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9.15 14:36
윤석열(오른쪽) 대통령이 14일 부산국제금융센터에서 이철우 경북지사와 악수하는 모습을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이 바라보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윤석열(오른쪽) 대통령이 14일 부산국제금융센터에서 이철우 경북지사와 악수하는 모습을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이 바라보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강원도 동해시 평릉동 부영아파트 입구에는 민간임대아파트를 지은 부영그룹을 비판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 있다. 핵심은 ‘입주자가 봉이냐’는 것이다. 내년 6월 입주 10년을 앞두고 세입자를 대상으로 실시되는 분양전환가격이 시세보다 비싸다는 항변이다. 분양 신청에 집단적으로 응하지 말자는 게시물도 엘리베이터 등에 게시된 상태다. 

변변한 대기업을 찾기 힘든 동해시 주민들은 해군 1함대 사령부 등 인근 군부대 장병의 외출·외박, 천혜의 자연환경을 찾아 놀러오는 관광객 등의 지출에 의존한다. 이곳에서 장기간 거주한 한 입주자는 “동해에서 아파트가격이 올라본들 10년에 1000만원에서 2000만원 수준”이라며 “KTX가 묵호역에 들어오면서 유동인구 증가를 노리고 외곽지대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지만 제대로 팔리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개발압력이 낮은 곳은 비단 동해시 뿐만 아니다. 수도권에 시가총액 상위 대기업과 평판이 좋은 대학교가 몰려 있다 보니 비수도권에 살던 청년들의 이주는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현재 100대 기업 본사의 86%가 수도권에 있다. 2021년 기준 1000대 기업 본사의 75%는 수도권에 위치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격차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그래프제공=지방시대위원회)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격차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그래프제공=지방시대위원회)

미래성장성에서 수도권은 비수도권을 앞지른지 오래다. 디지털전환 핵심기술 기업 비중에서 서울은 40.2%, 경기도는 31.8%를 기록하는데 반해 부산은 3.3%, 대구는 2.3%, 경남은 2.6%에 불과하다. 특히 철강, 화학, 시멘트 등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제조업은 전남, 충남, 울산 등에 몰려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어둡다보니 인재에 이어 자산까지 수도권으로 유출된다. 많은 국민들은 서울 핵심 지역 아파트 값은 상승 국면에선 전국 평균보다 더 오르고 하락 시기에는 평균에 비해 덜 내린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지역 자산가들이 ‘보험용’으로 서울에 알짜 주택을 매입, 보유하는 이유다. 

제조업 기반이 확고하다는 평가를 받는 울산광역시조차 수년째 인구가 빠져나가고 있다. 고용안정성이 빼어나고 임금 수준도 높은 공장들이 밀집해 있지만 정작 현지에선 젊은 여성들을 뽑지 않는다는 점도 악영향을 끼치는 실정이다.

대한민국 국토는 10만443.6㎢로 전세계 면적 순위에서 108위를 기록할 정도로 작다. 서울(605.21㎢)과 인천(1067.04㎢), 경기도(1만199.54㎢)를 더한 수도권 면적은 1만1871.79㎢로 국토의 11.8%에 불과하다. 여기에 전체 인구의 50.5%가 산다. 취업자의 50.5%도 수도권 소재 직장을 다닌다.

지방에 밀집된 전통 주력산업의 성장률이 떨어지면서 전국 대비 비수도권 지역총생산(GRDP) 비중은 2010년 51.6%에서 2020년에는 47.5%로 내려갔다. 전체 시군구의 40%인 89개는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되는 등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격차는 날로 확대되고 있다.

그간 역대 정부는 혁신도시, 기업도시, 지역주력산업, 성장촉진지역 사업 등을 통해 비수도권 개발에 나섰지만 실제 성과를 올리는데 실패했다. 국가 주도로 균형발전을 위한 프로젝트가 일률적으로 수행되다보니 지자체의 기획역량이 향상되지 못했다. 게다가 정치적 논리에 따라 예산의 지역안배까지 이뤄지다보니 지자체간 경쟁 촉발에 따른  효율성도 별반 높아지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부산국제금융센터에서 열린 '지방시대 선포식'에 참석, 참가자들과 함께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부산국제금융센터에서 열린 '지방시대 선포식'에 참석, 참가자들과 함께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이를 감안, 지방시대위원회가 정책의 중심을 '분권형 균형발전'으로 전환한 결정이 주목된다. 변화된 행정수요에 신속 대응하고 개별 지역의 장점에 기반을 둔 채 산업구조 전환에 나서며 지방대학을 중심으로 지역혁신 생태계를 조성하려면 지자체 스스로가 맞춤형  발전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걷는 세입을 늘려 자치재정권 확보를 돕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과감한 기능 이양과 획기적인 사무재배분을 통해 지방분권을 실시한 기반부터 마련해주어야 한다. 이런 조건이 실현되어야만 현 정부가 희망하는 '전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 구현'에 한발 다가설 수 있다.

