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5.08 16:15

2년 이상 실증특례 중 13%만 임시허가 받아…책임보험 지급 사례 '전무'

글로벌 혁신 특구 조성방안. (인포그래픽=중기부 페이스북 캡처)  
글로벌 혁신 특구 조성방안. (인포그래픽=중기부 페이스북 캡처)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제품이나 서비스의 사업화를 도와주기 위해 정부가 만든 대표적인 제도가 '규제자유특구'이다. 일정한 조건에서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해주는 것이다. 제도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해 발생하는 '규제지체'를 극복하고 혁신기업의 신기술 개발을 촉진한다는 대의명분에 따라 도입됐다. 

신청으로부터 30일 이내 규제를 확인하는 규제신속 확인, 기존 규제없이 테스트를 허용하는 실증특례, 조기 출시를 허용하는 임시허가제도 도입으로 구성된다. 2019년 7월부터 8차에 걸쳐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시·도에 34개 규제자유특구가 지정된 상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역혁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ICT융합·R&D,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융합, 금융위원회는 금융혁신, 국토교통부는 스마트도시 등 6개 규제 샌드박스를 운영 중이다.

규제자유특구 지정 현황 (그림제공=중기부)
규제자유특구 지정 현황 (그림제공=중기부)

당초 정부는 규제자유구역 도입을 알리면서 실증특례에 있어 '네거티브 규제 원칙'을 선언하고 실증사업자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책임보험도 가입하도록 한다고 강조했다. 실증특례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업자의 고의나 과실로 손해배상을 하게 될 경우 보험금을 받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보험료의 최대 90%를 재정에서 보조한다는 점도 내세웠다. 

이런 설명과는 달리 결과는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실증특례가 소관 부처 의견을 반영한 포지티브 방식으로 진행된 것부터 문제였다. 인공지능이나 바이오 등 첨단분야는 도전 자체가 힘들었다. 기업이 수립한 실증계획과 조건 이행을 중심으로 실증업무가 관리되다 보니 '숨어있는 현장규제'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2년 이상 실증을 추진한 1~4차 특구 119개 실증특례 중 13.4%에 불과한 16건만이 임시허가를 따는데 그쳤다. 말과 행동이 따로 놀았다는 점에서 규제자유특구는 '예정된 실패'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규제샌드박스 도입이후 책임보험금이 지급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보험요율 산정기준조차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책임보험 설계부터 엉망이었다는 얘기다.

글로벌 혁신 특구 비전과 목표, 4대 전략 (표제공=중기부)
글로벌 혁신 특구 비전과 목표, 4대 전략 (표제공=중기부)

중소벤처기업부는 8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주재로 열린 제233차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기존 규제자유특구의 교훈을 바탕으로 국내 최초로 '전면적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하는 글로벌 혁신 특구 10개를 2027년까지 새로 지정하고 딥테크 유니온도 10개 신규 육성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글로벌 혁신 특구 조성방안'을 발표했다. 명시적으로 열거된 제한·금지사항에서 벗어나는 신기술을 활용하는 모든 실증을 허용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신제품의 기준·규격·요건이 없거나 현행 법령 적용이 적합하지 않더라도 실증을 허용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글로벌 혁신특구는 미래기술 분야의 신제품 개발과 외국 진출을 목표로 지정된다. 기존 규제자유특구를 확대 개편해 규제·실증·인증·허가·보험까지 글로벌 기준에 적합한 제도를 적용할 방침이다. 인공지능과 딥테크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기술경쟁에 따른 급격한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과감한 혁신을 추구한다는 정책은 뒤늦었지만 올바른 방향 설정이다.

글로벌 혁신특구에서는 국내 최초로 '전면적 네거티브 규제'가 시행된다. (인포그래픽=중기부 페이스북 캡처)
글로벌 혁신특구에서는 국내 최초로 '전면적 네거티브 규제'가 시행된다. (인포그래픽=중기부 페이스북 캡처)

정부는 신규 지정되는 글로벌 혁신 특구 분야와 관련한 현행 법령과 행정규칙을 바탕으로 네거티브 규제목록을 작성한뒤 규제 소관 부처가 제시하는 추가적인 규제 면제·유예 조치를 반영할 방침이다. 오는 10월까지 이 작업을 도울 로펌을 선정하고 12월까지 네거티브 규제목록안을 작성한다. 중기부는 내년 1월 부처간 협의에 들어간뒤 2월 특구위원회 의결을 거쳐 고시할 예정이다. 기업은 정부가 발표한 금지·제한목록을 검토한뒤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사업은 아무런 규제없이 추진할 수 있다. 전면적 네거티브 시스템의 장점이 바로 이것이다.

