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6.27 16:55
(그림제공=윤주경 의원실)
(그림제공=윤주경 의원실)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나라의 명령이나 부름으로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다가 숨지거나 다칠 경우 합당한 대우과 함께 적절한 보상이 뒤따라야만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영웅들이 지속적으로, 자발적으로 출현할 수 있다.

군사력 순위에서 미국이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양과 질 측면에서 경쟁국을 압도하는 수준으로 무기체계를 보유한데다 전 세계 요충지에 장병을 주둔시킬 정도로 병력 규모가 크고 실전경험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직업군인을 사회적으로 존경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고 20년 이상 복무자에 대한 연금 지급, 상이군인에 대한 수준 높은 재활 등으로 구성된 보훈 체계가 확고히 자리잡고 있는 것도 한몫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은 "강한 나라에는 강한 보훈이 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국가다.

국가보훈처가 지난 5일 장관급 부처인 국가보훈부로 격상, 출범한 것을 기념해 27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국가보훈 패러다임의 대전환' 세미나에서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영예로운 생활 보장과 정신 계승을 통한 공동체 발전 실현이 국가보훈이라는 측면이 강조됐다. 국가가 어려움에 처했거나 위기를 맞았을 때 헌신한 분과 자녀에게 마땅한 보답을 다하는 보훈문화 정립은 지속가능한 선진 국가를 만드는 기반이라는 점도 부각된 자리였다.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이 27일 '국가보훈 패러다임의 대전환' 토론회에서 개회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이 27일 '국가보훈 패러다임의 대전환' 토론회에서 개회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매헌 윤봉길 의사의 손녀로서 이날 행사를 주최한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국가보훈부로의 승격을 염원하고 지원한 이유는 국가를 위해 희생과 헌신하신 분들에 대한 합당한 예우가 이뤄지길 소망하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아직도 독립운동과 호국영웅, 민주화의 영웅들과 유가족들에 대한 예우는 미흡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윤 의원은 이어 "현재 독립운동사 연구인력은 그 수가 급감하고 있고 연구 성과물과 연구지원 또한 감소하고 있어 이대로 간다면 일본이 역사왜곡을 일삼아도 이에 대응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1988년과 2008년 장관급 부처에서 차관급 부처로 격하됐던 아픈 과거를 되돌아 볼 때 국가보훈부는 보훈 업무라는 고유한 국가사무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물론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을 위한 핵심 부서로서의 기능까지 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포그래픽=최완근 전 차장 발제 캡처)
(인포그래픽=최완근 전 차장 발제 캡처)

최완근 전 국가보훈처 차장은 이날 '국가보훈 패러다임의 대전환' 발제를 통해 "국가보훈은 일반 사회보장과 확실한 차별화가 요구된다"며 "국민기초생활보장에 있어 참전명예수당과 저소득자 생활조정수당을 제외한 보훈보상금은 소득 인정 범위에 포함되고 기초연금의 경우 보훈보상금의 일부만 소득 인정 범위에서 제외되는 등 ‘+α'라는 보훈의 영예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훈보상 및 전역군인 지원 관련 문제점으로 ▲보훈등록에서 희생·공헌 입증책임을 당사자에게 부과 ▲다양한 국가유공자 계층 내에서 보훈보상 형평성 논란 ▲사는 곳에 따른 지자체 보훈수당의 극심한 차이(월 8만원~46만원) ▲보훈위탁병원 이용시 대상·연령에 따른 제한 ▲실업급여(최장 9개월에 평균 월 150만원)에 뒤처지는 전직지원금(최장 6개월에 최대 월 70만원) 등이 손꼽혔다. 최 전 차장은 "고정지출을 제외한 순수한 보훈문화 확산 활동 예산은 678억원으로 보훈부 예산의 1.1%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이 지금 누리는 자유와 안전은 호국영웅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소중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과 유가족에 대해 국가가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개선방안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윤종진 국가보훈부 차관이 27일 박민식 장관을 대리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윤종진 국가보훈부 차관이 27일 박민식 장관을 대리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이와 관련, 최 전 차장은 순수한 개인 의견을 전제로 ▲국가를 위한 희생과 공헌에 대한 입증책임이 국가에 있음을 명확히 규정 ▲군사훈련·화재 진압 등 확실한 희생에 대해선 '순직·공상 추정제도' 도입 ▲공정하고 합리적인 국가보훈 보상체계 정립을 위한 연구 추진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국가유공자를 위해 무공영예수당과 참전명예수당의 획기적 인상 ▲제대군인 지원공단 설립 ▲국가보훈부 4개실 체제 확대 및 광역시도의 보훈전담부서 설치 등을 추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자유민주 국가를 건설하고 수호하신 분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안전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제대로 기억하고 예우하는 것은 우리 자유민주주의 헌법의 실천명령"이라며 "우리 모두 영웅들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이 나라의 주인이고 주권자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행위"라고 강조한 바 있다. G8 수준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의 위상에 걸맞게 보훈을 국민 일상 속 문화로 정착시키고 보훈대상자의 만족도와 자긍심을 높이려면 국가보훈부의 법률적·제도적 토대를 재정비하고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림=김병조 교수 발제 캡처)
(그림=김병조 교수 발제 캡처)