지방시대위원회가 14일 마련한 '지방시대 9대 정책' 중에서 쇠락해가고 있는 지방대도시 중심에 지방정부 주도로 산업·주거·문화시설을 유치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도심융합특구 조성이 주목된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직(일터)-주(주거)-락(여가) 거점'을 복합개발한다는 것이다.

공간조성에서 용도, 용적률, 높이 등에서 도시·건축규제를 완화한다는 대목도 눈에 띈다. 공장 터에 사무용 빌딩이나 주상복합 건물, 지식산업센터 등을 훨씬 쉽게 세울 수 있게 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ICT 기업이 집중된 성남 판교 테크노밸리와 유사한 첨단산업 콤플렉스가 대전, 부산, 광주, 대구, 울산에 들어서도록 유도한다는 전략이다. 바람직한 접근이다.

입주기업에게 중기부의 규제자유특구, 과기부의 디지털혁신거점, 산업부의 기회발전특구 등 각 부처의 특구사업을 중첩 지정하는 특혜를 제공하고 각종 기업 지원 프로그램을 연계, 지원한다는 방침 역시 효과가 기대된다.

정주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주택공급에서 특례를 제공하고 학교와 교육과정에서도 교육과정 특례를 적용한다는 조치도 돋보인다. 자율학교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연내 특별법을 마련할 방침이다.

지방시대 전략과 가치. (인포그래픽제공=지방시대위원회)
지방시대 전략과 가치. (인포그래픽제공=지방시대위원회)

고고평준화 이전 시기에는 도별로 명문 공립고가 버티면서 인재 육성의 요람이 됐다. 1980년대만 해도 도를 대표하는 국립대학들의 입시 커트라인도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한국이 수도권공화국으로 변질되면서 인재가 해당 지역에서 양성되고 정착하는 선순환 체제도 무너졌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지방시대위원회는 지역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교육자유특구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위원회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기회발전특구와 함께 지방시대를 이끌 '쌍두마차'라고 표현했지만 실제 효과를 보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기본 추진방향으로 지역인재 생태계 조성, 공교육 경쟁력 제고. 지방분권 강화, 규제 합리화를 제시했지만 말의 성찬에 그친다. '공교육의 틀' 내에서 혁신을 도모한다는 방침도 모호하다. 기존 교육정책 원칙을 지키는 범위에서 미봉책을 내본들 사교육서비스에서 불리한 지방 학생이 갖는 박탈감을 충족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지방시대 5년 후 미래상. (그림제공=지방시대위원회)
지방시대 5년 후 미래상. (그림제공=지방시대위원회)

현실적 인센티브로 지방 고교생이 해당 지역 의대에 현재보다 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입학정원의 일부 범위에서 자체 경쟁하도록 쿼터제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 다만 불공정 교육 조장이란 비판을 받기 십상이다. 최상위권 학생들의 꿈으로 알려진 의사가 되는 길을 지방 학생 위주로 넓힌다면 수도권 학생과 학부모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것은 물론 법원에 행정소송을 낼 가능성도 높다. 이보다는 교육부가 중점 추진 중인 글로컬 대학의 집중 육성으로 지역과 대학의 동반성장을 도모하는 정책이 보다 합리적이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지원 확대를 요구하기 앞서 자구노력에 주력할 필요가 크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들이 지방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는데 앞장서야 한다. 주변이 낡고 고루하고 냄새마저 나는데다 친구들과 즐겁게 쇼핑할 곳조차 없다는 평가가 지속되는 한 청년들의 이탈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선 지자체 특성을 고려해 24시간 재미와 즐거움을 제공하는 ‘유잼’ 도시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거주 편의성과 공교육 수준이 수도권을 능가하도록 발전시키는 것은 후속 중장기 과제다. 

주민 평균 수입이 수도권보다 다소 적을 수 있지만 출퇴근 스트레스가 거의 없고 먹고 자는 비용도 싸 은퇴 이후도 줄곳 살고 싶은 지역을 만드는데 성공한 지자체가 나와야 한다. 이런 지자체가 연속해서 배출된다면 명실상부한 지방시대도 개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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