국경과 공간을 초월하는 실증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첨단 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해외 실증 거점을 조성한다는 점도 주목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기간 중 중기부와 업무협약을 맺은 글로벌 인증기관 UL솔루션과 함께 첨단 분야 스타트업의 미국 실증과 기술 혁신을 지원할 방침이다. UL은 ▲신산업분야 한국 스타트업의 미국 내 실증 ▲한국 스타트업과 미국 기업간 협업을 위한 기술 검증 ▲한국내 '해외인증지원센터' 운영에 나설 예정이다. 해외인증기관이 국내에서 기획 단계부터 성능 검증, 시험검사까지 직접 컨설팅을 한다면 시제품을 완성한뒤 해외인증 신청 단계에서야 오류가 발견돼 다시 제작하는 어리석음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신제품이나 신서비스가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보안성, 연결성, 사용성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실증기준도 이런 기준에 맞춰 신설된다. 중기부는 새로 지정되는 글로벌 혁신 특구 분야와 관련된 전문가로 구성되는 실증관리 검증단을 통해 제품과 서비스의 완성도 관리를 위한 실증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다. 실증기준을 통과해 안전성과 품질이 입증되면 '임시 허가'를 신속하게 부여할 방침이다. 국내 기준이 없는 경우 미국의 UL, 독일·프랑스의 CE 인증을 받아도 임시허가를 줄 계획이다. 임시허가 처리기간도 현행 최대 120일에서 최대 30일로 대폭 단축한다. 기업 입장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공공기관이 수행해왔던 성과점검을 중기부와 지자체가 협의체를 구성, 운영하고 제품 기획 단계부터 수출 맞춤형 해외 인증 지원도 추진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유전자치료제 등 첨단 바이오 분야는 글로벌 바이오 클러스터 협력체계 구축과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업 및 공동연구 지원을 통해 돕는다. 실증부터 해외사업화까지 무과실 책임 보장을 내용으로 하고 기술성숙도와 국내외 사례를 종합적으로 검토, 총액 상한이 적용되는 신산업 보험상품 개발도 추진한다.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국내외 보험사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지원방안을 마련해야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혁신특구 추진 로드맵 (그림제공=중기부)
글로벌 혁신특구 추진 로드맵 (그림제공=중기부)

규제자유특구는 대학과 연구소, 글로벌 기업까지 참여하는 혁신 클러스터 형태로 조성된다. 중기부는 5월 공고와 6월 사업설명회를 거쳐 9월 사업계획서를 접수한뒤 10월 선정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올해 2~3곳이 지정될 전망이다. 이를 위해 현행 '규제자유특구 및 지역특화발전특구에 관한 규제특례법'을 가칭 '혁신 특구에 관한 규제특례법'으로 변경할 방침이다. 3분기 중 개정안을 마련, 연내 국회 처리를 목표로 추진한다.

중기부는 글로벌 혁신특구을 오는 10월  지정할 계획이다. (인포그래픽=중기부 페이스북 캡처)
중기부는 글로벌 혁신특구를 오는 10월  지정할 계획이다. (인포그래픽=중기부 페이스북 캡처)

기업 경영에서 중요한 것은 예측 가능성이다. 믿을 만하고 사용 가치가 높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데 성공하면 즉시 사업화에 나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신뢰가 생기면 글로벌 혁신 특구에 도전하는 기업이 늘어날 수 있다. 정부가 밝힌 방침이 말 그대로 제대로 운영되는 것이 요구된다.

혁신특구가 청년세대들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도전을 부추기려면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맞은 ‘기회의 플랫폼’으로 자리잡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전면적 네거티브 규제가 반드시 필요한 범위에서 적정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소관 부처의 내부이익이나 관련 이해관계집단의 기득권을 고려한 나머지 규제범위가 넓어진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실증조건 역시 최소 규제 원칙에 따라 마련되고 운영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새로운 규제혁신체계를 도입한다고 떠벌리고 결국 실속없게 운영되는 일이 재발되어선 안 될 것이다.  

전세계에서 널리 팔리는 신상품이나 신서비스가 나와야만 우리 경제는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추구할 수 있다. 혁신특구법만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이 확충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첨단 산업 분야 관련 법령에서 경쟁을 제한하고 신규 도전자의 출현을 가로막는 규제를 발굴, 개정하는 노력이 동반되어야만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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