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지혜 기자
  • 입력 2023.04.29 06:00

[뉴스웍스가 만난 사람] '질투' 중국 방영 시작으로 '한류' 등장…한류 3.0 시대 맞아 본격 확장

정길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 (사진제공=코피스)
정길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 (사진제공=코피스)

[뉴스웍스=고지혜 기자] 지구 반대편에서 K-팝이나 한국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것은 이젠 놀랄 일이 아니다. 전 세계 K-콘텐츠 팬은 1억명을 넘어섰다. 문화예술저작권 무역수지는 지난해 7억5000만달러(약 2조원)로, 2010년 이후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K-콘텐츠는 여러 산업과 함께 연계되는 산업이기 때문에 중요성은 날로 증대하고 있다.

정길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은 1984년 MBC에 PD로 입사해 인간시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PD수첩 등을 연출했고, 홍보심의국장, 기획조정실 정책협력부장, 중남미지사장 겸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이후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2021년 4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에 취임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코피스)은 국제문화교류와 한류 활성화를 주관하는 기관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공직유관단체다. 2003년 아시아문화산업교류재단으로 출범했으며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전 세계 시장에서 K-콘텐츠는 어떻게 발전했는가.

"한류는 '한국의 대중문화 및 문화 콘텐츠가 해외로 전파되어 인기리에 소비(수용)되는 현상'이라고 정의된다. '한류'라는 단어는 중국의 매체에서 사실상 처음 등장했다. 1993년 '질투', 1997년 '사랑이 뭐길래' 등의 한국 드라마가 중국에서 방송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클론의 베이징 공연이 히트하자, 1999년 11월 '베이징칭니엔바오'에서 '한류(韓流)'라는 표기가 공인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를 한류 1.0 시대라고 부른다. 이어 2003년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흥행하고, '대장금'이 2005년 대만, 홍콩, 중국, 일본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이 계보는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등으로 이어진다. 한류는 1.0, 2.0, 3.0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1.0은 드라마, 2.0은 K-팝, 3.0은 뷰티·푸드·게임·웹툰·뮤지컬 등으로 발전한다.  

한류 3.0 이후 동북아, 동남아, 중동, 유럽, 미주 등 세계인들이 한국에서 만든 드라마를 보고 몰입하며 대리만족하게 됐다. 그리고 영상에 나오는 한국 제품을 소비하면서 한국 음식을 찾고,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 관광을 꿈꾸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산업군들이 동반 성장하게 되면서 K-콘텐츠, K-문화로 확장됐다."

-코로나19 확산이 K-콘텐츠에 어떻게 작용했나.

"2020년부터 코비드 팬데믹이 시작됐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집콕'이 일상화됐다. 그런데 집콕은 K-콘텐츠에 오히려 기회가 됐다. 집에서 드라마를 보고 K-팝의 뮤직비디오를 소비하게 됐다.

더불어 주목해야 하는 것은 게임산업이 흥한 것이다. 2019년경 WHO(세계보건기구)에서는 게임 장애를 질병으로 권고하는 등 중독 증세를 우려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닥치자 게임이 정신적 안정에 좋다는 평가가 나왔다. 집 안에서 게임을 하고 온라인으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도움이 된 것이다. 게임은 한류 콘텐츠 산업 총매출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이외에도 코비드 기간 동안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활용한 드라마·영화가 성장했고, 웹툰이 더욱 활성화됐다. 

지금은 마스크를 벗고 대화를 나눌 정도로 코로나에서 벗어나고 있는데 코비드 기간 동안에 형성됐던 한류 콘텐츠의 경쟁력이 어디로 가겠는가. K-콘텐츠의 연결성과 확장성은 더 강화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이제부터 잘해야 한다.“

정길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이 인터뷰에서 대답하고 있다. (사진제공=코피스)
정길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이 인터뷰에서 대답하고 있다. (사진제공=코피스)

-경제적 관점에서 K-콘텐츠의 파급 효과가 궁금하다.

"일단 콘텐츠 산업 자체의 효과가 있다. 세계 콘텐츠 산업 규모를 보면 우리나라가 7위권에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력 규모가 GDP 기준으로 10위권이라고 할 때,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이 전체를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 

수출 연관 효과도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김윤지 박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콘텐츠 수출이 100달러가 되면 소비재 수출은 400달러로 4배가 늘어났다. 이것이 최근에는 1.8배로 나타났다고 한다. 언뜻 보면 수출액이 줄어든 게 아닐까 싶지만, 콘텐츠 수출이 비약적으로 늘어 분모가 커진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대체로 공산품 주도의 수출 드라이브 국가다. 그런데 지난해 집계된 콘텐츠 산업 수출액은 124억5000만달러다. 가전이나 이차전지 86억7000만달러, 전기차가 69억9000만달러다. 이제 콘텐츠가 대표 수출산업으로 한국의 먹거리가 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콘텐츠로 벌어들인 수입은 17억2000만달러로, 12억3500만달러의 흑자가 났다. 역대 최고치다. 

이와 함께 국가브랜드 제고, 소프트파워 제고, 관광 유발 등의 여러 파생 효과가 생긴다. 최근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OED)에 한류, 김치 등 한국어 단어가 표제어로 실리는 등 한류의 효과와 위력을 여러 경로로 확인할 수 있다."

-향후 어떤 방향으로 K-콘텐츠가 나아가야 하나.

"미국 영화 중에 '레인맨'이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에서 형과 동생이 속옷을 사러 K마트에 갔는데 자폐증상이 있는 형 역을 맡았던 더스틴 호프만이 "K마트는 지겨워(Kmart sucks)"라고 농담하는 장면이 있다. 

실제로 미국에는 60년 역사의 대단위 양판점 K마트가 있다. '레인맨'은 1988년에 개봉된 영화다. 그 당시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올 정도로 K마트는 아주 잘 나갔다. 그러나 이후 월마트라든지 아마존 등의 공세에 밀려 지난해에는 몇천 개의 점포에서 3곳밖에 남지 않았다. 60여 년 만에 저물어 가는 기업이 된 것이다.

당연히 K마트의 'K'가 K-콘텐츠의 'K'는 아니지만 여기서 교훈을 얻을 수는 있다. 한류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창의성을 가지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대중과 호흡해야 한다. 지겨움을 주면 안 된다. 부단한 혁신과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또 생태계의 건강성을 유지해야 한다. 정부는 한류 활성화를 위해 융자지원 사업, 방송 포맷 지원사업, 스튜디오 시설과 같은 인프라 구축 등 여러 가지를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제작 지원을 잘해서, 우리 콘텐츠를 해외에서 많이 소비하고 수용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와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한류는 기본적으로 민간에서 주도하는 콘텐츠산업이지만 민간이 안 하고, 못하는 공간이 있다. 그런 공간을 우리가 메꿔준다고 할 수 있다. 

가령 지금 진행하고 있는 '동반성장 디딤돌' 사업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주로 아세안 국가에서 신인급 아티스트를 한국으로 초청해 4~5개월간 연수를 받고 자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전액 진흥원 예산으로 진행된다. 이는 문화교류의 판을 깔아주는 사업으로 한류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래서 코피스는 한류의 일방주의, 상업주의로 인한 그늘과 공백이 있을 때, 다리를 엮어주며 국제문화교류의 장을 확대하는 역할을 계속해서 나가고 있다. 좋은 한류는 쌍방 교류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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