 이날 토론자로 나선 김병조 국방대학교 안보정책학과 교수는 "국가보훈부가 과거 분업형 패러다임을 고수한다며 업무영역을 둘러싸고 정부 부처간 갈등이 발생하고 결국 보훈정책이 지향하는 목표인 국민통합을 달성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며 "각 부처가 보훈업무가 국가발전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부서간 업무협조 체계를 구축하고 인적교류를 활성화하며 관련된 여러 부서가 포함된 위원회 등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권 교체 과정에서 잦은 부침을 겪었던 국가보훈부가 귀담아 들어야할 충고가 아닐 수 없다. 조직 확대나 산하 기관 신설, 보훈예산 증액 추진에 앞서 보훈가족은  물론 일반 국민도 필요성을 납득하고 지지할 수 있도록 보훈정책을 마련하고 펼쳐나가는데 주력해야할 때다. 김 교수가 "보훈부는 시민사회를 대상으로 홍보를 지속해야 하고 보훈단체나 보훈대상자도 적극적으로 시민사회에 들어가 보훈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을 전개해 시민사회가 보훈정책에 적극 호응하고 지원할 수 있는 문화를 생활화하도록 도와주어야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같은 맥락과 관련성이 높다.

이종찬(앞줄 오른쪽) 광복회장과 윤종진 국가보훈부 차관이 27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발제를 듣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이종찬(앞줄 오른쪽) 광복회장과 윤종진 국가보훈부 차관이 27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발제를 듣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이종찬 광복회장은 축사에서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 선진국에서 보훈의 가치를 높이고 보훈대상자에게 합당한 예우와 보상 문제를 국가우선과제로 하는 이유는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여 구성원들의 국가정체성 확립과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바가 매우 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새 보훈부는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찾아내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자세로 임하고 국가는 헌신한 분들에게 응당한 예우에 힘써야 한다"며 "한 나라의 정신적 근간인 보훈이 일상적 문화로 정착할 수 있도록 인식해야 하고 보훈정책 담당자들은 미래 세대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각적 방안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국가보훈부는 참전용사 등 고령 국가유공자를 중심으로 하는 보훈보상 대상자가 조만간 변화될 것에 대비해야 한다. 40~50세 안팎에 전역하는 군인이나 심한 부상으로 현업에선 떠난 국가유공자 등을 위해 취업교육 강화나 의료·요양 지원 등 신규 사회보장서비스 발굴에 나서야할 것이다. 제복을 입고 국가에 헌신했던 분들이 존중받는 대한민국을 만들려면 국가보훈부가 새로운 각오와 치열한 정신무장을 갖추고 재출발하는 것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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