)
고성코스 (그림=평화의길 누리집 캡처)

고성 코스는 도보구간이 있는 A코스와 없는 B코스로 운영된다. 11개 테마코스 중에서 파도 소리를 생생히 들으면서 걸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평화의 길 고성 구간은 해안 쪽으로 나 있는 철책을 통과하면서 본격화된다. 철책으로 들어서면 바다로 향하는 계단이 있고, 계단 아래는 해안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도착하면 2.7㎞ 도보구간이 시작된다. 걷는 길 오른편으로 두 겹의 철책 사이로 넘실대는 파도가 보인다.

고성 해안전망대 (사진=평화의길 누리집 캡처)
고성 해안전망대 (사진=평화의길 누리집 캡처)

대한민국 최북단에 있는 금강통문을 거쳐 금강산전망대에 도착한다. 고성통일전망대보다 2㎞나 더 북쪽에 있어 금강산 주봉 능선을 육안으로도 또렷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1953년 이후 1983년까지 DMZ 안쪽 최전방 GP로 활용됐었다. 남방한계선에서 약 800m 떨어져 있고 군사분계선과는 1.2㎞ 거리에 있다. 금강산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해금강과 금강산 풍경은 여행객에게 충분한 보상을 제공한다.

금강산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산 풍경 (사진=평화의길 누리집 캡처)
금강산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산 풍경 (사진=평화의길 누리집 캡처)

다만 정부가 이날 밝힌 계획대로 DMZ 테마노선을 개방한다면 전시성 행사를 하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드러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루 20~40명의 방문으로 지역경제가 회복될 수 있겠나. 그야말로 '립서비스'일 뿐이다. 방문인원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운영요일도 대폭 확충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해당 지자체부터 주둔 군부대와 보다 밀접하게 협의하고 협력해야할 것이다. 공무원이 땀을 흘려야만 주민의 입가에는 웃음꽃이 필 수 있다. 

참가비를 더 내더라도 천혜의 생태계를 체험하고 싶은 내·외국인들은 넘치고 넘친다. 해외 유명 인사가 DMZ 평화의 길 여행에 참여할수록 북한의 접경지역 도발은 억제될 수밖에 없다. 수요에 맞춰 공급을 늘려 'K-관광'의 진가를 보여줄 때다.

한국과 같은 DMZ를 갖고 있는 국가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철저한 신원조회로 위험한 사람은 미리 걸러내고 여행 기간 중 지원인력이 충분히 뒷받침된다면 대상 인원 확대는 어려운 과제가 결코 아니다. 이를 위해 국방부의 '결단'도 요구된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