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9.21 17:19
배우 김종수(왼쪽부터), 류승완 감독, 조인성, 고민시, 김혜수, 염정아, 박정민이 7월 2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 VIP 시사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1)
배우 김종수(왼쪽부터), 류승완 감독, 조인성, 고민시, 김혜수, 염정아, 박정민이 7월 2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 VIP 시사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1)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올해 들어 개봉한 국산 영화 중에서 손익분기점을 넘은 작품은 한두 편에 불과했다.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지난 여름철에 개봉한 국내 영화 빅 4 중에서 더 문과 비공식작전은 각각 누적 관객수 521만명, 105만명에 그치면서 조기 종영됐다. 현재까지 큰 손실을 본 셈이다. 밀수와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513만명, 382만명을 기록하며 개봉 중이지만 당초 기대에는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 시기만 해도 방역제한이 일부 적용됐던 만큼 영화 관람객 감소에 대한 변명거리가 있었다. 코로나19가 독감과 같은 4급 감염병으로 내려간 뒤에도 극장을 찾는 사람이 늘지 않는 것은 입장료가 OTT라는 ‘A급 대체재’보다 워낙 비싸기 때문이다.

성인 한 명이 메가박스에서 오전 10시1분 이후 영화 한 편을 보려면 최소 1만4000원을 내야한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돌비 시네마 3D 돌비’관에서 관람할 경우 2만4000원이 들어간다. 

롯데시네마도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1만4000원,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1만5000원을 받는다. 3D관 입장료는 여기서 각각 2000원이 오른다. 

CGV도 월~목요일 오전에는 1만3000원, 오후에는 1만4000원을 받는다. 금~일요일에는 10시1분 이후에 1만5000원을 징수한다.

조조로 2D관에서 1만원에 보려면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10시 이전 개봉 영화에 한해 가능하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팝콘 등 스낵과 음료수 등을 마시려면 1인당 1만원 가까이 추가 지불해야 한다. 

극장들은 명백히 평일인 금요일을 휴일로 간주, 1000원이란 추가요금을 물리는 배짱을 부리고 있다. 시장을 장악한 3대 체인끼리 거의 유사한 요금체계를 운영하면서 독과점에 따른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실정이다. 사실상 담합으로 인한 가격 책정이 의심되는데도 공정거래위원회는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

 KT직원이 지니 TV에서 티빙 OTT 서비스를 즐기고 있다. (사진제공=KT)
 KT직원이 지니 TV에서 티빙 OTT 서비스를 즐기고 있다. (사진제공=KT)

영화 한 편 입장료가 이 정도 수준인데 비해 OTT 관람 비용은 훨씬 싸다. 한 달 내내 무제한으로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을 즐길 수 있는데도 말이다. KT는 현재 티빙은 월 6900원, 넷플릭스는 월 8500원, 디즈니는 월 8900원, 유튜브 프리미엄은 월 9450원에 구독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국내외 OTT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고객 유치를 위한 할인 상품이 쏟아진다.

