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8.18 16:33

"누구도 근거 없이 믿지 말라"…경제안보 범죄 35건 중 30건 '내부인' 소행

(사진=장항배 교수 발제자료 캡처)
(사진=장항배 교수 발제자료 캡처)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3차 산업혁명이 산업용로봇을 이용, 종전 대량생산을 자동화생산 체제로 바꾸었다면 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인 현재와 미래는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이 연결된 사이버 물리시스템을 기반으로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예측생산하는 체제다. 탐지와 차단에 중점을 주었던 선(線) 중심의 경계 보안은 이제 예측과 탐지, 방어와 복구를 위한 정보(面) 중심의 보안이 되어야 한다. 외부로부터 침입을 막는 성과 해자, 철조망에서 벗어나 그 누구도 근거 없이 믿지 말라는 'Zero Trust' 원칙을 지켜야 한다."  

장항배 중앙대학교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17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발표한 '미래 산업기술 안보역량 강화를 위한 과제'를 통해 이같은 취지의 미래 융합연구 방향을 제시, 눈길을 끌었다. 이날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과 경찰청, 중앙대학교 사이버·물리공간 청정화 연구사업단이 '산업기술안보역량 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공동주최했다.  

장항배(왼쪽) 중앙대학교 산업보안학과 교수가 17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장항배(왼쪽) 중앙대학교 산업보안학과 교수가 17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장 교수는 "경제 안보와 기술 보호 활동을 실제 수행하는 전문인력의 양성과 배치가 중요하다"며 "국가핵심기술, 국가전략기술, 첨단산업기술 등 선도적 기술을 대상으로 구조화된 보호 환경 구축을 위해 중앙집중 형태의 조직체계를 구성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술유출 행위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를 위해 ▲양형 기준 상향 ▲손해배상 금액 인상 ▲피해 규모 산정에 대한 객관화 ▲수사기관 인력 확대와 전문성·민첩성 확보를 제안했다.

(그림=장항배 교수 발제자료 캡처)
(그림=장항배 교수 발제자료 캡처)

대학병원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중국 국적 연구원이 지난 5월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연구소에서 훔친 의료용 첨단로봇 기술 자료를 자신의 업적인 것처럼 꾸며 중국의 해외 인재 유치사업인 '천인계획' 프로젝트에 지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7월에는 삼성디스플레이 협력업체 직원들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되는 제조공정 레시피를 중국 업체에 넘기려다가 검거됐다. 이는 전체 유출 사례 중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국내 일류 산업기술을 훔치려는 시도는 전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우택 국회부의장이 17일 공동주최한 국회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정우택 국회부의장이 17일 공동주최한 국회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산업기술 유출과 탈취 등에 대응하는 정책 수립이 더욱 중요해졌다. 정우택 국회부의장은 환영사에서 "법무부의 '기술유출범죄 양형기준 강화' 자료에 따르면 산업기술 국외 유출 적발 건수는 최근 6년간 총 117건이며 이중 국가핵심기술이 36건에 달했다"며 "지난 정권 동안 국가 핵심기술의 국외 유출 사례비율이 3배 이상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허청이 발표한 2022년 기술보호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대기업의 영업비밀 유출 피해금액은 평균 575억8700만원이었고 해외 피해금액은 2248억2500만원에 달했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기술을 빼앗긴 중소기업은 413개사이었고 피해금액은 7828억원을 기록했다. 

전국경제연합회는 산업보안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라 기술 유출로 인한 한국의 연간 피해규모를 56.2조원으로 추정한 바 있다. 응답자의 33.4%는 연간 40~60조원의 피해가 나고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선고된 영업비밀 해외유출 범죄 형량은 평균 14.9개월에 불과했다. 최대 징역 15년인 법정형 상한선의 10분의 1 수준이다. 더구나 75.3%가 집행유예를 받았다. 경쟁국보다 기술유출에 대한 탐지와 적발 능력이 떨어지는데다 기껏 잡아도 범인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지속되다보니 국내외 경쟁사에서 탐낼 만한 핵심 기술을 훔치거나 빼돌리는 시도가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약점은 국제적으로 알려진 상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이 내놓은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의 과학인프라는 2위를 기록했지만 지식재산권 보호 정도는 28위에 그쳤다.

