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9.08 17:30
 8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지역구 30% 여성 의무공천 실현을 위한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송옥주 의원실)
 8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지역구 30% 여성 의무공천 실현을 위한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송옥주 의원실)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노르웨이 국회의원 여성 비율은 46.2%이다. 169명 중 여성이 78명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7명에 그쳤던 여성의원 숫자는 지속적으로 늘어 과반수에 이르게 됐다. 여성의 정치적 이익과 정치적 정향은 남성의 정치적 이익이나 정치적 정향에 단지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없고 간주되어서도 안 된다는 정치적 신념이 사회가 광범위하게 공유된 덕분이다. 여성의원들은 여성문제에 있어서는 남성의원과 정책우선순위가 다르다고 생각해 서로 협력했다. 한국 여성의원들도 연대가 중요하다. 여성문제에서만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김민정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더불어민주당 여성정치참여확대위원회(위원장 송옥주)와 전국여성위원회(위원장 이재정)가 8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개최한 '지역구 30% 여성 의무공천 실현을 위한 토론회’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국회는 법률을 제·개정하는 권한을 지닌 입법부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성격을 지녀야 한다. 국회의원은 계층과 세대 간 갈등과 이해관계를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조율하는 정치력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특정 직업군이나 집단에 편중되지 않고 다양하게 구성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 기본은 성별 배치에서의 균형이다.

국회의원의 성별 구성을 보면 우리나라가 경제강국인지,정권교체가 수시로 이뤼지는 나라인지부터 의심스러울 정도다. 21대 의원은 298명이다. 이중 여성은 전체의 19%인  57명에 불과하다. 전 세계 여성의원 비율 순위에서 121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 33.8%, 세계 평균 25.6%는 물론 아시아 지역 평균 20.8%에도 미달한다. 이에 반해 북유럽국가의 여성 의원 비율은 평균 44.5%에 달한다.  

더구나 진보정치를 표방하는 거대야당의 여성 홀대도 눈에 띈다. 인권과 여성, 사회적 약자, 젠더 문제에 앞장서온 더불어민주당의 여성 의원 비율은 16%로 국민의힘보다 뒤진다. 민주당이 평균 수치를 깎아내렸다. '말과 행동이 따로'인 셈이다.

내년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215일 앞두고 열린 이날 토론회  축사에서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여성의원 비율은 민주당이 그간  정치개혁은 물론 여성의 정치참여를 주도해 온 점에 비춰 부족함이 많은 숫자”라며 “민주당은 지역구 30% 여성 의무공천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송옥주 민주당 의원이 8일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송옥주 의원실)
송옥주 민주당 의원이 8일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송옥주 의원실)

송옥주 여성정치참여확대위원회 위원장은 “여성정치참여확대위는 22대 국회에서 지역구 30% 여성 의무공천이 실현될 수 있도록 큰 책임감을 갖고 지역구 여성할당제, 여남동수제, 여성후보의 적극 발굴 및 경쟁력 있는 여성 인재 영입에 더욱 힘쓰겠다”고 역설했다.

이재정 민주당 전국여성위원장도 “다양성의 확대는 민심이자 시대의 요구이며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 완성을 위한 필요조건”이라며 “당장 법 개정이 어렵다면 당헌에서 밝히고 있는 여성 30% 공천 의무조항을 제대로 실효성 있게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회가 믿음을 받으려면 모든 국민을 골고루 대변할 수 있는 의원들이 선출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첫걸음은 지역구 공천단계에서 공직선거법 규정을 100% 이상 실현하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약속부터 어기는 정당이 장애인, 노인, 청년들을 과연 얼마나 챙기겠는가. 

8일 토론회에서 권향엽(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여성리더십센터 소장과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이재정, 송옥주, 송갑석, 이수진 의원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 (사진제공=송옥주 의원실)
8일 토론회에서 권향엽(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여성리더십센터 소장과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이재정, 송옥주, 송갑석, 이수진 의원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 (사진제공=송옥주 의원실)

