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8.21 17:24
김영주 국회 부의장(앞줄 왼쪽 두 번째부터)과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인환 인하대 로스쿨 교수 등이 21일 정책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김영주 국회 부의장(앞줄 왼쪽 두 번째부터)과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인환 인하대 로스쿨 교수 등이 21일 정책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법무부의 민법개정안은 학대, 모욕, 질병, 방탕, 범죄 등의 사유로 가(家)의 승계에 부적절한 추정 상속인의 자격박탈을 내용으로 하는 일본 민법의 상속인 폐제(廢除)를 답습한 것으로 법문화적으로 부적절하다."

박인환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1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양육하지 않은 부모는 상속자격이 없다'를 주제로 하는 '구하라법' 통과를 위한 정책토론회에 참석, 이같이 주장했다.

버리고 간 자녀가 갑작스런 사고로 숨진 사실이 알려지자 보상금을 타러 나타난 부모에 대한 사회적 원성이 높아졌는데도 정작 이를 막을 수 있는 입법 작업은 늦어지고 있다. 구하라법은 아이돌 그룹 카라 멤버 고(故) 구하라씨의 사망 이후 20여년 만에 등장한 친모가 구씨의 유산을 요구한 것이 계기가 돼 구 씨의 오빠인 구호인씨의 입법청원으로 지난 2021년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의해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대표발의됐다.

문제는 3년이 넘도록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라는 점이다. 이를 두고 많은 국민들의 여망이 무시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어린 시절 친모에게 버림 받고 평생을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고통받았던 하라양의 비극이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입법이 청원된뒤 10만명이 넘은 국민이 지지한 바 있다.

현행 민법은 상속인은 피상속인과 혈연관계가 있으면 원칙적으로 상속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한다. 직계존속, 피상속인, 선순위 상속인 등을 살해한 경우 등을 상속결격사유로 인정할 뿐이다.

경북 칠곡군 청소년들이 2019년 7월 20일 평택 해군2함대 전시된 천안함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제공=칠곡군)
경북 칠곡군 청소년들이 2019년 7월 20일 평택 해군2함대 전시된 천안함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제공=칠곡군)

서 의원 등 민주당 의원 23명은 고 구하라씨의 경우를 비롯해 천안함 침몰 사고, 세월호 사고, 전북 소방관 사건 등 재난재해 사고로 자녀가 숨진뒤 양육에 기여하지 않은 친부모가 뒤늦게 출현, 보상금이나 보험금을 달라며 소송을 제기하거나 재산의 상속을 주장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민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으로서 피상속인에 대한 양육을 현저히 게을리하는 등 양육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자는 상속인이 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상속인에게 결격사유가 있는 경우 상대방이 상속인이 되었음을 안 날로부터 1년 내에 가정법원에 상속결격의 확인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릴 자녀를 키우지 않고 도망쳐버린뒤 연락마저 끊긴 부모가 성인이 된 자녀의 비극을 악용, 이익을 챙기겠다는 행태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분노와 함께 제도 개선을 요구해왔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서영교 위원은 인사말을 통해 "구하라법 입법이 미뤄지는 동안 54년 만에 나타나 거제 앞바다에서 실종된 선원 아들 김종안씨의 통장과 집을 모두 가져가고 사망 보상금까지 받으려고 하는 친모가 있다"며 "사망보험금을 엄마 없이 함께 살아온 누나에게 나누라는 법원의 중재안마저 거절한 친모를 언론이 크게 보도했고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 의원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구하라법이 통과되어야 한다"며 "오래전에 버리고 간 자식의 사망 보험금을 타려고 한 부모에게는 상속자격이 없다"고 강조했다.

서 의원은 행안위원장으로 있을 때 당시 '전북판 구하라'로 일컬어진 소방관 자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공무원 구하라법'(공무원연금법, 공무원재해보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률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 현재 시행되고 있다. '군인 구하라법'(군인연금법, 군인재해보상법 개정안)도 대표 발의했다. 국방위를 통과해 법사위 심사만 남아 있는 상태다.

이날 토론회에는 김종선씨(실종선원 고 김종안씨의 누나), 강화현씨(소방관 고 강한얼씨의 언니)가 참석, 구하라법 통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민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늦어지는 데에는 법무부가 제출한 개정안과 관련이 깊다. 법무부 개정안의 핵심은 생전 피상속인의 상속권상실 재판청구와 사후 법정상속 순위자의 상속권상실 재판청구이다. 가정법원은 ▲부양의무의 중대한 위반 ▲피상속인·배우자나 직계혈족에 대한 중대한 범죄행위 ▲학대 ▲그밖의 심히 부당한 대우 등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 살아있는 피상속인의 청구에 따라 상속인이 될 사람의 상속권 상실을 선고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상속인이 숨졌다면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 상속개시후 법정 상속인의 순위 자의 상속인의 상속권 상실을 가정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서 의원은 "법무부의 민법 개정안은 '상속권상실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라며 "이는 일본 막부시대의 '상속권폐제제도'를 차용한 것으로 아이가 생전에 '나를 버리고 간 부모는 상속자격이 없다'고 선고해달라고 하는 제도인데 이런 일이 가능할까. 안된다"고 단언했다.