핵심 산업기술이 해외 경쟁기업에 넘어가면 해당 기업은 직접적으로 손해를 당하면서 성장의지마저 꺾이게 된다. 미래 기회 이익이 날아가고 연구자의 창의력도 훼손된다. 국가적으로 산업기술 안보역량을 서둘러 강화하지 않는다면  많은 인력과 자금, 시간을 쏟아부어 개발된 첨단기술이 산업스파이의 먹잇감이 될 우려가 크다.

이재훈(왼쪽부터)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와 정강은 중소벤처기업부 기술보호과장, 박성규 경찰청 경제안보수사TF계장이 17일 토론회 석상에 나란히 낮아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이재훈(왼쪽부터)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와 정강은 중소벤처기업부 기술보호과장, 박성규 경찰청 경제안보수사TF계장이 17일 토론회 석상에 나란히 낮아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박성규 경찰청 경제안보수사TF계장은 '기술유출이 국익에 미치는 영향과 경찰의 대응노력' 발제를 통해 "지난 2월부터 방위사업 분야까지 포함해 경제안보 위해범죄 특별단속을 실시한 결과 지난 5월까지 35건에 77명을 검거했다"며 "중소기업이 29건, 대기업이 6건이었고 유출주체는 내부인이 30건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자가 74%로 가장 많았고 업무상배임(14%), 산업기술보호법 위반(95) 순이었다.

(그림=경찰청 홈페이지 캡처)
(그림=경찰청 홈페이지 캡처)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송치사건은 50건으로 작년 상반기보다 43% 늘어났고 해외유출사건은 8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0% 증가했다.

피해업체 사무실에서 전형적인 방법으로 기술을 무단으로 유출하는 사례가 전체의 7할을 차지했다. USB 또는 외장하드에 저장한 사건이 22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메일 전송(9건), 사진촬영(4건) 순이었다. 피의자가 범행 전후 동종 업체로 이직하거나 동종 업체를 설립하는 경우가 27건에 달했다. 2021년부터 2023년 6월까지 해외유출은 총 29건으로 중국이 17건으로 59%를 차지했고 대만 4건 순이었다. 기술분야별로는 디스플레이가 8건, 조선 6건, 전기·전자 3건, 기계 3건으로 집계됐다. 한국 주력기술 분야일수록 해외 기술 유출 범죄의 주요 대상이 된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경찰청은 작년 12월 전국 57개 경찰서에 안보수사팀을 설치, 가벼운 기술유출사건이라도 즉시 수사에 착수하도록 했다. 피해신고 상담 및 예방홍보활동을 위한 '산업기술유출신고센터'를 203개 경찰서에 세웠다. 올해 8월에는 11개 시도경찰청 '산업기술보호수사팀'을 '산업기술안보수사대'로 격상했다.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증원을 추진할 방침이다. 향후 인터폴 국제공조와 여권의 재발급 거부를 적극 활용해 기술유출 범죄 도피사범의 검거율을 높일 계획이다.

우종수(왼쪽부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정우택 국회 부의장, 고중혁 중앙대 산학협력단장, 안성진 한국산업보안연구학회 회장이  17일 토론회 헤드테이블에 나란히 앉아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우종수(왼쪽부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정우택 국회 부의장, 고중혁 중앙대 산학협력단장, 안성진 한국산업보안연구학회 회장이  17일 토론회 헤드테이블에 나란히 앉아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해외로 기술을 빼돌리는 범죄 신고를 활성화하려면 인센티브부터 현실화해야 한다.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은 최대 1억원까지 신고포상금을 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실은 딴판이다. 예산 문제로 현재 500만원을 주고 있을 뿐이다. 경찰청은 일단 1000만원으로 늘리는 방안을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 산업기술보호법 취지에 맞춰 신고포상금 수준을 대폭 올려야 한다. 이를 통해 범죄자를 조기에 검거하는 것이 국익에 보탬이 된다.

국가의 위상을 판단하는 잣대 중 하나가 기술력이다. 기술유출은 해당 피해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의 경쟁력 약화, 국가안보 저해를 가져온다.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이나 국가 전략 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한국의 기술안보체계는 아직 불완전하다는 것이 학계의 판단이다. 국가 전략기술을 효과적으로 육성, 국가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다차원적인 산업기술안보역량을 한층 강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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