고민희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지역구 여성의무공천의 한계와 가능성’ 발제를 통해 “한국 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의 정당은 지도부를 위시한 중앙 조직체계가 남성 위주로 구성돼 여성공천은 도덕적으로 타당하나 전략적으로 불필요한 정책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그간 연구에선 정당 간 그리고 정당내 경쟁구도가 첨예해질수록 여성공천의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그간 여성공천을 권고사항에서 의무사항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은 사익과 선거 승리 앞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며 “여성공천제가 정당의 경쟁력 강화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공유될 때 의무화도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고 교수는 “앞으로 불비례성을 극복하는 제도적 개혁이 추진되고 군소정당이 늘어날 경우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보다 의석수를 상실한 가능성이 크다고 보여진다”며 “민주당은 진보적 정당의 출현과 원내 의석 확보가 가시화하는 시점에서는 진보지지 기반을 다질 수 있는 전략적 개선책으로 여성의무공천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제안, 주목을 끌었다.  그는 지역구 여성의무공천을 위한 제도적 조건으로 ▲정당공천 강화와 중앙당의 정당성 확보 ▲정당지도부의 여성 비율 확대 ▲선거제도 개혁담론 안에서의 논의를 제시했다.

국민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냉소, 비판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막대한 세비를 받으면서 도대체 민생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이냐는 지적이다. 여기에는 국회를 장악한 중장년 남성 의원들의 책임과 잘못이 크다. 주요 상임위와 법사위를 통해 입법을 좌지우지하고 자신과 관련된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급급한 실정이다.  민의를 받드는 성스러운 임무는 정작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한쪽으로 치우진 국회는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국민 의사와 거리가 먼 의사결정을 내릴 우려가 높다.

국회의사당 본관. (사진=원성훈 기자)
국회의사당 본관. (사진=원성훈 기자)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지난 3월 24.1%로 조사됐다. 정부기관 중에서 가장 낮다. 각종 법률에 대해 국민들이 갖는 불만과 건의 등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데다 구태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판·검사, 전문 당직자, 의원 보좌관, 운동권 출신 등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험과 경력을 지닌 국민이 국회에 입성하는 것이 요구된다. 여성의 정치 참여가 늘어나고 여성의 대표성도 높아지면 정치지형 개선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를 통해 국회가 진정 국민통합의 장으로 변신하고  '3류 정치'라는 비아냥에서 탈피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물론 여성공천 의무화에 대해 찬성보다는 반대한다는 의견이 더 많다. 국방부는 병역의무를 마친 남자가 취업과정에서 우대받을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려다가 여성단체  등의 반대로 포기한 바 있다. 페미니즘이 강화되는 시대 흐름에서 역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남자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여성이 국회의원 공천에서 왜 우대 받아야 하냐고 반발하거나 여성이 의무 이행에는 소홀하면서 권리만 챙기려고 한다는 볼멘소리도 적지 않다.

8일 국회 토론회’ 참석자들이 지역선거구 30% 여성 의무공천 실현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제공=송옥주 의원실)
8일 국회 토론회’ 참석자들이 지역선거구 30% 여성 의무공천 실현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제공=송옥주 의원실)

이처럼 찬반 논란이 치열한 만큼 주요 정당은 다가오는 공천 국면에서 관련 법률을 지키면서 정치선진화의 길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성이 크다.

현행 공직선거법 47조는 정당이 국회의원선거와 지방의회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할 때 각각 지역구 총수의 100분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불이행에 따른 벌칙이 없는 권장규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매번 선거 때마다 지켜진 적이 없다. 이를 실현하려면 현역 남성 의원들의 양보와 결단이 요구된다. 

민주당은 당헌 8조에서 공직선거의 지역구선거후보자 추천에서 여성의 100분의 30 이상을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성의 선출직과 임명직 공직 진출을 확대하고 국회와 지방의회, 공공부문에서의 성별 균형을 지향한다는 강령에 따른 규정이다. 물론 빠져나갈 구멍도 마련됐다. 최고위원회의 의결에 따라 농·어촌 등 취약지역의 경우 달리 정할 수 있다.

민주당이 성평등 민주주의를 진정 완성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기 앞서 강령과 당헌을 우직하게 지키면서 여성의 정치 참여 기회를 넓혀주어야 한다. 이것이 원내 다수당의 도리다. 잘한다면 상당수 유권자들로부터 공정을 도모하고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시대정신의 실천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의원 다양성 확대는 과거보다 사회이동의 기회가 크게 줄어들면서 불평등이 고착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줄여주는 입법을 가져올 마중물이다. 살맛나는 공동체로 변모시키는  것은 물론 행복한 국민을 늘리는 첩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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