승리호, 사냥의 시간 등 여러 영화는 극장을 거치지 않고 OTT를 통해 관객에서 먼저 소개됐다. 이처럼 영화산업 구조와 생태계가 바뀌면서 극장의 위상은 날로 추락 중이다. 인건비와 임대료가 계속 상승하는데다 극장에서 먼저 영화를 상영한 뒤 방송사 등의 매체로 넘어간다는 ‘홀드백’마저 무너지면서 경영난은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는 관람료의 3%를 떼어가면서 정작 극장에 대한  지원은 미미한 영화발전기금의 원죄도 있다고 여겨진다. OTT플랫폼을 통한 영화 보기가 일상화된 20대의 습관이 고착되고 10대로 확산된다면 부과금 징수규모는 향후 급감할 것이 뻔하다. 집에서 혼자 보거나 OTT극장카페 등에서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즐기는 수요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영화진흥위원회가 21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글로벌 OTT 시대, K-무비의 지속 확산을 위한 토론회’를 주관한 것은 최근 대두되는 한국영화 위기론에 대응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풀이된다. 수많은 영화인들이 이미 극장 스크린을 넘어 글로벌 OTT를 발판 삼아 전 세계인의 인기를 끄는 시리즈물과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는데도 한국 영화 진흥제도는 여전히 극장 시장을 중심으로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21일 국회 토론회에서 개회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21일 국회 토론회에서 개회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한국 영화는 위기론에 직면했고 국내 OTT는 수익성 악화로 존폐위기의 기로에 서 있다”며 “OTT플랫폼을 영화산업의 주요한 가치사슬로 명확히 인식하고 극장과 글로벌 OTT, 토종 OTT가 공존하는 가운데 K-무비의 지속 확산을 위한 구체적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상영관 입장권에 대한 현행 부과금 제도는 2008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의견이 5명 나왔지만 정족수(6명)에 못 미쳐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상태다. 재계는 준조세 성격을 이유로 폐지 또는 개선 의견을 지속적으로 내고 있다. KBS 수신료 징수에 대한 소비자의 반발에서 드러난 것처럼 영화 부과금 역시 목적 타당성과 부과 적절성, 사용 적합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앞으로 헌재 재판관이 바뀌고 헌법 소원이 제기될 경우 위헌으로 판결날 가능성도 존재한다. 더 늦기 전에 새로운 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용희 오픈루트 연구위원은 이날 ‘영상콘텐츠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재정지원 정책’ 발제에서 “독일영화진흥기구는 2019년 넷플릭스와의 합의에 따라 연간 매출 50만 유로 이상의 비디오 및 온라인 사업자로부터 매출액의 1.8~2.5%를 독일영화진흥기금으로 과금하고 있다”며 “프랑스 국립영화영상센터도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으로부터 매출액의 5.15%를 영상물지원기금 중 비디오세로 물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은 포털이나 OTT, 복수채널 사용사업자에 대해 문화 콘텐츠 관련 기금 제도 확대를 논의하는데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법률적 정당성, 부과기준의 명확성, 해외 사업자 집행 가능성,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부담금 납부 의무제도를 도입할 때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방적인 법제도를 통한 부과금 확대는 지양하고 민관의 협력적 정책 모델을 통해 자율적인 부담금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숙 컬처미디어랩 대표가 21일 토론회에 참석, 발제에 앞서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김숙 컬처미디어랩 대표가 21일 토론회에 참석, 발제에 앞서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김숙 컬처미디어랩 대표는 이날 ‘글로벌 OTT시대, 영화산업의 생태계 변화’ 발제를 통해 “영화라는 고유의 장르가 허물어지고 OTT시리즈물이 새로운 장르로 정착되면서 투자와 소비가 OTT시리즈물에 몰리고 있다”며 “영화 제작사의 드라마 제작과 촬영, 조명, 미술 등 현장 스태프의 업무 겸업은 영화산업이 영상콘텐츠산업으로 확장되는 과도적인 현상“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K-콘텐츠의 지속 확산을 위해 ▲IP기업과의 다양한 협업 속에 영상화 이후에도 꾸준한 확산으로 경제적 가치 확장 ▲원천 IP로서의 영화 기획·제작력 강화 환경 조성 ▲제작 생태계 선순환을 위한 IP 수익 배분·세액 공제 방식 현실화 등을 제언했다. 

배우 조인성이 8월 3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디즈니+ 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무빙'은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아픈 비밀을 감춘 채 과거를 살아온 부모들의 이야기를 그린 휴먼 액션 시리즈다. (사진=뉴스1)
배우 조인성이 8월 3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디즈니+ 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무빙'은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아픈 비밀을 감춘 채 과거를 살아온 부모들의 이야기를 그린 휴먼 액션 시리즈다. (사진=뉴스1)

오징어게임이나 기생충에 이어 마스크걸, 무빙에 이르기까지 K-무비는 K-팝과 함께 K-콘텐츠의 매력을 알리며 국부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다음 회를 시청하게 만드는 극적인 결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 앞뒤의 사건이 교묘히 연결되는 구성 등에 힘입어 K-무비는 발전 중이다. 다만 K-무비가 세계무대에서 지속적인 경쟁력을 갖추려면 영상콘텐츠 분류 체계부터 시대 변화에 맞게 재정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영화의 법률적 정의과 분류체계부터 바꿀 때다.

그간 영화발전기금 예산은 부실하고 방만하게 운영된 것으로 최근 조사된 바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체육복권기금 354억원을 영화발전기금으로 확보, 내년도 영진위 예산을 734억원으로 올해보다 증액시켰다고 밝혔지만 이로 인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도덕성 논란에서 시달리는 마당에 IPTV, OTT, 기타 영상콘텐츠를 포함한 기금 재편 시도는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21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K-무비 토론회에 참석한 전병극(왼쪽 세 번째부터) 문체부 제1차관과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 등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21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K-무비 토론회에 참석한 전병극(왼쪽 세 번째부터) 문체부 제1차관과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 등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이와 관련, 이날 토론에 참석한 송호영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문화예술법학회 회장)이 제시한 단기 방안이 주목된다.  송 교수는 “현재  영화비디오법에서 기금조성을 위한 재원 중 하나로 인정한 ‘개인 또는 법인으로부터의 기부금’ 제도를 활성화하는 것이 좀 더 단순한 방법”이라며 “관련 세법을 개정해 IPTV사업자로 OTT사업자, 기타 영상콘텐트사업자로 하여금 영화발전기금에 기부할 때 파격적인 세제혜택을 부여해 사실상 부과금에 의존하는 영발기금 구조를 바꾸는 노력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스타 배우 출신인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귀담아들을 만한 제안이다. 임명장을 받고 나서 해결해야할 과제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그가 대통령실과 기획재정부의 협력을 이끌어내고 야당 국회의원들을 설득시키는데 성공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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