양소영(왼쪽부터)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와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인환 인하대 로스쿨 교수가 21일 토론회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양소영(왼쪽부터)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와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인환 인하대 로스쿨 교수가 21일 토론회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박 교수는 피상속인 생전 재판청구의 비현실성 측면에서 서 의원과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부양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하는 상속권 제한의 입법 방향' 주제발표를 통해 "사회문제가 되는 사례는 모두 직계비속의 자살을 포함한 사고사 등 예상치 못한 사망으로 발생한 배상금과 보상금을 둘러싼 상속분쟁"이라며 "사전에 대비한다는 것은 상정하기 어려울뿐더러 질병 등으로 자신의 사망을 예기하더라도 장기간 연락두절, 내왕이 없는 부모를 수색하며 상속권 상실 청구를 한다는 것은 절차 비용이 크고 지나친 심리적 감정적 부담을 강요한다"고 비판했다. 

법무부 개정안에 들어간 상속권 상실사유 존부에 대한 법원의 재량판단 규정도 도마 위에 올랐다. 법원은 상속권 상실사유가 있는 경우에도 상속권 상실 사유의 경위와 정도, 상속인과 피상속인과의 관계, 상속재산의 규모 및 형성과정, 그밖의 사정을 고려해 상속권 상실이 적당하지 않는다고 인정하는 경우 상속권 상실청구를 기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부양의무의 해태 등이 사실로 확정되어도 법원은 제반사정을 고려해 청구를 기각할 수 있으므로 판결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며 "특히 '심히 부당한 대우'와 같은 요건의 사실인정은 친족간 분쟁 격화의 단초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우려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본질상 사유재산의 일부인 상속권의 존부를 법원의 사정판결에 맡기는 것은 법원만능주의적 입법이며 법원리적 타당성에 의문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입법 방향을 놓고 판단이 어렵다면 선진국 입법사례를 참고해야 한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는 1927년 자녀에 대한 부모의 양육 및 부양의무 위반을 상속결격사유로 규정했다. 뉴욕주는 1941년 같은 취지의 법 규정을 도입했고 펜실베니아주는 1984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부모의 상속자격을 부정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이후 17개주에서 자녀에 대한 부모의 부양의무 위반을 상속결격사유로 규정한 상태다.

오스트리아는 1989년 상속법을 개정하면서 친자관계에서 발생하는 가족법상 의무를 현저히 해태한 경우도 상속결격사유로 추가했다. 여기에는 부모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보호양육 의무 위반, 재산관리 의무 위반, 부양의무 위반, 이유 없는 장기간 면접 교섭 거부, 자녀가 부모에 대해 부담하는 부양의무 위반 등이 들어간다. 독일 민법 역시 상속인이 피상속인에 대해 부담하는 법률상의 부양의무를 악의로 이행하지 않는 경우를 유류분상실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서영교(왼쪽부터) 민주당 의원과 박인환 인하대 로스쿨 교수, 소병철 민주당 의원이 21일 토론회 석상에 앉아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서영교(왼쪽부터) 민주당 의원과 박인환 인하대 로스쿨 교수, 소병철 민주당 의원이 21일 토론회 석상에 앉아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헌법재판소 판결도 구하라법 입법 지연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헌재는 2018년 2월 "개별 가족의 생활 형태나 경제적 여건 등에 따라 부양 의무 이행의 방법과 정도는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부양의무 이행'의 개념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직계존속이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를 상속결격사유로 본다면 어느 경우 상속결격인지 여부를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고 결정한 바 있다. 헌재는 부양의무자가 자력이 없어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경우나 상속등기 신청자가 고의의 부양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상속결격을 주장할 때 등기공무원이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법조계는 판단하고 있다.

이와 관련, 박 교수는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 이행 여부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비양육친에서 발생한다"며 "비양육친의 부양 의무 이행 여부는 양육비의 지급으로 확인된다"고 반박했다. 자녀를 직접 기르지 않으면서 양육비도 주지 않았다면 부양의무를 지키지 않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상속결격은 자녀를 부양할 힘이 있는데도 고의로 그 의무를 해태한 경우에 인정된다는 점에서 헌재 결정은 부양의무의 구체적인 모습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을 만 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여당에 '구하라법'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여당에 '구하라법'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런 점에서 야당은 정부·여당의 소극적인 입법 태도를 비판할 만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부양 의무를 저버릴 때는 언제고 자녀의 유산만은 챙기겠다는 인면수심의 사례가 반복되고 있지만 구하라법은 아직도 법사위에 멈춰 있다"며 "정부와 국민의힘은 면피용 관련법만 던져놓은 채 실질적인 제도 개선에는 미온적이다. 국민은 온전한 구하라법 통과를 원한다"고 주장했다. 양육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의 상속을 금지하는 '구하라법' 통과를 강도 높게촉구한 것이다. 그는 "국민의 억울함을 풀고 공정한 법을 만드는 게 국회와 정치가 할 일"이라며 "국회가 왜 아직도 입법을 못 하는지 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들은 구하라씨, 강한얼씨, 김종안씨 사례를 보면서 '패륜 부모'에 손가락질했다. 물론 구하라법 입법으로 억울한 피해자도 나올 수 있다. 그런 경우 해당 부모는 부양의무를 다했음을 증명하면 된다. 이에 실패하면 상속결격 처분을 받거나 유류분을 잃게 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부모가 어린 아이를 버리고 종적을 감추었다면 향후 자녀의 재산이나 사망 보험금에 대한 상속자격을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것이 옳다. 주요 국가에서 시행 중인데다 국민 정서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야당은 법무부 개정안이 비현실적인 대안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구하라법은 민생입법이란 성격을 갖는다. 정쟁의 대상도 아니다. 국민의힘은 기존 개정안의 약점을 보완, 보다 현실성 있는 입법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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